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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라 불교의학의 복약법과 주문

기자명 이현숙

일연, 왜 삼국유사에 ‘신주’ 편을 따로 뒀을까 

불교가 지닌 신이한 치유능력 강조 위해 밀본·혜통·명랑 등장
신주로 활약한 설화 강조 배경에는 전쟁기 유행한 질병 있어
복용 효과 높이고자 치병 능력 있는 불보살 부른 뒤 ‘사바하’

신라 복약송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약사유리광불. 사진은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신라 복약송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약사유리광불. 사진은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인도에서 수많은 승려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불법을 전하기 위해 불경을 번역하였다. 그 가운데 의학과 관련된 것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인도 사찰 내에서 전해 내려오던 각종 약방들도 한문으로 번역함으로써 남북조 시기 중국의학이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진시기 축담무란(竺曇無蘭)은 4세기 후반 유행병을 위한 ‘불설주시기병경(佛說呪時氣病經)’과 어린아이를 치유하는 ‘불설주소아경(佛說呪小兒經)’, 치통을 위한 ‘불설주치경(佛說呪齒經)’, 눈병을 위한 ‘불설주목경(佛說呪目經)’ 등을 번역하여 다양한 질병을 치유하는 주문을 소개하였다. 

이처럼 불경 속에는 인간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다양한 주문들이 있으며, 사찰 내에는 이러한 주문만을 전문으로 하는 주사(呪師)가 존재하였다. 이는 908년 최치원이 중아찬 이재(異才)가 수창군(현 대구시 수성구)의 남쪽 고개에 팔각등루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글에서 흥륜사의 융선(融善) 주사(呪師)가 참석하였다고 언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말여초 지방사회가 전란 속에 있을 때 경주의 흥륜사에 소속되었던 주사가 수창군까지 파견되었던 것인데, 주사는 질병 치유도 함께 담당하였을 것이다. 

13세기 후반 일연이 ‘삼국유사’ 권6에서 신주(神呪)를 따로 다룬 것은 밀본, 혜통, 명랑 세 법사의 이야기를 통해 불교가 지닌 신이한 치유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밀본은 선덕여왕과 김양도 및 김유신의 친척 수천(秀天)이 앓던 악질 등을 치유하여 아도가 성국공주를 치료해준 공으로 신라왕실이 창건하였다는 흥륜사를 접수하였다. 또한 명랑의 경우, 670년에 당이 수군을 동원해 신라를 공격하자 국왕의 명령으로 문두루법을 사용하여 신라군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혜통의 이야기는 질병치료와 관련하여 주목할만 하다. 그는 당나라로 유학가서 무외삼장을 3년이나 섬겼으나 허락하지 않자 뜰에 서서 머리에 불 그릇을 이어 정수리가 터지는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삼장이 손가락으로 혜통의 터진 곳을 어루만지며 신주(神呪)를 암송하자 상처가 붙어서 예전처럼 되었다. 이때 당 고종의 공주가 병에 걸려 삼장에게 치료를 청하자, 혜통이 대신 가서 공주의 병을 일으켰던 교룡을 쫓아냈다. 화가 난 교룡은 신라 경주의 문잉림으로 와서 신라사람들을 해쳤는데, 당나라에 사절로 갔던 정공(鄭恭)이 혜통을 찾아와 사정을 말하자 665년 귀국하여 교룡(蛟龍)을 쫓아냈다고 한다. 

밀교의 시조로 알려진 무외삼장은 716년경에 당나라로 왔다고 하니 혜통의 이야기 속의 무외삼장과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665년이라고 혜통이 귀국연대를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당나라 고종의 공주에게 질병을 일으킨 교룡이 중국에서 경주의 문잉림으로 왔다는 것은 당 장안에서 유행하던 질병이 신라 경주에도 발발한 것을 은유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혜통이 귀국하던 무렵은 신라가 당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의 공략에 힘쓰던 시기였다. 660년 8월(음력)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공격서부터 시작하여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 신라군이 당군을 완전히 패배시키기까지 신라는 17년에 걸친 전란기를 보냈다. 당군은 사비성 공격 당시 10만명(또는 13만명)이 한반도에 출격하였으며,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는 20만명의 대군이 신라군과 전투를 하였다. 

신라통일전쟁은 동아시아 대전이라고 할만큼 동아시아 대부분의 종족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전투를 하였다. 당군 내에는 투르크 기병과 위구르족 군사도 있었으며, 고구려군에는 말갈족 병사들이 함께 하였고, 백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일본에서 원군이 파병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한반도 내에서 서로 얽혀서 장기간 전쟁을 벌이는 것은 각 지역의 풍토병을 서로 교환하는 장이기도 하였기에, 한반도에는 새로운 질병들이 많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명랑과 혜통이 신주를 통해 활약하였다는 설화들이 만들어졌던 배경에는 전쟁기의 질병 유행이 있었다. 장안에서 유행하던 질병이 신라 경주에도 유행하였다라는 관념이 당시에 있었으며, 이를 치료하는데 당 유학승들이 앞장 섰던 것이다. 

밀본이나 혜통 등의 불교 승려들이 주문만으로 질병을 치유한 것은 아니었다. 982년 일본의 단바노 아쓰요리(丹波康賴)가 왕명으로 편찬하였던 ‘의심방(醫心方)’에는 8세기 무렵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신라법사방’을 인용한 것이 있어 신라 불교의학의 단편을 짐작할 수 있다. 

3개 조문이 인용되었는데, 먼저 뱃속에 덩어리가 생겨 아픈 적취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속수자(續隨子) 14알을 술 한 홉에 타서 복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정력 증강을 위하여 말벌집인 노봉방을 말린 뒤 태워서 반은 술에 타서 마시고 반은 남성 생식기에 바르라고 하였는데, 단바는 쇠약해지는 것을 미리 막는 방술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이 처방이 과연 인도에서 온 것인지, 당나라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전하는 전근대 의학서 가운데 노봉방의 밀랍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신라법사방’이 유일하다. 이는 신라 승려들이 처첩이 많았던 왕실이나 귀족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약을 먹을 때 외우는 복약송 또한 인용하였는데, “‘신라법사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을 복용할 때는 다음과 같이 모두 주문을 외운다. ‘동방에 계신 약사유리광불과 약왕보살, 약상(藥上)보살 및 기파의왕(耆婆醫王)  설산동자(雪山童子)에게 귀의하오니, 영약을 베풀어 환자를 치료해 사기(邪氣)가 소멸되어 없어지고, 선신(善神)이 도와줘서 오장이 평화롭게 되고, 육부가 순조롭게 되며, 70만 맥이 저절로 통하고 펴지며, 팔다리의 사지가 강건해지고 수명이 연장되며, 언제든지 가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거나 제천이 보호하여 주소서. 사바하!’ 동쪽을 향해 한번 외우고는 바로 약을 복용한다”고 하였다. 

복약주문의 내용은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존재로 약사불 - 약왕보살 -약상보살 - 기파 의왕 - 설산 동자 등의 치병 능력치 순서로 부르며 낫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은 뒤, ‘사바하’라는 진언(眞言)과 함께 동쪽을 향해 한번 주문을 외운 뒤 약을 복용하라는 동작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즉 불교의학은 약의 복용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이러한 주문들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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