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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불교를 위협하는지 모른다면 

기자명 이병두

인도 북부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야 왕조는 불교 역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집권 과정에서 무차별 폭력을 저지른 제3대 왕 아쇼까(Aśoka, 재위 272~236 BCE) 대왕에게는 ‘잔인한 아쇼까(Caņdāśoka)’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불교에 귀의한 뒤 그는 불법(佛法, Dharma)에 따라 전쟁과 살생을 멈추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도로·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 등 사회 간접자본 건설을 추진했다. 과거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과 지역에 관용정책을 펼쳤으며, 불교뿐 아니라 백성들이 믿는 다양한 종교와 신앙을 인정하는 포용 정책도 펼쳤다.

인도 전역에 전법 사절을 파견하고, 아들을 출가시켜 바다 건너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하여 그곳이 오늘날까지 남아시아 불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였으며, 룸비니를 비롯한 불교 성지 여러 곳을 순례한 뒤 그곳이 ‘성지’임을 확인하는 명문을 새긴 돌기둥[石柱]을 세우고 성지 인근 지역 주민에 대한 면세 혜택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왕국 곳곳에 ‘8만4000 스뚜빠’라고 전해지는 수많은 사리탑을 세웠다. 재가 신자로 자처했던 그는 불교 내부 문제에는 가능한 간섭하지 않았지만, “상가 분열을 일으키는 자는 누구든지 추방하여 수행처 밖에 머물게 하라”는 칙령을 초전법륜지인 녹야원 등 여러 곳의 바위에 새겨서 교단 구성원들 사이의 화합을 강조하였다.

아쇼까 대왕의 원력과 의지가 아니었더라면, 인도 일부 지역에 머물러 있던 불교가 아시아 전역에 전파돼 ‘세계 종교’로 기반을 다질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에 들어와 서양인들이 “석가모니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불교 경전 기록은 믿을 수 없다”며 펼치는 억지 주장이 ‘과학’의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을 때 이를 뒤집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리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르게 사용하던 불기(佛紀)를 통일할 수 있게 된 것도 아쇼까 대왕이 여러 성지에 세운 돌기둥에 새긴 명문 덕분이었다.

그런데 마우리야 왕조 마지막 왕 때 총사령관이었던 뿌샤미뜨라(Pusyamitra, 재위 187~151 BCE)가 권력을 찬탈하여 새로 슝가 왕조를 창건한 뒤 아쇼까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저지르며 불교를 위기로 몰고 갔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아육왕전(阿育王傳)’ ‘사리불문경(舍利佛問經)’ 등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그가 “내 이름이 소멸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어느 신하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쇼까 대왕처럼 8만4000 스뚜빠를 세우고 왕국의 재산을 포기하여 그것을 삼보에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 스뚜빠를 파괴하고 불법을 소멸시켜 상가를 전멸시키는 것이 두 번째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왕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나는 아쇼까 왕과 같은 세력이 없고 덕도 없으므로, 내 이름을 남기기 위해 두 번째 방법을 택하겠다”고 한 뒤 실제로 전국에서 800곳이 넘는 탑과 사찰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뿌샤미뜨라는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대로 ‘불교 역사 최초의 대규모 법난을 일으킨 죄인’이라는 악명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를 대표하는 불교학자 에띠엔 라모뜨는 ‘인도불교사’에서 “기원전 마지막 200년 동안에 비슈누교가 이룩한 포교의 성공이 뿌샤미뜨라의 박해보다 불교를 훨씬 더 위험에 빠뜨렸다”고 하면서, “이 위험이 심각했던 것은 그것이 위협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000여년 전 인도불교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섣부르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역대 정권의 차별‧탄압과 10‧27법난보다 더 한국불교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아마 우리가 그것이 위협인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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