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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법 전파와 불교 의학서의 한역

기자명 이현숙

스님들이 앞장서 인도의학 경험 중국에 전파

동아시아에 불교 전파되면서 인도의학·중국의학 결합
당 의학 정수 ‘비급천금요방’ 불교의학 영향으로 발간
한국·일본 등 이웃나라 의학 발달에도 크게 영향 미쳐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초간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초간본. 

2월초 벨기에 루뱅대학을 견학할 때, 아드리안 카르보네(Adrien Carbonnet) 교수 덕분에 루뱅대학 도서관 내에 보유하고 있는 동서양의 고의서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특히 루뱅대학 의대에서 잠시 수학하였던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가 1543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간하였던 해부학 초간본을 비롯하여 동서양의 고의학서를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직접 볼 수 있었던 일은 이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도서관 내에 고서가 워낙 많기때문에 1840년 이후의 책은 고서 취급을 하지 않고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이는 조선 헌종(1827~1849)대 출간된 책도 고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서, 19세기에 출간된 대부분의 동아시아 도서들을 개가식 도서관에서 볼 수 있었다. 19세기 중국과 일본에서 발간되었던 서적들이 박스 채 수장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벨기에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이 말년에 고국에 돌아와 루뱅대학에 기증한 것들이었다. 이 가운데 일제시기 만주에서 발간된 귀한 한국어 서적들도 눈에 띄었는데, 인력이 모자라서 선교사들이 기증한 상당수 동아시아 고서들을 정리조차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벨기에 출신 선교사 가운데 2008년 성인으로 추앙받은 다미안 베스테르(Damien de Veuster, 1840~1889) 신부를 기리는 성당도 둘러보았다. 그는 1864년부터 하와이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는데 한센인을 돌보다 하와이에서 선종하였으며, 1936년 유해가 고향 벨기에로 돌아왔다. 한국에도 벨기에 출신 신부들이 활약하였는데, 임실 치즈를 만든 지정환, 즉 디디에 세르테벤스( Didier t'Serstevens, 1931~2019)신부도 그 중 한 분이다.
선교하였던 지역에서 수집하였던 서적을 루뱅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였던 신부들은 모두 고향에 돌아가서 임종을 맞이한 분들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기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특히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 고대 중국과 한국에 온 승려들은 아무도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였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신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리타향 낯 설고 물 설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고행을 자처한 사람들이었다. 

천축(天竺) 즉 인도 지역에서 온 승려들은 중국에 불법을 전하면서 인도의 불교의학도 함께 전하였다. 이들은 인도의 의학서도 번역하였는데 ‘수서’ 경적지에 이름이 남아있는 것들 중 몇 개만 소개해보면,  ‘바라문제선약방(婆羅門諸仙藥方)’ (20권), ‘바라문약방’(5권), ‘기파소술선인명론방(耆婆所述仙人命論方)’(2권), ‘용수보살약방’(4권) 등을 들 수 있다. 

바라문 약방은 인도 브라만 승려들이 사용하던 약방을 소개한 것으로, 당나라 현장법사는 ‘대당서역기’권2에서 천축의 바라문은 첫째 수(壽) 즉 목숨을 보존하고 성품을 길들이는 법, 둘째 사(祠) 즉 제사를 올리고 기도하는 법, 셋째 평(平) 즉 예의와 점복과 병법과 군진(軍陣)치는 법, 넷째 술(術) 즉 뛰어난 기능과 기예와 산술과 주문 및 의약처방하는 법 등 총4가지 법을 배운다고 소개하였다. 바라문 사이에서 전수되는 약방들이 중국에 불법과 함께 전파되었던 것이다. 기파와 용수(龍樹, Nāgārjuna)는 부처의 제자 가운데 의학이 뛰어났던 자로서, 이들의 이름을 딴 불교 의학서들이 위진남북조 시기 중국에서 번역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인도에서 온 불교의학서들이 직접 번역되었지만, 중국에 불법이 널리 전파되면서 중국어로 된 불교의학서들이 나타났다. 동진시기 영남(嶺南)의학을 대표하는 승려 지법존(支法存)은 인도 출신으로 광주(廣州)에서 거주하며 의술로 거부가 되었는데, ‘신소방(申蘇方)’을 남겼다. 당시 중원에서 양자강 이남으로 이주하였던 한족 사이에서 각기병이 대유행하였는데, 지법존은 각기병을 잘 치료하였다고 한다. 당 의학자 손사막의 ‘비급천금요방’권7, 풍독각기 항목에서 소개한 방풍탕은 방풍, 마황, 진구(秦艽), 독활 등을 주재로 하는 것인데, 남방의 지법존이 사용하였던 처방으로 열이 나고 사지가 마비되면서 헛소리까지 하는 것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어 여러 의서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비급천금요방’에는 지법존 뿐 아니라 각기를 잘 고쳤던 심사(深師)도 소개하였다. 이에 따르면, 각기는 남조에만 있었는데 당대에 들어서 중원 지역에도 널리 유행하여 지법존과 심사의 각기치료법이 유용하였다고 한다. 

미지의 질병이 유행하자 가장 먼저 앞장서서 치료책을 개발하였던 것은 승려들이었던 것이다. 승심(僧深)의 약방(30권)은 당 왕도(王燾)가 752년에 편찬한 ‘외대비요’와 일본의 단바노 야스요리(丹波康賴)가 982년에 지은 ‘의심방’뿐 아니라 1433년 조선 세종대에 발간된 ‘향약집성방’에도 인용되고 있다. 5세기에 개발된 불교 약방의 효험이 뛰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승광(僧匡)의 침구경은 ‘수서’ 경적지에 이름이 남아있는데, 중국의 침구술이 불교의학과 결합하여 승려 사이에 침구술이 널리 알려진 결과였다. 즉 동아시아에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인도의학과 진한시대의 중국의학이 결합되어 위진남북조 시대에 불교 의학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북방 유목민족을 피해 317년 진나라가 양자강 유역의 남경으로 천도한 이래 581년 수나라가 건립될 때까지 남북조로 나뉘어 전쟁이 빈번하였으며, 전염병 역시 횡행하였다. 38년으로 단명하였던 수나라에서 610년 병의 원인과 경과를 다룬 ‘제병원후론’(50권)과 26,000권에 달하는 남북조 처방집 모음격인 ‘사해유취방’을 편찬한 것은 국가 주도의 질병치료책을 총정리한 것으로 그만큼 남북조를 아우르는 의학서 편찬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주도로 의학서를 발간하기 전, 불교 승려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질병에 대한 처방들을 개발하거나 인도 의학의 경험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이러한 불교의학은 중국의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당 의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비급천금요방’은 불교의학의 영향 하에 발간되었다. 이는 한국과 일본 등 이웃 나라의 의학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발생한 브라만 의학과 불교 의학 서적들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던 선교사들은 불경을 번역하였던 담무참(曇無讖, 385~433)이나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처럼 그 누구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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