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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동체대비’의 뜻 다시 새겨야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한다.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말한다.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한 몸인 진리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남으로 여기고, 편을 가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벗어난 불보살에게는 동체대비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만 그런가? 유학에서도 모든 존재를 나와 하나로 여기는 것을 어짊[仁]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불인(不仁), 즉 ‘어질지 않다’라고 한다. 정호(程顥, 1032∼85)는 손발에 기가 통하지 않아 자기 몸을 자기 몸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천지만물을 하나로 보는 어짊과 어그러지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풀이하였다.

위대한 분들 얘기니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데 골몰해 갈등과 분쟁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삼아야만 한다. 

그러한 우리의 이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예가 우리 사회의 큰 지향을 잡아나갈 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것을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장애우들, 장애우들의 단체가 사회적 약자가 아니란다. 오히려 많은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강자란 말이다. 많은 시민의 안녕과 복지를 책임져야 할 시장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라 이해하려 해도, 이것은 대종이 틀린 말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합리적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지향해 나가야 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불편한 길이다. 그 과정에는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불만이 쌓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들은 참고 견디며 넘어가야 할 것이다. 불편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볼모로 잡고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우리로 여기지 못하는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면 그 파장은 조그만 불편에 그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진다.

장애우들은 우리 몸의 아픈 부분에 해당한다. 우리의 공업(共業)이 초래한 괴로움을 겪는 이들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아픔은 우리들의 아픔이어야 한다. 조심스럽게 보듬고 함께 치유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의 발언은 자칫 우리의 아픈 부분은 우리 몸이 아니라고 적대적으로 갈라버릴 위험이 있다. 사회적 약자이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은 더 처절한 몸짓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을 확대하여, 시민과 장애우들의 갈등으로 몰아가려 한다. 거기다 장애우들의 갈등까지도 조장하려는 모습이 보이기에 더더욱 걱정스럽다. 실질적 성과를 내기에 급급하여 두고두고 후유증이 남을 이런 방법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대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정의의 원칙이 무엇인가? 자유로운 경쟁을 인정하되,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혜택과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원칙에 충실했는가? 시민의 불편함을 담보로 삼아 내 몸을 내 몸 밖으로 내치는 행태를 보이지 말고, 그런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위에는 언제나 지지율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오 시장의 발언도 그냥 생각 없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속 말해 온 것처럼 장애우 단체들이 시위 등에 불편을 느껴온 시민들의 지지를 기대하여 나온 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 주변의, 우리 사회의 장애우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 봐야 한다. 그분들이 겪는 괴로움에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이 겪는 작은 불편에 혹 짜증스럽게 반응하지는 않았는가? 그리하여 결국 오 시장과 같은 정치적 행태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내 몸을 내 몸으로 여기지 않는 행태를 보여 결국 사회적 불인(不仁), 즉 사회적 마비 증상이 퍼지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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