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부와 사찰

기자명 성진 스님

스님들 웃게 만드는 ‘승소’ 엔
국수과 함게 두부도 포함 돼
조선시대는 억불숭유 패악 속
능침사찰서 제물로 두부 제조
두부 보면 인욕정진이 떠올라

언제가 방송에서 사찰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부분 스님들은 아마 국수라고 이야기 할 것이지만, 필자는 단연코 두부이다. 두부 요리의 종류가 아주 많지만 그 중에서도 들기름을 살짝두르고, 겉면이 노릇노릇 될 때까지 구운 두부부침이다. 국수가 스님들을 웃게 만든다고 해서 승소(僧笑)라 불리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두부 또한 오래전부터 사찰 음식을대표하는 것이고 승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음식인 삼소(三笑) 중에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의 사제 중에는 두부가 너무 맛있어 한 밤중에 다음날 아침 공양에 나갈 두부 한 판의 반을 다 먹어버려, 공양주 보살에게 두부만 훔쳐가는 도둑이 들었다는 오해마저 받은 일화도 있다. 필자 또한 사제들과 강원도 속초 어느 군부대에 위문을 갔을 당시, 하루 세끼를 속초 맑은 순두부와 두부부침만을 먹자 사제들의 이구동성 원성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사찰과 두부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법보신문 기사에서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린,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시에 두부는 사찰과 스님이 배경되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찰에서는 두부가 공양에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이색의 문집에는 우리나라 두부에 관한 첫 기록이 등장하며, 두부 관련 시도 여럿 남아있다. 실제로 한중일 동북아 불교 사찰에 가면 공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은 바로 두부이다. 또한 채식을 위주로 하는 사찰 음식에서 두부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최고의 음식이다. 그렇다면 두부와 불교의 인연은 이렇게 가장 맛있고 건강한 승가음식으로만 내려오게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한국불교와 두부는 조선왕조의 억불정책(抑佛政策)에서 불법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의 음식이라는 뼈아픈 역사도 숨어있다. 조선시대 이전의 5교9산이라는 선과 교의 기초아래 다양한 종파가 내려오던 한국불교는 조선의 4대왕인 세종 때 정치권력에 의해 선종과 교종으로 폐합되며 태종에 의해 축소된 242개의 사찰마저 36개로 폐사되는 치욕적인 위기를 겪는다. 심지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부녀자들이 절에 가면 곤장 100대라는 조항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러한 억불의 상황에서 유생의 패악에서 사찰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왕가의 능을 관리하는 능침사찰(陵寢寺刹)의 역할이었다. 법당에 왕가의 위패를 모셔 놓고 능을 관리하며 제물을 준비하는 굴욕을 감내하며, 당대의 스님들은 인욕으로 사찰을 지켜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능침사찰이라는 이름마저 문정왕후 이후 사라지게 된다. 임진왜란 등의 전란(戰亂) 속에서 승병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을 목숨으로 지켜낸 한국불교에게 돌아온 것은 조포사(造泡寺)라는 이름이었다. 조포사란 바로 두부를 만드는 곳이라는 명칭이다. 승가의 음식이 왕가의 음식으로 그리고 결국 제물에 사용되면서 왕가의 두부를 조공하는 두부공장으로 부처님의 도량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승가의 미소라고 불리던 두부를 당시 스님들은 조포사라는 명칭아래 만들면서 과연 미소지을 수 있었을까? 아마 두부가 왕가의 음식이 되어버린 이후에는 어쩌면 더 이상 승가의 공양물에 오르기는 힘들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토록 억불의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두부는 스님들에게 있어 미소와 가슴시린 아픔을 함께 준 공양물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한 음식이며,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는 사찰 또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능지기에서 두부를 만드는 일까지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불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인욕으로 지켜낸 한국불교이다.

오늘 점심 공양에도 어김없이 두부는 올라와 있다. 이젠 더 이상 무덤을 지키라고도, 두부를 만들어 바치라고도 하지 않는다. 절에 와서 패악질하는 유생도 없는 시대에 출가한 승가의 한 사람으로 당시의 스님들을 인욕과 희생을 생각하면, 두부 한 점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고 또한 죄송스런 마음마저 든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66호 / 2023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