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활불의 삶으로

세계는 해를 더할수록 안락과 평화보다는 갈등과 고통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20세기의 1·2차 세계대전처럼 대량살상은 멈추었을지 몰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여전히 전쟁은 일상화되고, 전선에서의 숱한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된다. 이렇게 무감각해도 되는 것인가. 과학을 필두로 한 학문의 세계는 인간의 지식을 축적하고, 사고파는 시장경제 주도자인 기업은 지구의 경계를 허물며, 국가 간의 숱한 우호 협약들이 매스미디어를 장식함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존재 자체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조건이 우리 자신의 허약한 내면을 흔들기 때문인가. 미래에 대한 불투명은 더욱 강해지며, 지금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신경쇠약증이 우리의 육신을 옥죄고 있다. 실제로 남북의 대치상황이나 중미의 패권경쟁은 한반도를 갈수록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제적인 콘트롤타워 없는 지구사회는 더욱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하루하루 벌어 먹고사는 이웃들은 영하의 겨울 수은주보다도 배나 낮게 체감되는 살갗 속에서 뼈저린 추위를 느낀다. 문명 내의 인간은 공동체의 붕괴로 파편화된 삶의 개별성과 날선 경쟁의 파고 속에서 영혼마저 고독하고 피폐해지고 있다. 

하여 불교계와 불교인들의 역할이 더욱 중대함을 느낀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꿰뚫어 본 석가모니불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어떤 문명에 대해서도 한결같은 본질을 파악하고, 응병여약의 대자비를 베푼다. 입멸 후에도 그의 분신인 수많은 조사들이 그 역할을 역사 속에서 면면히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뜻을 계승하여 실천하고 있는 우리 불자들 또한 불법의 대해 속에서 이웃의 아픔을 내면화하며, 이 지구를 정토극락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불자들의 삶은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사홍서원과 육바라밀의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신라시대의 경주처럼 비록 처마와 처마 끝이 풍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자신이 스스로 법당이 되고 사원이 되어 법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다. 

그러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진공묘유(眞空妙有)다. 불자들은 이 진리에 의거, 자신의 의식을 정화시켜 신구의 삼업을 늘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진공은 우리의 자성이 텅 비어 있음을 말한다. 의식을 180도 회전하여 자신을 회광반조하는 경지에서 보는 것이다. 청원행사 선사는 수행이 깊어지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완전히 무화(無化)된 세계다. 어떤 존재도 가유(假有)에 불과한 절대적 공(空)이다. 이 법문은 오늘날 현대 사회가 직면한 모든 차별과 폭력을 원천적으로 무화시키는 힘이다. 인류는 아직 이 지점에까지도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불안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타, 주객, 성상(性相), 남녀, 강약 모두 진공의 세계에서 하나가 되는, 상대성을 초월한 법성·법신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 빠져 있다. 

이맘때면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설파했다. 묘유의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환호했던가.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우주, 전 우주와 소통하는 금강의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깨우쳐준 이 법문을. 찰나생 찰나멸하는 바로 이 순간,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독존의 심불(心佛)이 삼라만상을 비추고 있다. 혼탁한 세태 속에서 스님이 “돈오돈수”를 주장했던 것 또한 거짓에 물들지 않는 성품을 회복한 부처의 삶을 살아가도록 촉구한 것이다. 

선사들이 깨달음의 상징으로 활용했던 일원상(一圓相)은 이렇게 해서 완성된다. 수없이 반복된 윤회의 터널에서 이제 우리의 의식이 환골탈태할 때가 아닌가. 이 세계를 치유할 묘법은 불법이다. 모든 불전(佛典)들이 한결같이 수행의 마지막 단계로 삼는 탐진치 삼독심의 소멸이 인류의 업장을 뚫고 실현되는 날, 문명은 비로소 희망을 얻을 것이다. 제불조사들과 파수공행하는 우리 불자들이 정신혁명의 불길을 놓기를 세계의 이웃들은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