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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일기의 뗏목, 함께 타요

기자명 한산 스님

부정적이라 여겼던 마음
오롯이 바라보니 사라져
열린 마음 감사로 채우니
공성의 지혜도 함께 자라

거대한 꿈을 품고 출가를 한 건 아니었다.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홀로 있거나 주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조화롭고, 행복을 나누며 살기를 바랐을 뿐이다. 출가 전에도 그랬고 출가 후에도 그랬다. 평안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전 구절은 중국 선종 3대 조사 승찬 스님의 ‘신심명(信心銘)’ 첫 부분이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로지 가리고 선택하는 것을 꺼릴 뿐이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만 버리면, 툭 터져 명백해질 것이다.”

중앙승가대 학부시절에 처음 이글을 보고는 ‘이게 진리다. 이것만 깨달으면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리고 선택하는 것,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만 안 하면 되는데, 내 삶은 온통 시비분별, 판단투성이라 양극단을 오가기 바빴고, 지극한 도가 아득하기만 했다.

출가 후 10여 년간 절, 염불, 간경, 독경, 참회, 참선, 기도, 명상, 치유, 힐링, 영성 공부 등 다양한 수행 방편의 뗏목을 타고 내리며 도움을 받았지만 마음 저 깊숙이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의 의심 덩어리가 두텁게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모를 추구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미얀마 빤디따라마 명상센터에서의 위빠사나 수행이 마음을 지금 여기에 머물게 도와주었고, 수행할 마음을 내려놓고 떠났던 태국 여행이 마음을 활짝 열게 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피하고 억눌러놓았던 두려움, 불안, 분노 등의 상처를 고스란히 만나게 되었다. 보면 사라진다는 말처럼 부정적이라 여겼던 마음들을 오롯이 직면하니 사라짐을 경험하였고, 어떤 마음이든 더 이상 두려워하며 억압하거나 회피할 대상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번뇌가 사라진 그 자리에선 감사와 사랑이 샘솟아 나왔고, 이제야 제대로 안심할 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마음을 열고 눈 앞에 펼쳐진 지금 여기의 일상을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동안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만나기를 저항하면서,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들을 움켜쥐거나 혐오하며 생각에 빠져 살아왔기에 모든 걸 문제로 바라봤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로 이해한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남 탓으로 점철된 삶을 내 마음으로 돌려보기까지, 생각으로 가득 찬 힘을 빼고 지금 여기 눈앞으로 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공부 시작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다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인스타그램에 오마(오픈마인드)라는 캐릭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마를 쓰면서 내 마음은 조금씩 더 열렸고, 감사와 사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마의 인연 고리가 감사 일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고통에 사로잡힌 한 생각에서 벗어나면 감사한 마음이 드러나고, 지금 여기서 감사를 발견하며 겸손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면 고통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다. 일상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감사 일기가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있는지 관찰하고자 2022년부터 네이버 카페 ‘100일 감사 일기’를 운영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감사 일기는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감사하게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게 도와준다. 감사한 일을 함께 기뻐하며 자심(慈心)과 수희찬탄의 공덕을 키우고, 슬픈 일은 함께 나누며 비심(悲心)의 공덕을 기르며, 이러한 일들이 인연화합일 뿐임을 알아차리며 공성(空性)의 지혜도 기르고 있으니 감사 일기 카페는 가상공간에 마련된 수행처이자 포교당이다.

남녀노소, 종교 불문하고 누구나 감사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삶이 감사로 물들어 감을 관찰했고, 그 인연으로 ‘지금 여기 감사 일기’라는 책까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책 출간으로 법보신문에 원고도 쓰게 되었으니 감사가 감사의 꼬리를 물고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감사 일기의 뗏목이 어디까지 나아갈지를.

한산 스님 일상다감사 지도법사
happyhansan@naver.com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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