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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수행이론의 총망라(39)-증입 관련; 총론④

연기하는 법계, 사사무애로 이해

한 가지 지위에 모든 지위 포함
한 가지 행에 모든 행이 갖춰져
모든 현상 연기 관점서 보기에
여러 방법으로 연기 관계 설명

‘십지품 제26’ 전체를 전통의 화엄경학에서는 ①내의(來意), ②석명(釋名), ③ 종취(宗趣), ④본문 해석[釋文]으로 나누어 읽어왔다는 이야기는 지난 호에서 했다. 이제 ④본문 해석[釋文]을 시작하려 하는데, 그에 앞서 10단계의 수행 지위 관계를 다시 언급해두려고 한다.

지난 호에 ③종취(宗趣)에 이런 말씀을 드린 바 있다. “열 단계의 지혜로 번뇌를 제거하여 진여를 체험하자는 것이 핵심 주장[宗]이고, 원융하고 서로걸림이 없는 다양한 수행의 양상을 보여주려는 것이 궁극의 지향점[趣]이다.” 즉, 한 가지의 지위가 모든 지위를포함하고, 한 가지의 행에 모든 행이 갖추어진 보현보살의 원만 융통한 수행이 ‘십지품’에서 펼쳐진다. 비록 순차적으로 ①환희지, ②이구지, ③발광지, ④ 염혜지, ⑤난승지, ⑥현전지, ⑦원행지, ⑧부동지, ⑨선혜지, ⑩법운지가 나열되었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바라밀 각각 속에 각기 열 가지 바라밀이 구족했고, 또 역시 하나의 지위(地)마다 열 가지의 지위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해석적 견해가 가능한 것은, 연기하는 법계(法界)를 ‘사사무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당시 사람들의 발상 때문이다. 모든 현상을 ‘연기(緣起)’의 관점에서 존재와 인식을 설명하려는 불교는, 부파의 분열과 교리 해석의 역사 속에서, ‘업’을 ‘기체(基體)’로, 또는번뇌에 오염된 의식인 ‘아뢰야식’을 기체로, 또는 인연에 상응하는 ‘진여’를기체로, 또는 위에서 말한 ‘사사무애하는 법계’를 기체로, 다양한 방법으로 연기 관계를 설명해왔다.

대승경전의 구성작가가 제작한 ‘화엄경’의 본문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사사무애하는 연기의 법계’를 방법적으로 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방법을 신앙적으로 체험한 대표적 인물은 화엄초조로 칭송되는 두순(杜順) 스님이다. 두순 스님은 현학적 이론가가 아니다. 삼매 실천가이자 명상가이다. 게다가 신비한 종교적 기적도 보이시던 분이다.

‘법계관문(法界觀門)’이라는 작은 분량의 문서가 남아있는데, 후대 사람들이 두순 스님의 종교적 말씀을 글로 남긴 것이다. 문면(文面)만 보면 현학적으로 보이지만, 이 저술은 논리만으로는 그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거기에 삼매의 수행이 보태져야 한다.

자, 이런 종교성과 논리성을 염두에 두면서 ④본문 해석[釋文]을 시작하기로 한다. 역시 화엄경학에서는 10문단으로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 열이란 다음과 같다. ①서분(序分), ②삼매분(三昧分), ③가분(加分), ④기분(起分), ⑤ 본분(本分), ⑥청분(請分), ⑦설분(說分), ⑧지영상분(地影像分), ⑨지이익분(地利益分), ⑩지중송분(地重頌分). 한문을 괄호 속에 써두었으니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 분(分)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화엄경’ 구성작가의 솜씨가 발휘되지만, 지면 관계상 ⑦설분(說分)으로 건너 뛴다.

이하에서 필자는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번역에서 두 문단을 인용하는데, 앞 문단은 초지 즉 ‘환희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 어떠한지[依何身]’를 열 가지로 나열한 것이고, 뒷 문단은 ‘환희지에 들어가려는 까닭이 무엇인지[爲何義]’를 열 가지로 나열한 것이다. 번호를 붙여놓았으니 잘 음미하시기 바란다.

“불자들이여, 어떤 중생이 ①선근을 깊이 심고, ②모든 행을 잘 닦고, ③도를 돕는 법을 잘 모으고, ④여러 부처님께 잘 공양하고, ⑤청정한 법[白淨法]을 잘 쌓고, ⑥선지식의 거두어 주심이 되고, ⑦깊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⑧ 광대한 뜻을 세우고, ⑨광대한 지혜[解]를 내면, ⑩자비가 앞에 나타나나니,”

“①부처님의 지혜를 구함이며, ②열 가지 힘을 얻으려 함이며, ③크게 두려움 없음을 얻으려 함이며, ④부처님의 평등한 법을 얻으려 함이며, ⑤일체 세간을 구호하려 함이며, ⑥큰 자비를 깨끗이 하려 함이며, ⑦십력(十力)과 남음이 없는 지혜[無餘智]를 얻으려 함이며, ⑧모든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하여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며, ⑨잠깐 동안에 일체 삼세를 알고자 함이며, ⑩큰 법륜을 굴릴 적에 두려움이 없으려 하는 연고로, 불자여, 보살이 이런 마음을일으키는 것입니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66호 / 2023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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