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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겨울

기자명 성원 스님

“문득 봄이 우리 곁에 왔다.”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봄은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온 대지 곳곳을 들추며 언 땅을 녹이며 새싹을 일구고, 들과 계곡의 찬기를 조금씩 밀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단지 우리들이 무언가 자신의 일상에 함몰되어 다가오는 봄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살아가면서 관심사 밖의 일들에 대해서 정말 너무 무관심하다. 자신과 밀접하다고 여기는 친지들의 일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누구나 “너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한다. 아이는 매일 매일 자라고 자라왔는데 말이다. 스스로 무관심했음을 방증하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 명상을 주제로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우연히 관련 업무를 맡고 보니 우리들의 일상에 이렇게까지 명상이라는 말이, 아니 문화가 깊숙이 스며 들어와 있는지 놀랐다. 사회적으로만 아니라 불교계에서도 선각자적인 스님들과 불자들이 명상을 불교와 일상에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문화 트랜드를 일구어오고 있다. 현재 서구 사회에서 명상은 상류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상류사회의 분류는 학벌로 대치되는 지식적 지위와 경제적으로 상위권에 속하는 것에 더해 명상을 수행, 체험하며 이야기해야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한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는 물질적 발전으로 거의 완전한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물론 아직 보편적 풍요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분명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인류는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의 상호 공존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부처님의 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기원전 5세기 전후에 인류는 가장 높은 정신문명을 이루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류의 지능이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어 이것이 인류의 가장 큰 재앙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똑똑하다고 찬탄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는 서서히 지능저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니 너무 놀랍다. 

한편 생각해보면 고대 그리스, 부처님 재세시, 그리고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가 인류 정신의 최고 번영기였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유사 이래 인류 정신문명의 최고 전성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이루어온 물질문명의 최고점에서 이제서야 정신문명의 불안전성을 인식한 것일까? 물질적 풍요에 가까운 사회일수록 정신문화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겨울의 혹한을 넘기기에 온통 힘을 기울이느라 봄이 우리 곁에 오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외형적 발전에 몰입해 살다 보니 깜빡 잊은 듯한 정신적 공복을 마침내 인지하면서 명상이 부각되고 있다.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벌써 일상에까지 깊숙이 밀려 들어와 추위에 언 몸을 녹여주는 봄 기운 같이 지친 삶을 위로해 주고 있다.

추위가 천지에 가득하다고 해도 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듯이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기 전에 우리들도 정신적 풍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모든 시대를 망라하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서 그런지 대중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는 명상을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붓다의 풍요한 정신 세상에서 따스하게 겨울을 지내 온 탓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봄기운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지 그 간절함을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할 때 먼저 자각하는 사람, 선각자가 있기 마련이다. 불교도 이제 모두 함께 느낄 수 있는 정신 풍요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다. 오는 봄에 다 이뤄지길 바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2500년을 품고 지켜온 불교의 가치로 인해 인류가 온전한 풍요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봄은 간절히 기다리는 이곳에 꼭 먼저 올 것만 같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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