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전예수재 단상 위경(僞經)은 나쁜가?

기자명 황산 스님

위경은 독송 가치 없다고 속단
포교하며 편견이었음 깨달아
생전예수재 등 공덕짓는 방편
위경 속에서도 정법 발견해야

이번 해에는 윤달이 들어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윤달에 생전예수재를 지냅니다. 생전예수재는 특별기도인 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포교라 생각합니다. 생전예수재를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지 고민하며 ‘보현행원품’ 독송을 기본 과제로 삼으려다가 우연히 과거에 독송했던 ‘예수시왕생칠경’과 ‘수생경’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이 경전은 분명 위경(僞經)입니다. 불교에 유교와 도교를 덧칠한 느낌이니 위경 중의 위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대 때 저는 위경은 가짜 경이어서 독송할 가치가 없고 오히려 생각을 오염시키니 있어서는 안 될 경이라고 여겼습니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포교를 하면서 ‘지장경’이나 ‘부모은중경’ 등을 독송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천지팔양경’까지 독송하였는데 그러면서 정말 제가 편견이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생전예수재 기간에는 불자님들께도 ‘예수시왕생칠경’과 ‘수생경’을 매일 독송하도록 권하기로 했습니다. 

위경의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경을 설하게 된 배경은 이러합니다.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 대열반을 친견하기 위해 대중들이 모였을 때, 저승세계 염라왕과 그의 권속들도 다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염라왕에게 “보현왕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시었고 염라왕이 어떻게 염라왕이 되었는지 전생 인연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는 선남자 선여인에게 염라왕을 비롯한 저승세계 열 분의 시왕 이름을 낱낱이 밝히시고 그들에게 기도와 공양을 올리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열 분이 각각 초재부터 칠재까지 담당하여 여덟 번째 평등대왕은 100재, 아홉째 도시대왕은 1년, 열 번째 오도전륜대왕은 3년의 재를 맡는다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시왕생칠경’은 49재를 넘어 3년 상(喪)을 치르는 경입니다. 3년 동안 열 분의 시왕에게 공양을 올리며 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논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유교의 3년 상을 불교에서 문화로 받아들여 재로 대신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가르침이라 여겨집니다. 

‘수생경’은 세간에서 ‘빚 갚으러 왔다’ 혹은 ‘빚졌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여럿이지만 그중 하나로 ‘빚 갚으러 왔다’고 생각하게 되면 매사에 충실해져 행복한 삶을 사는 근본이 될 수 있습니다. 태어난 연도에 따라 빚진 금액과 경의 수, 은행 등이 정해져 있는데 논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더라도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요즘은 절에 다니는 사람도 줄고 49재를 지내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심지어 초재와 막재만 지내라고 권하는 스님도 많습니다. 칠칠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스님들조차 의식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49재, 백중, 생전예수재 등은 신심을 일으키고 공덕을 짓는데 매우 유용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경이 나쁘다고 비판만 하면 신도들은 오히려 갈팡질팡 헤매게 됩니다.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왜곡을 이해하고 정법으로 돌리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경전도 수행하는 자가 없으면 휴지조각이 됩니다. 위경이라 불리는 경전도 정법으로 풀어내면 왜곡된 현실에 속지 않는 지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음력이 현대인들에게 희미해지니 윤달이라는 개념도 곧 사라질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은 고령화되어 오래지 않아 소멸 현상을 겪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법이든 방편이든 뭐라도 열심히 전법을 해야 불교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인 듯합니다. 그때가 되면 위경이니 뭐니 하는 논쟁도 배부른 소리였다고 회상할지 모릅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부처님의 정법은 꼭 필요합니다. 그 정법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불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극히 일부 사람만 인연을 맺을 것입니다. 위경을 위경인 줄 바르게 알고, 그 속에서 정법을 발견하길 바라며 이번 윤달에는 위경을 힘차게 독송하겠습니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