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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수행이론의 총망라(46)-증입 관련; 각론⑧

연기를 관찰하는 지혜의 힘이 붙다 

지혜 바탕 대자대비 마음으로
세상을 구제해야 현전지 완성
일체법이 공함 관찰함이 시작
멈춤 없이 계속 닦는 게 핵심

제4지 ‘염혜지’ 수행으로 번뇌를 태워 없애 세간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세간으로 들어가 구제 중생까지는 못하며, 제5지 ‘난승지’에서는 세간에 들어갔더라도 생사윤회에 오염될까 버리려 하거나 열반은 청정한 거라 여겨 추구하려는 소견이 남아있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버리니 추구하니 하는 작의(作意)를 지우는 수행을 ‘제6 현전지(現前地)’에 배치한다. 

‘현전’이란 눈앞에 나타난다, 마음속에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뜻인데, 무엇이 그렇게 드러난단 말인가? ‘관찰하는 지혜’이다. 관찰? 무엇을 관찰한다는 말인가? 모든 현상의 연기(緣起)이다. 연기를 관찰하는 지혜의 힘이 붙으면, ‘분별없는 지혜’가 눈앞에, 마음에 분명해진다. 그러면 그 지혜를 바탕으로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세상을 구제해야 비로소 ‘제6 현전지’가 완성된다. 일련의 과정을 압축한 게송을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에서 인용한다.

“모든 법의 성품을 통달한다면(若能通達諸法性) 있건 없건 마음이 동하지 않고(於有於無心不動) 세상을 구원하려 수행하나니(爲欲救世勤修行) 부처님 입으로 난 참 불자로다.(此佛口生眞佛子)”

절집 강원(講院)이나 마을집 서재에서 청량 국사의 ‘화엄경수소연의초’를 읽어본 사람은 경험하겠지만, ‘제6 현전지’ 부분이 제일 어렵다. 양도 많다. 천자문의 순서로 번호 붙인 ‘궐(闕)’자 권 전체 총 246쪽과 ‘주(珠)’자 권 중 앞의 총 130쪽을 차지한다. 과목(科目)도 대단히 복잡해서 이 대목을 읽고 나면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를 깨친 듯, 경안(輕安)의 미세 망념조차 생긴다.

제6 현전지 수행은 일체법은 연기이고 공임을 관찰하여 익히면서 시작한다. 운허 스님은 ‘화엄경’ 이 대목을 “보살이 이렇게 일체 법을 관찰하여 제 성품이 청정하고, 따라 순종하며 어김이 없으면 ‘제6 현전지’에 들어간다”고 번역했다. 그렇다고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건 아니란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닦아야 하는데, 실은 이 부분이 ‘제6 현전지’의 핵심이다. 셋으로 나누어진다. 

(1)마음과 경계를 총체적으로 밝히는 부분, (2)관찰하는 양상을 낱낱이 밝히는 부분, (3)법계 연기 관찰을 총결하는 부분이다.

(1)에서의 ‘마음’이란 대비의 마음이고, ‘경계’는 세간의 생멸이다. 즉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간 앞에 생겼다가 뒤에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고, 또 잡된 생각이 생겨나고 청정한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2)는 다양하다. 우리나라 불교도들에게 많이 알려진 연기(緣起) 관련 이야기는 ‘12지(支) 연기’이지만, ‘화엄경’ 구성작가는 석가모니 이래 불교의 역사 속에서 해석되고 늘어난 다양한 연기 관련 이야기를 모았다. 그 다양함을 한마디로 말하면 ‘법계에서 일어나는 총체인 커다란 연기[法界一大緣起]’이다. ‘제6 현전지’ 수행의 핵심은 법계 연기를 관찰하는 것이다. 1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화엄의 경전 작가는 ‘열 겹[重]으로 연기관’(緣起觀)을 구성한다. 이 점이 잘 드러나게 운허 스님께서는 ‘한글대장경’에 섬세하게 번역해놓으셨다. 운허 스님의 번역을 잘 보면, “불자여”라고 시작하는 내용을 다섯 문단으로, 이어서 “또”로 시작하는 내용을 다섯 문단으로, 이렇게 10겹[重]으로 나누었다. 

첫 겹의 앞부분 문장을 인용해보자. “세간에 태어나는 것이 모두 ‘나’에 집착한 탓이니, 만일 ‘나’를 여의면 날 곳이 없으리라.” ‘나’라는 집착을 끊으면 윤회가 끝나지만, 집착하면 이어진다. 이렇게 윤회가 ‘유지상속(維持相續)’하는 내용이 위의 인용문 뒤에 이어진다. 둘째 겹은 ‘섭귀일심(涉歸一心)’으로, “3계에 있는 것은 오직 한 마음뿐인데, 여래가 이것을 분별해서 12가지[有支]라 말씀하셨으니, 다 한 마음을 의지하여 이렇게 세운 것이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다. “불자여” 그리고 “또”, 이렇게 이어가면서 다양한 연기 관찰 ‘열 겹[重]’이 소개된다.

(3)의 총결에서는 이상의 연기 관찰 방식을 역‧순(逆順)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다시 염·정(染淨)의 경우를 곱하면, 10×2×2, 이렇게 총 40 경우가 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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