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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친 데 덮친 격

기자명 성진 스님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연속해서 더 큰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엎친 데 덮친다”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어쩌면 작거나 크게 이런 현상을 가끔 마주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외국에서 이민자로 25년 넘게 살아온 어느 한 가정에서 생긴 거익태산(去益泰山)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 가족은 코로나19로 인하여 4년이 넘도록 여행 한 번 못한 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최근 두 달 동안의 한국과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이렇게 전 가족이 여행의 기쁨으로 들떠 있을 무렵 갑자기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한다. 집 주인이 느닷없이 3개월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계획한 여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여행을 떠나기 전 당장 집을 비우고 새집으로 이사까지 마치지 않으면 안 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자. 만일 여러분들이 여행 전 갑자기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고, 아마도 여행을 먼저 수정해 보려는 마음이 먼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 가족의 모습은 의외였다. 여행이라는 것을 변수로 두지 않고, 이번 기회에 새로운 형태의 집으로 옮기는 것에 전 가족이 마음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며 대안을 찾았다.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몇 군데의 집을 선정한 뒤 직접 찾아가 보기로 계획을 짰다. 그런데 그때 여기서 엎친 데 덮치는 일이 발생했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차량이 사라진 것이다. 25년 이민 생활에서 처음으로 생긴 차량 도난 사건이 하필이면 지금 발생한 것이다. 여행을 앞두고 이사라는 변수도 충분히 힘든 일인데 거기에 세워 두었던 차량의 도난까지. 아마도 4년만의 여행이라도 이 정도 악재면 충분히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무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10년이 넘은 차량이라 어차피 바꾸려고 했고, 이 기회에 보험회사로부터 차량 보상비를 받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데 가족의 의견이 모아졌다.

다시 생각해보자. 여러분의 가족이 이 상황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지? 꾹 참고 있었던 이사라는 악재의 돌에, 차량도난이라는 또 다른 악재의 돌이 더해진 상황이라면 결국 이런 악재에 조금이라도 역할이 있는 가족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여행을 가지 말라는 불길한 징조이고, 이런 기분에 무슨 여행이냐면서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가족의 도난 차량은 이틀 후 경찰이 찾았다. 그러나 차량이 심하게 훼손돼 보험회사로부터 보상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 출발 5일 전에 새 집으로 이사하는 일까지 무사히 마치고 웃는 얼굴로 여행을 떠나 한국에서 보름을 머물고, 지금은 유럽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때론 도미노처럼 연달아 찾아올 수도 있다. 여기서 가족은 서로를 지탱해주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가족이니까 쉽게 원망하고 서로에게 화살을 쏘는 것은 안타까운 가족의 관계이다. 가족(家族)의 가(家)자는 집 모양을 딴 한자이다. 집은 기둥과 서까래, 대들보가 지붕의 무게를 나누어 받치고 있다. 이처럼 가족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무게를 나누어 가지고 버텨내는 힘을 주어야 한다. 힘든 일 앞에 가족이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된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습관처럼 불평의 대상을 가족에서 찾다보면 결국 의지할 집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좋은 일을 함께 즐거워하듯 어려움에 버틸 수 있는 가족의 연결된 힘과 신뢰는 가장 큰 가보(家寶)일 것이다. 한 가지 이 가족에게는 하나의 귀여운 ‘엎친 데 덮친 일’이 있었다. 다른 모든 이의 짐은 나왔는데 이 가족의 아버지 짐만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불평 없이 아버지가 입고 다닐 옷을 샀다. 짐은 바로 다음날 다행히도 가족의 품으로 왔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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