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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토끼의 정서를 찾는 새해

기자명 성원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2.12.28 12:59
  • 수정 2022.12.28 13:00
  • 호수 1663
  • 댓글 0

사나운 호랑이가 물러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귀여운 토끼해가 돌아왔다. 토끼는 실물도 귀엽고 정겹지만, 우리에게는 더 정겨운 전설 속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아쉽게도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토끼의 이야기보다 달을 정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토끼의 신비감을 잃어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토끼해를 맞아 되돌아보면 문명 발달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이 보름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만이 아니다. 전기의 발견은 우리에게 엄청난 문명을 선사했다고 하지만 그 대가로 잃어버린 것들 또한 적지 않다. 전깃불이 켜지면서 인류는 가장 먼저 달의 존재감을 상실해야 했다. 어린 시절 시골의 그믐날에는 팔을 펼치면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정말 칠흑의 밤을 느끼기도 했고, 보름달 밤 온 세상이 환하여 신문의 글도 읽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보름달빛은 인류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일찍이 부처님은 보름달 밤에 모든 출가 사문을 모이게 하여 포살자자를 하셨다. 포살자자의 첫 시작은 참으로 감격 그 자체였다. “여긴 모인 대중은 지난 한철 생활하는 동안 나의 행동과 말에 허물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이렇게 세 번을 말하고 난 뒤 대중이 묵묵하면 그때서야 기존에 정해진 계율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포살을 행하고 이어서 대중 서로 간에 잘잘못을 미워하는 감정 없이 지적하며 말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승가의 포살자자는 아름다운 달밤에 이루어졌다. 처음 포살에 대한 글을 읽고 너무나 감격했다. 내용보다 상상 속의 그 아름다운 정경이 더 깊이 와 닿았다. 글은 가끔 내용의 전달보다 감성의 터치가 더 오래 가슴에 담기어지는 것 같다.

달은 오랜 세월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 정서적 공감을 일구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전기를 이용한 인공조명으로 인해 인류는 알게 모르게 혹독한 정서적 학대를 강요받아야 했다. 주야가 바뀐 삶으로 얼룩진 생활의 리듬뿐만 아니라 전깃불은 정서적으로 달과 달빛과 달에서 묻어나는 수많은 서정적인 시적 감성을 한꺼번에 소실시켜버렸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뽑혀버리고, 토끼도 쫓겨나 버렸다. 잃어버린 전설보다 더 쓸쓸한 것은 어둠을 몰아낸 전깃불이 우리를 더 살벌한 생존 경쟁의 현장으로 몰아 넣어버린다는 데 있다.

태양의 빛은 너무 밝고 세세하여 세상과 타인의 허물을 너무나 낱낱이 드러내 버린다. 하지만 보름달은 조금 감추고 싶은 것들을 어슴푸레 감추어 주고 확연한 것들은 드러내 주며 사람들에게 깊은 정서적 몰입감을 더해 준다. 사람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감성적 정감을 느끼게 하는 밝기가 바로 보름달의 밝기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자연 감성 조명 그 자체다. 보름달 밤의 로맨스가 그냥 설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정서적인 공감의 시간과 밝기인 것 같다.

살벌하고 투쟁적이었던 호랑이해를 보내며 계묘년 새해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삼척 천은사 벽면 어디엔가 붙어있는 ‘속도보다는 방향이다’라는 글귀처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되돌아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직선적인 경쟁보다 정서적 화합으로 하나가 되는 정겨움 가득한 토끼가 함께 사는 한 해로 일구어가면 더없이 좋겠다.

별주부전의 꾀돌이 토끼 이야기도 좋고 수궁가의 능청맞은 그 토끼의 정서도 좋다.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자기 꾀에 빠져 허둥대는 그 토끼도 좋다. 우리 모두 지혜롭고 재치 있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조금 나태함으로 긴장도 풀고 느린 템포로 여유롭게 살면 좋겠다. 달빛 그림자 가득 머금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보름달 빛을 가득 받으며 함께 모여 정겨운 담소 나누는 정감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존께서 머무셨던 그 달빛 아래에서 모든 이웃들과 손잡고 토끼의 해를 함께 보내고 싶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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