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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학인 스님들을 기다리며

봄학기에는 나도 모르게 새내기 학인(學人) 스님들을 기다리게 된다. 많을 때는 여남은 명도 됐지만,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요즘에는 서너 명이 고작이다. 아무래도 비구니스님보다는 비구스님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려서 절에서 자라다가 동진(童眞) 출가한 스님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게 발심해 출가한 스님들도 있다. 더러 몽골이나 태국, 스리랑카 등지에서 유학 온 외국인 스님도 보인다.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맞으면 가끔 점심 공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짜장면이나 베트남 국수를 먹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나는 짓궂게도 학교 다닐 때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은근히 꼬드긴다. 말없이 웃는 스님도 있고,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스님도 있다.  

지난 학기에는 수강생 중에 단연 돋보이는 비구스님 두 분과 비구니스님 한 분이 계셨다. 강의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제발표도 솔선해서 가장 먼저 하겠다고 자청했다. 자연스럽게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다. 스님들은 총림에서 강원을 수료했으며, 불교와 무관한 전공으로 학부과정을 마쳤다고도 했다. 일반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으나 몸과 말과 생각에서 학인 스님의 본분을 조금도 벗어남이 없었다. 마음 든든했다. 이런 젊은 스님들이 곧 내일의 한국불교일 터. 환희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느 날 먹성 좋은 학인 스님들에게 겁도 없이 점심 공양을 제안했다. 내 강의를 듣지 않는 스님 한 분을 포함하여 일행이 다섯 명으로 늘어났다. 그까짓 다섯 명 정도야, 뭐. 나는 절에서 못 먹는 것 중에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말해보라고 호기를 부렸다. 학인 스님들은 비빔밥만 빼면 다 좋다고 했다. 모두 웃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짜장면과 만두, 인도 카레, 냉면, 태국의 팟타이와 똠얌꿍, 칼국수, 베트남 쌀국수 등등을 연달아 외쳤다. 그런데 웬걸.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표정들이었다. 은근히 그런 것쯤은 다 먹어봤다는 눈치인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나는 얼른 목소리를 낮춰 그럼 불고기를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대낮이라서 싫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때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음식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나의 최애(最愛) 음식이던 초밥. 학인 스님들에게 넌지시 일식집의 초밥은 어떠냐고 떠봤다. 내심 불고기와 마찬가지로 거절당하기를 바랐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 나의 간절한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스님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구동성으로 초밥을 소리 높여 합창했다. 동시에 내 가슴은 철렁했고. 그렇다고 했던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방정을 찧었다. 속내는 복잡해졌지만, 겉으로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출가자에게 공양하는 것은 큰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미 후회하기엔 늦었고. 눈물을 머금고 맛있게 초밥을 먹는 일만 남았다. 

카카오 택시 두 대를 불러 가끔 가던 이태원의 가정식 일식당으로 향했다. 학인 스님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잔뜩 신이 난 모습들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초밥 접시들을 무서운 속도로 비워댔다. 한입에 넣기가 좀 좋은 음식인가. 속이 쓰린 것도 잠시. 통통한 몸집의 비구스님 한 분이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젓가락 놓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까짓것, 모듬 초밥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한 달 용돈이 몽땅 날아가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나마 학인 스님들의 대만족한 얼굴이 나를 힘겹게 위로해주었다.

그런 아픈 기억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이번 학기에도 나는 학인 스님들과의 특별한 점심 공양을 계획하고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대로 날짜를 잡아볼 작정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들에게서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대승지향의 맑고 밝은 미래불교를 일찌감치 엿본다. 끝으로 선배 학인 스님들에게 부탁 하나만. 신입생 새내기 스님들에게는 제발 나와 초밥 먹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를. 뭐 그건 그렇고. 초롱초롱한 눈빛의 학인 스님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누가 뭐래도 봄은 이렇게 좋은 계절인 것을.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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