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2. 수행이론의 총망라(41)-증입 관련; 총론⑥

제3 발광지 수행 출발은 바르게 보기

바르게 봐야 제대로 알게 되니
유위법을 제대로 알라 하는 것
본 모습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
유위법 실상 듣고 사유 후 실천

화엄의 교학에서는 ‘다양한 관점’을 들이대어 복잡한 ‘세상’의 관계 양상을 풀어내고 있다.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어서 보이는 게 아니라, ‘보기’와 ‘존재’가 서로 의존한다. 다양한 ‘관점’만큼 다양하게 ‘세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봄’에는 보는 자의 기존 관점이 매개된다. 물론 매개되는 관점도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사람과 사람 속에 누적되어 전승된다. 

‘제3 발광지’ 수행은 ‘세상[法] 바르게 보기[觀]’에서 출발한다. 바르게 잘 보아야만 제대로 안단다. 바른 행동을 위한 첫 단계는 제대로 알기이다. 그러면 무엇을 잘 알란 말인가? 유위법을 제대로 알라는 것이다. 유위법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속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고 심리적인 것도 있다. ‘반야심경’의 색, 수, 상, 행, 식 등 5온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다. 

‘발광지’에서는 그것을 두 방면으로 들려주고[聞] 있다. 하나는 유위법 자체의 본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위법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을 차례로 인용한다. 

먼저, 유위법 자체의 본모습이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제3지에 머물고는, 모든 하염 있는 법[有爲法]의 실상을 관찰하나니, 이른바 ①무상하고 ②괴롭고 ③부정하고 ④안온하지 못하고 ⑤파괴하고 ⑥오래 있지 못하고 ⑦찰나에 났다 없어지고 ⑧과거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⑨미래로 가는 것도 아니고 ⑩현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상은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유위법의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걸 모르는 것이 번뇌이고 어리석음이다.

다음, 유위법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또 이 법을 관찰하면, ①구원할 이도 없고 ②의지할 데도 없고 ③근심과 함께하고 ④슬픔과 함께하고 ⑤고통과 함께 있고 ⑥사랑하고 미워하는 데 얽매이고 ⑦걱정이 많아지고 ⑧정지하여 있지 못하며 ⑨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은 불이 쉬지 아니하고 ⑩여러 근심에 얽매여 밤낮으로 늘어나며 요술과 같아서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유위법의 실상을 들었으면[聞], 들어 안 대로 실천하려는 생각을 내야[思] 한다. 즉, “보살이 이렇게 하염 있는 법을 싫어하고, 이렇게 일체중생을 불쌍히 생각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생각하기[作是思惟]를 ‘이 중생들이 번뇌와 큰 고통 속에 빠졌으니, 어떠한 방편으로 구제하여 구경(究竟) 열반의 낙에 머물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려면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를 여의지 않아야 하나니, 장애가 없이 해탈한 지혜는 ‘일체 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一切法如實覺]’을 여의지 않고, ‘일체 법을 실상과 같이 깨달음’은 ‘만들어짐도 없고[無行] 생멸도 없는[無生]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만들어짐도 없고 생멸도 없는 행의 지혜’는 ‘선정의 공교롭고 결정하게 관찰하는 지혜[禪善巧決定觀察智]’를 여의지 않고, ‘선정의 공교롭게 많이 앎[善巧多聞]’을 여의지 않았도다.”

이상으로 유위법의 실상을 듣고[聞] 사유[思]했으면, 이제는 몸소 실천[修]하는 일이 남았다. 즉, 욕심과 악한 일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어서 ‘초선’에 머물고, 깨달음과 관찰함을 멸하여 ‘2선’에 머물고, 기쁨을 여의어 ‘3선’에 머물고, 즐거움을 끊되 먼저 고통을 제하고 기쁨과 근심이 멸하여 ‘4선’에 머문다. 다음으로, 허공이 끝없는 곳에 머물고, 다시 알음알이가 끝없는 곳에 머물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곳에 머물고, 마지막에는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곳에 머문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발광지’ 속에 초기 불교의 명상을 모두 8종으로 수용하고, 그런 수행의 결과로 얻게 되는 다양한 능력으로 네 가지 무량심과 다섯 가지 신통도 수용한다. 또,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인 보살의 원력 사상을 첨가하여, 업보의 결과로 수동적으로 태어나는 삶이 아닌 중생 구제를 위해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적극적 삶을 보여준다. 대승 발생 당시까지 유행하던 부파불교의 교리를 조금씩 ‘비틀고 넓혀’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