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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스님의 가르침

기자명 하림 스님

말씀 없으신 스님 모시기 
쉽지 않다 하소연 하지만
마음자리 지키시는 모습에
주변 사람도 자연히 수행

“저 마당에 있는 차 타고 오후에 어디 가는가?”
은사스님께서 점심 공양 끝에 한 마디 던지십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신문을 읽고 계시는 것을 보니 컨디션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어제 종일 쉬시고 다시 기운을 차리셨나 봅니다. 

스님을 영도 요사채에 모신지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2년 전부터 정착을 하셨습니다. 매일 영양과 사람이 함께하니 스님도 많이 안정되신 듯합니다. 평상시의 모습에서 스님은 거의 요구하는 단어를 잊으신 듯합니다. 어디를 가자고 하거나 뭐가 필요하다거나 먹고 싶은 것이 뭐다 이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다립니다. 옆에서 보다보다 “이것 드실런지요?” “저것 드실런지요?”라고 몇 번을 여쭈면 그냥 침묵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응답하십니다. 아마 평상시의 삶도 그렇게 살아오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끔 스님께서 이야기하십니다. “적게 먹는 것이 건강이여!” “쌀 2~3숟가락 정도만 먹어도 몸이 스스로 영양을 다 만들어 내니 적게 먹어야 몸의 기관이 100% 돌아가는 거야!” 그래야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많이 먹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된다고 하십니다. 

매번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는 많이 먹습니다. 배가 부른데도 멈추지 못합니다. 저를 자세히 보면 첫째는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둘째는 남는 것이 미안해 안 남기려고 먹는 것이 몸에 부담을 줍니다. 이래저래 눈치 보고 사정 보느라 제 몸 상태를 무시하고 맙니다. 

그런데 스님은 저와는 무척 다르십니다. 아무리 드시라고 보채고 달래도 당신 몸이 충분하면 드시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분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좀 드시면 좋겠는데 전혀 사정을 봐주시지 않습니다. 

스님을 가만히 지켜보면 늘 당신을 중심에 두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주변의 상황에 부화뇌동하지 않으십니다. 말없이 혼자 계신 시간이 많은데 함께 있어도 말이 없으십니다. 아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절 선원장인 후배 스님에게 은사스님을 요사채에 모셔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드라이브도 부탁해보곤 하는데 한 번 하고는 마다합니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말씀을 한마디도 안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부담된다고요. 사실 우리도 선방에 앉거나 홀로 고요히 있을 때 가장 편합니다. 침묵 속에 자신의 고요함과 만나는 시간은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명상하는 시간이 아니고 누군가와 같이 움직일 때는 말 없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소통하려는 욕구가 인간에게 있나 봅니다. 은사스님을 모시는 보살님들도 모두 한결같이 제게 하는 하소연이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셔서 너무 힘이 듭니다.”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스님은 당신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 계셔서 그 마음자리를 지키고 계시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스님이 강조하시는 흰 죽으로 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공양 내내 말씀이 없으십니다. 저도 이제야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입니다. 이런저런 말이 올라와도 그냥 흘려보냅니다. 그러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생각나기 전의 자리 그대로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반찬을 옮기고 싶어도 참습니다. 그 마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말이 줄어듭니다. 나의 손 움직임이 번거롭거나 난잡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은사스님의 비법이고 정법이고 몸으로 마음으로 제게 전해주는 가르침입니다. 

말없이 함께 있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마음자리에서 번거롭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은 덕분에 모시는 분들도 저도 번거롭지 않게 됩니다. 그냥 함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매주 한 번씩 주말이 되면 늘 오시는 보살님 두 분과 은사스님을 모시고 바람 쐬러 나갑니다. 차에서 잘 내리시지는 않지만 차가 출발하면 흥겨우신지 노래를 하십니다. 오늘은 평일인데 혼자 모시고 나가야겠습니다. 스님에게서 노래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덕분에 저도 바람 쐬게 됩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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