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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기자명 하림 스님

대학 강단에 서는 일 부담이지만
새로운 일, 오히려 고마운 마음
번뇌 대비해 준비하는 것 수행
학생에게 불교 교육하는 건 보람

올해 처음으로 부산 동명대학교에서 명상 강의 요청이 있어 해보기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의 강단에 선다는 것이 제게는 도무지 안 맞는 것만 같아 부담이 큽니다. 이력서를 내는데 훌륭한 논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석·박사 통합으로 4년간 수료한 것이 전부입니다. 얼마 전에는 공개강의를 했습니다. 다행히 스님이 하는 강의라 색다른 느낌이었는지 평가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앞으로가 염려되는 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야 본래 스님이니 절에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있었으니 잠시 산에 가더라도 물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저는 준비된 것이 부족함에도 기회를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입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해보겠다고 결정한 것은 예전에 부산 지역 4개 대학 불교 동아리 학생들을 위한 법회의 기억 덕분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저녁마다 우리 절에서 2년 정도 법회를 했는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들이 사라져 무척 아쉬웠습니다. 더군다나 대학 쪽에서 먼저 불러주니 기꺼이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까지 온라인으로 강의계획서를 입력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너무 서툽니다. 급기야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작해서 이 고생이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를 더 주저앉히려고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며 겨우 완성본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처음 가는 산길이 오히려 호기심이 있듯 새로운 길이 주는 흥미로움도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익숙한 일만 찾게 되고 새로운 일은 귀찮게만 여겨왔습니다. 그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면서 새로운 일을 향해 가려고 합니다.

강의를 맡은 학과의 명칭은 선명상치유학과입니다. 아마 부산에 있는 유일한 불교와 인연 있는 학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17년 전을 돌이켜봅니다. 미타선원에서 월암 스님을 교장으로 모시고 ‘행복선수행학교’를 개설했습니다. 7년 동안 매주 강좌와 법회를 열었고 선지도사 과정도 2년간 진행했습니다. 그 후로는 명상센터를 10년 넘게 운영했습니다. 물론 이론적인 부분은 부족합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육조단경’과 ‘대념처경’을 토대로 선과 명상을 안내하고 이 공부를 통해 스스로 번뇌의 소멸로 향하는 길을 알고 가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는 나름 준비되어 있다고 스스로 용기를 냅니다. 

중생의 특징이라면 번뇌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뇌에서 벗어나면 해탈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번뇌의 대표 주자는 ‘화’입니다. 나에게 화를 내면 우울로 가고 남에게 화를 내면 큰 사고가 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적이 올 것을 대비해서 성벽을 쌓고 준비를 하듯이 평화로운 마음을 깨뜨리는 번뇌가 올 것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내게 불편함이 나타났을 때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스스로 잘 알기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툭 내뱉습니다. “저런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텐데!” “그 모습을 볼 때 화나고 너무 힘들어요.”

상대는 나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통해서 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아! 나에게 이런 마음이 고집스럽게 자리 잡고 있구나! 이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구나!’ 하고 알아차린다면 고집하는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훨씬 감소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번뇌에서 벗어나는 고집멸도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을 대학의 제도권에서 공부하고 익히고 활용할 수 있다면 붓다의 가르침이 더 큰 보람으로 다가오지 싶습니다. 

입학과 개강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신입생이 된 기분입니다. 사찰도 신도님들께 이런 느낌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도 공부하러 가신다면 이 기분을 나눌 수 있지 싶습니다. 더구나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인 불교를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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