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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혜능은 누구인가 - 마조선의 사상적 배경③

기자명 정운 스님

‘금강경’에 발심…돈오사상 정립

혜능 선, 조계종에 지대한 영향
‘육조단경’, 동토선종 근본성전 
‘자성 알면 부처’ 돈오돈수 주창
신수 ‘돈오점수’ 정면으로 부정

우리나라 하동 쌍계사에는 6조 혜능의 정상(頂相), 즉 두골이 모셔져 있다. 722년 우리나라 두 승려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걸망 속에 혜능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쌍계사 금당 육조정상탑에 봉안했다고 한다. 쌍계사에는 욕먹을 일이지만, 그럴 개연성은 희박하다. 광동성(廣東省) 소관(韶關) 남화선사(南華禪寺) 육조전(六祖殿)에 혜능의 육신상이 모셔져 있어서다. 한편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할 때, ‘조계(曹溪)’도 혜능이 생전 머물렀던 곳에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성철 스님(1912∼1993)은 혜능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동토(東土)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라고 중시하고 돈황본 단경에 현토와 편역을 하였다. 그만큼 혜능의 선이 우리나라 조계종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혜능(慧能, 638∼713)은 옛날부터 유배지로 유명한 영남[현 廣東省] 사람이다. 혜능의 속성은 ‘노’씨로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무를 해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잠깐 쉬어가기 위해 주막집에 들어갔다가, 방에서 한 승려의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그때 승려가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응당히 주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구절을 읽었는데, 그 구절에 혜능은 출가를 결심했다. 혜능이 5조 홍인(601∼674)을 찾아가 인사를 올리자, 홍인이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저는 영남의 신주라는 땅의 백성인데, 멀리서 스승을 뵙고자 왔습니다. 오직 부처가 되기를 바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네가 살던 영남은 예전부터 오랑캐 땅으로, 너는 오랑캐에 불과하거늘 어찌 하천한 신분으로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비록 남과 북이 있을지언정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스승님과 오랑캐가 다르지 않은데, 어찌 불성에 차별이 있겠습니까?”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사상과 더불어 돈오(頓悟)는 ‘육조단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에서도 돈오사상 뿐만 아니라 선 사상에 있어 혜능의 사상과 ‘육조단경’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혜능이 동아시아 선을 구축한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불성이 기반된 돈오 사상은 혜능 이전에도 주장되었다.

불성을 최초로 주목했던 인물은 혜능이 아니라 도생(355∼434)이다. 도생은 구마라집[344∼413]의 제자로서, ‘열반경’에 근거해 불성을 주장하였다. 곧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사상은 모든 사람이 이미 성불되어 있다는 본각 사상에 기반한다. 당시 도생은 돈오성불론을 주장해 위기에 처할 정도였다. 도생이 주장한 불성론은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훗날 도생의 불성 사상은 후대 조사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육조단경’의 근본사상을 살펴보자. 단경에는 종(宗)·체(體)·본(本)으로 설정되는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가 모두 ‘돈오’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또 이를 통해 무수무증(無修無證)의 돈오돈수 성불론이 형성되었다. 곧 불성이란 용어가 단경에서는 자성으로 쓰이고 있다. 남화사 혜능 사리탑에 “보리자성은 본래 청정함이니, 단지 그 마음을 쓰기만 하면 곧바로 성불이니라[菩提自性本來淸淨但用此心直了成佛]”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 ‘부처는 자성 가운데서 이루는 것이니 몸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성을 모르면 곧 중생이요, 자성을 알면 곧 부처’라고 하였다. 이렇게 ‘자성이 청정하면, 바로 그 자리가 자성의 정토라는 유심정토(唯心淨土)’를 언급한다. 본각(本覺)·본래성불(本來成佛)에 입각한 사상이다. 

이렇듯 단경의 자성은 불성인데, 여래장과도 동일한 의미다. 중국에 와서 불성이란 말이 우세하고, 선종사에서 견불성(見佛性)이 견성(見性)으로 전환되었다. 곧 혜능의 견성은 부처가 되는 인(因)이나 부처가 될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바로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결국 돈오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성은 바로 혜능선을 뜻하며 신수의 선[漸修]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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