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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사회참여

기자명 황산 스님

보살행은 나를 더 지혜롭게 해
의지·원력 없으면 실천 어려워 
남 위해 노력하는 사람 많아야
깨달음 얻고 이상사회 나아가  

한국불교는 선불교 이전에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나와 너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표며, 이를 위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보살도를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을 살펴보면, 보시는 타인의 성불을 위해 마음과 물질, 언어, 행동으로 돕는 것이고, 인욕은 그것을 실천하는데 싫증 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요, 정진은 열심히 보시하는 것입니다. 선정은 집중된 고요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고 반야는 그 보시가 가장 적절해서 무궁무진하게 확산되는 것입니다. 대승의 핵심 실천사상인 육바라밀도 이렇게 남을 위한 끝없는 행인데 과연 한국불교에서는 사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세상 모든 생명이 깨닫게 하자는 원력은 과연 존재할까요? 오히려 반대 아닐까요? 

수행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영할 줄 알아야 물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 내가 수행을 어느 정도 해야 타인을 수행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을 이끌면 같이 지옥으로 간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수영을 못해도 얼마든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다. 튜브나 밧줄을 던지거나 119 신고를 통해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처럼 수행의 원리를 잘 몰라도 사경하고, 불공을 올리고, 염불하는 등의 수행은 특별한 식견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고 권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을 돕지 않고 평생 외골수로 수행만 하다가 결국 남에게 짐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부가 무르익도록 기다리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기도 합니다.

타인을 돕다 보면 돕는 것만 아니라 그것이 ‘탁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남을 구제하는 것으로도 자신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깨달음을 우선하는 관점이 한국불교에 팽배해지면서 승가는 더 게을러지고, 형식화되고, 무능해지고, 이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요? 

남을 도우려는 보현행원을 실천하면 더 자비롭고 지혜로워집니다. 남을 돕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찰의 힘과 큰 의지력, 원력이 없으면 그만두고 맙니다. 보살행이 대승불교의 꽃이고 중요한 수행이라는 것은 보살행을 거듭할수록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보살행은 사회참여이기도 합니다. 남을 돕는 일이 작게는 주변의 이웃 중에 헐벗고 병든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넓고 효과적이려면 시스템화가 되어야 하고 조직화 되어야 하며 범지구적, 범우주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구를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이 이웃을 돕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인권과 행동을 위해 노력하는 것, 지구촌의 생명이 상호존중으로 살아가는 것, 차별에서 벗어나 평등을 실현하는 것,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 등은 모두 적극적 사회참여의 보살행입니다. 

그것을 정치 활동으로 치부하며 스님이 정치참여를 해서는 안 된다, 본분사를 지키라며 몰아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것이 정치참여로 보인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변론해서 순수한 생명존중임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결과도 순수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예토)을 불국정토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예토에서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사람이 적고 발보리심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어렵습니다. 정의로운 사람, 밝은 사람, 남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발심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그 발심이 깨달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나를 희생하면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스님이 많을수록 도인은 늘어가고 신도와 출가자도 많아질 것입니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어렵지만 실천해야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따라 하려는 사람도 많아질 것입니다. 

어떻게 남을 도와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주는 것이 보살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한국 승가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스님들이 많아지면 신도님들은 물론 비종교인들도 따를 것이고 그 사회는 이상사회로 향하리라 믿습니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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