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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 희생양 되지 않으려면

기자명 명오 스님

토끼 한 마리가 숲 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토끼는 어린 야자수 아래서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지상이 파괴된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그 순간, 잘 익은 나무 열매가 떨어져 큰 소리를 내며 야자수잎을 때렸다. 그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란 토끼는 온 힘을 다해 달리며 소리쳤다. “땅이 무너지고 있다.” 토끼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다른 토끼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토끼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으며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는 숨을 헐떡거리며 묻지 말라고 대꾸했다. 거듭 무슨 일인지 묻는 다른 토끼에게, 토끼는 “땅이 갈라지고 있다”고 외쳤다. 두 마리 토끼는 함께 겁에 질린 채 달렸다. 그들의 두려움은 온 숲속에 전염되어 다른 토끼들까지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숲속의 사슴, 무소, 들소, 코뿔소, 호랑이, 코끼리 등 동물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땅은 무너지고 있지 않았다. 사자만이 그 진실을 알고, 숲속의 동물들을 모두 구제할 수 있었다.

이 우화는 중생의 무지를 일깨우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법문이다. 애초에 토끼는 망상과 오해, 무지로 스스로가 두려움을 자초하였다. 두려움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리고 탐욕이나 분노, 무지의 작용은 전염성이나 파급력이 대단하다. 숲속의 다른 동물들도 무지했기 때문에, 주변의 헛된 말과 잘못된 행동에 전염되어 너도나도 우르르 내달린 것이다. 그들은 벌어진 일의 진위를 가리는 데는 관심조차 없이, 제각기 안전한 보금자리를 떠나기에 바빴다. 정신없이 질주하는 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지금 우리는 이야기 속의 토끼나 사슴, 호랑이나 코끼리가 아닐까?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현대의 급격한 변화가 사람들을 더욱더 질주하도록 만든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따라가는 정서, 물질이든 사람이든 소유하려는 욕망, 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욕구, 진정한 행복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사람들을 정신없이 달려가게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는 한, 불행과 고통을 향해 질주하는 꼴이 되고 만다. 왜 사는가? 지금 나는 무엇을 향하여, 어떻게 가야 하는지 침착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전 세계 17개 선진국 중에 14개국의 국민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가족’이었다. 나머지 세 나라 가운데, 대만과 스페인은 각각 ‘사회’와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리고 한 나라는 유일하게도 ‘물질적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답했는데,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세와 투자 사기를 비롯한 온갖 행태의 사기 사건들은 피해자들의 삶을 유린하고 새해 벽두부터 주요 뉴스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사기와 횡령·배임 등 지능 범죄율이 최고로 집계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사기 범죄율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돈으로 벌어지는 범죄는 부모와 형제, 자식과 부부 등 가족의 경계마저 무너트린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려는 욕심, 자기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 인생과 행복에 대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고 분수에 맞지 않은 물질적 풍요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탐진치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우리가 꿈꾸는 곳이 영원한 행복이었으면 좋겠다.보시로써 탐욕을 다스리고, 자비로써 성냄을 이기며, 지혜로써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을 달려가면 좋겠다. 깨어있기보다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내일이 새롭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사무치게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희망하기보다, 청정한 마음으로 정직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명오 스님 sati348@daum.net

[1666호 / 2023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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