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3. 수행이론의 총망라(42)-증입 관련; 총론⑦

대승은 시대 맞는 불교 만들어 낸다

아비달마, 주석‧논증 방식 채택
대승은 ‘보살’이란 가상 상징이
상호 대화 통해 시대문제 논의
바라밀 항목 증가도 시대 반영

‘화엄경’ 구성작가는 당시 현존하던 부파 소속 승려들이 간직하여 전해오는 초기경전과 그 의미를 당시 승려들이 어떻게 해석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 바라문교의 여러 수행법, 나아가 전래의 인도 고유의 과학 지식도 식견이 높다. 이런 자료들을 이야기 소재로, 큰 이야기를 꾸려간다. 그리하여 그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렇게 생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식들을 분류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관계 논리를 개발했다. 그 때 사용하는 것 중의 하나가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관계 논리이다. 하나가 없으면 그 밖의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고, 반드시 서로 기댐에 의해 서로의 존재가 가능해 질 때에 이를 ‘상입’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전체를 상정할 경우 단위 구성 요소도 획정되는데, 하나의 기본 단위를 가능하게 하려면 전체를 상정해야 한다. 때문에, 각각의 하나가 없으면 전체는 구성 불가능하고, 전체를 상정하지 않으면 하나도 하나로서 의미를 획정할 수 없다. 이럴 경우를 ‘상입’이라 한다.

이런 구성 방식을 ‘화엄경’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십지품’ 중에서 ‘염혜지’를 설명하는 대목인데, 역시 <동국역경원> 운허 스님 번역을 인용한다. “이 보살은 4섭법 중에서는 일을 함께하는 것[同事]이 치우쳐 많고, 10바라밀 중에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 치우쳐 많으니, 다른 것을 닦지 아니함은 아니지마는 힘을 따르고 분한을 따를 뿐입니다.” 

참고로 ‘4섭법’이란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사섭으로, 보살이 남들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 방식이다. 그런데 ‘화엄경’ 구성작가는 초기불교에 등장하는 ‘4섭법’을 여기에 활용한다. 필자는 ‘활용’이라 했는데, 그렇다. 대승의 작가는 초기의 여러 이론들을 활용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를 만들어낸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주석’ 내지는 ‘논증’이라는 방식으로 말하기와 글쓰기를 했지만, 대승의 작가들은 ‘보살’이라는 가상의 상징을 만들어 그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시대의 문제를 서로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처를 가상으로 등장시켰다. 그리하여 보살과 보살과의 관계, 보살과 부처와의 관계, 부처와 부처와의 관계, 이렇게 ‘관계’를 엮어내었다.

위의 인용문에 등장한 10바라밀과 ‘염혜지’에서 힘 기울이는 정진바라밀과 관계도 역시 위와 같다. 10바라밀이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여섯 바라밀에, ‘방편-원-력-지’ 넷을 합한 것이다. 이렇게 바라밀 수행의 항목을 늘린 것도 대승 작가들의 솜씨로서 시대의 필요를 반영했다. 

이상에서 필자는 ‘화엄경’ 구성작가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의 교리를 당시 시대의 요구에 따라 활용하면서,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관계 논리를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즉 재구성 ‘형식’을 소개했는데, 이하에서는 ‘내용’ 즉, ‘염혜지’에서의 수행을 소개하기로 한다. 역시 운허 스님의 번역을 인용한다.

“불자여, 보살은 이 염혜지에 머물고는 몸이란 소견[身見]이 머리가 되어, 나란 고집[我見]. 사람이란 고집[人見], 중생이란 고집[衆生見], 오래 산다는 고집[壽命見], 온[薀]‧계(界)‧처(處)로 일으킨 집착과//나오고 빠지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관찰하여 다스리는 연고며, 나의 소유인 연고며, 재물인 연고며, 집착하는 곳인 연고로, 이런 모든 것을 다 여읩니다.”

작가는 가상의 금강장보살을 등장시켜 역시 가상인 해탈월보살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인용문의 내용은 잘못된 집착의 종류를 나열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집착인지 이유를 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집착이 있지만, 핵심은 역시 ‘몸이란 소견[身見]’이다. 범어 표기로는 ‘satkāya-dŗṣṭi’, 한자로는 ‘살가야견(薩迦耶見)’으로 표기해왔는데, 그 뜻은 쉽게 말하면 불생불멸하는 자아가 영원히 실재한다는 견해이다. 이런 잘못된 견해에 얽매이는 이유는, 위 인용문의 뒷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그러면서 “이런 모든 것을 다 여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