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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을 자유

주고받는 것이 좋을까,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좋을까, 받고 안 주는 것이 좋을까, 주고 안 받는 것이 좋을까. 경조사비 이야기다. 주기만 했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알리지도 않았으니 받을 일도 없었다고 해야겠다.

한동안 뜸하던 사람이 갑자기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 오면 아니나 다를까, 경조사 공지가 뜬다. 기분은 별로지만 애써 외면할 만큼 강심장도 못된다. 다들 엇비슷한 감정이겠지만 한국적인 정서상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어렵다. 마음속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마지못해 봉투를 건넨다. 아까운 마음으로 줬으니 어떻게든 받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사람들이 현직에 있을 때 자녀들의 결혼식을 서두르는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들이 눈에 거슬렸다. 꼭 해야 할 사람에게만 성의를 표시하되 청첩장이나 부고를 돌리지도 경조사 봉투를 받지도 않겠다는, ‘욕먹을’ 서원을 세웠다. 여태껏 그렇게 지내왔으니 앞으로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경조사는 친인척이나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게만 알렸으면 좋겠다. 전체메일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경조사 공지는 말 그대로 결례이자 무례이다. 더 불편한 상황은 경조사가 지난 뒤에도 메일 창에 수시로 뜨는 감사편지다. 그런 인사야말로 경조사비를 받은 사람에게나 보내면 될 것이다. 늦게 알았더라도 모른 척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당연히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상대방은 내가 할만한데 안 해서 괘씸하고, 나는 그와 그럴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만 서먹서먹해지게 된다. 안 주고 안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좁은 직장사회 인간관계는 의외로 복잡하다. 처음부터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작은 불상사들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금액을 경조사비로 지출했다. 그러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받은 사람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고, 안 받은 사람은 굉장히 서운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경조사로 연락한 적이 없는데도 자주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참지 못하고 기어이 소리치고 만다. 제발 ‘욕먹을 자유’를 좀 달라고 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구나 자신만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 말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라도 한 번 읽어 볼 일이다.

스스로 욕먹을 자유를 맘껏 즐기고 있는 나는, ‘줬으니 받아야 한다’는 조바심이나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대신 진심을 담은 축하와 심심한 조의를 전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만큼 나의 ‘쾌락의 총량’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더 신나는 법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 이기(利己)는 남에게 칭찬받는 이타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다. 나에게 ‘이기’가 남에게 ‘이타’가 되기도 하는 역설의 쾌감은 상상 이상으로 짜릿하다. 그리스의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이런 수준 높은 쾌락을 향유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 이타주의는 이타적 이기주의보다 인간적이다. 나를 위해서 한 일이 남에게도 좋은 것은, 남을 위해서 한다고 했던 거창한 일이, 결국 자기 잇속을 채우는 것이 되고 마는 경우보다, 훨씬 낫다는 뜻이다. 진정한 이기주의는 철저한 이타주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돌이켜보면 ‘욕먹을 자유’를 달라, 그러면 나를 ‘욕할 자유’를 무제한으로 드리겠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자유’였지만 그들이 ‘부자유’했다면 참회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조용히 치르는 나만의 종교의식이 있다. 푸르던 머리카락을 몽땅 떨군 출가자 나무들이 선승처럼 늘어서 있는 고즈넉한 사찰들을 순례하는 일이다. 세모(歲暮)의 아쉬움을 산사의 푸근함으로 보상받는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61호 / 2022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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