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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수행이론의 총망라(34)-실천 관련; 각론⑮

중생구조는 깨침 결과 나타난 작용

중생의 나쁜 것 받아들여도
결코 서원 저버리지 않아야
대승 불교에서의 보살행은
분별없다는 생각도 없어야

이번 호는 ‘십회향품 제25’의 10문(門) 중에서 다섯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⑤설분’을 소개할 차례이다. 회향해야 할 내용의 주제에 대해서는 지난주 ‘④본분’에서 열 가지로 소개했는데, 그중 첫머리에 소개한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그런 티를 떨친 회향’을 분석적으로 읽어보기로 한다.

대승 경전의 구성작가들은 산문과 운문을 겸용한다. 그런데 운문 즉, 게송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고기송(孤起頌)이고 다른 하나는 응송(應頌)이다. 전자는 앞의 산문에 없는 내용을 게송으로 읊은 것이고, 후자는 앞의 산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게송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십회향품’의 게송은 모두 ‘응송’이다. 그런 작품적 성격을 안다면 독자들은 앞의 산문과 뒤의 게송을 짝지어 대조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번 주 연재에서는 본문의 구조적 측면을, 지면 관계상 첫째의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그런 티를 떨친 회향’에만 한정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산문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크게 두 대목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모양을 띤’ 중생 구호이고, 둘째는 ‘모양을 떨친’ 중생 구호이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모양을 띤’ 중생 구호를 크게 네 범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①중생들에게 이익과 즐거움 주기, ②중생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자애의 마음으로 감수하기, ③중생들이 받을 고통을 자신이 대신 받기, ④내가 아니면 그 누가 저 중생들을 구하겠느냐는 뛰어난 기상 갖기, 이렇게 중생 구호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엄경’ 구성작가는 비유를 겸하여 작가적 솜씨를 구성지게 발휘하고 있다. 구성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대승의 보살행을 실천하려는 자로서 위의 ①을 실천하려면 다음 10가지 즉, 중생을 위한 쉼터[舍]를 지어주고, 보호시설[護]를 운영하고, 귀의할 곳[歸]을 만들어주고, 삶의 목표[趣]를 제시해주고, 안심처[安]를 만들어주고, 사람답게 사는 밝음[明]을 밝혀주고,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횃불 밝혀주고[炬], 청정하게 살도록 등불 밝혀주고[燈], 진실하게 살도록 길 안내자[導師]가 되어주고, 끝내는 큰 스승[大導師]이 되어 중생들이 어디에도 걸려 넘어가지 않는 큰 지혜를 줘라.

이어서 ②에 대해서도, ③과 ④에 대해서도, 구성작가는 비유를 들어 중생 구호의 여러 양상을 제시한다. 지면 관계상 이 정도에서 그치지만, 당시 새롭게 대두되는 대승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불교가 어떠했는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양상은 초기 대승 경전인 ‘반야부’에도 나타난다. 다만 ‘화엄부’와 다른 점은 ‘불성(佛性)’을 긍정의 논법으로 드러내냐? 아니면 부정의 논법으로 드러내냐? 그 차이가 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본 연재에서는 ①을 실천하는 양상만 소개했지만 ②③④의 경우도 각각 ‘모양을 띤’ 다양한 중생 구호를 소개하고 있다. 이하에는 ‘모양을 떨친’ 중생 구호를 소개할 순서인데, ‘화엄경’ 구성작가는 그것을 두 단계로 향상일로(向上一路) 해간다. 

첫째는 위에서 소개한 ‘중생 구호’를 ‘깨침의 결과로 드러나는 작용[菩提果德]’으로 향상하는 것으로, 운허 스님의 번역을 인용하면 이렇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해[日]가 온갖 것에 두루 비치어도 은혜 갚으라 하지 않는 것같이, 중생들의 나쁜 일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서원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한 중생이 악하다고 해서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만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 회향하여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안락을 얻게 하리라’고 합니다.” 

둘째는 위의 ‘깨침의 결과로 드러나는 작용’을 ‘무위 적정의 열반’으로 향상하는 것으로, 역시 운허 스님의 번역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러한 선근으로 회향하면 청정하게 상대하여 다스리는 법을 수행하여 생기는 선근은 모두 출세간하는 법을 따라가는 것이므로 둘이란 모양을 짓지 아니하니,…….” 인용문에서 말하는 “둘”이란 ‘모양을 띰’과 ‘모양 떨침’을 말한다. 내니 남이니 하는 생각 없앰은 물론, 없앤다는 생각도 없이 그렇게 보살행을 하라는, 대승 불경 작가의 주문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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