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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기와 실패한 구원의 기록

  • 법보시론
  • 입력 2023.04.10 13:25
  • 수정 2023.04.10 13:56
  • 호수 1676
  • 댓글 0

나는 종교를 최대한 일상의 자리에서 상식의 논리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종교는 일상을 극화하고 과장하고 확대해서 보여주는 매우 정밀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치기와 우매, 슬픔과 증오를 일상의 자리에서 이해해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나는 신이다’는 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우고 자기를 온통 신으로 채워 버린 사람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부제인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자기가 신이라 믿은 사람에게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유린당한 후 이 신이 가짜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또는 깨달을 기회조차 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신자가 아닌 ‘신의 배교’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는 곧 신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신자들이 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자기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컨대 성경을 2천 번 읽었다는 정명석 씨는 자기만의 특이한 해석 체계로 성서의 내용을 풀이하고 이에 근거하여 삶과 세상의 모든 일을 해석하던 사람이다. 신자들에게 그는 보이지 않는 신을 전달하는 신의 미디어, 아니 신의 방송국이었을 것이다.

정명석 씨는 기존 교회가 엉망인 것은 모두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만의 해석 체계로 기존 교회와는 전혀 다른 교회를 만들어간다. 성서에 대한 물질적인 해석으로 인해 그는 육신의 구원이라는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곳곳에서 우리는 치유하는 몸과 고장난 몸, 깨끗한 몸과 더러운 몸을 본다.

팬티 한 장 걸치고 신자들과 배구 시합을 하는 모습, 경찰 앞에서 흐느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 JMS 사냥꾼에게 뺨을 맞고 도망치는 모습, 어눌하고 치기어린 어린아이 같은 말투, 나이 어린 여신도를 겁탈하는 유치한 언어 속에서 우리는 가짜 종교의 속살을 보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신자들을 설명하는 방법도 세뇌나 가스라이팅 같은 개념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종교는 같은 언어, 같은 행동,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해석의 공동체다. 여기에 교주의 치유, 예언, 기적의 능력을 곁들이면 그 종교는 난공불락의 종말론적 공동체로 변모한다. 그들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심지어 같은 감정까지 공유하면서 경계가 사라진 하나의 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우리 누구든 단단하고 절대적인 의미, 그리고 세상과 삶을 단박에 설명할 수 있는 해석 체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절대적인 사람, 절대적인 언어, 절대적인 삶을 꿈꾸던 사람들은 더욱 이 절대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불안, 공포, 고독, 질병, 노화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는 종교적인 해석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를 쉽게 떠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해석에는 한계라는 씨앗이 뿌려져 있다. 자기가 신이라고 말한 사람도, 그가 신이라고 믿은 사람도 생동하는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해석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이다”라고 외치는 교주는 날마다 자기의 불완전함에 치를 떨 것이다. 그는 자기가 여전히 신이 아니며 미래에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잠재우기 위해 자기가 공들여 만든 해석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탈을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주와 신자 가운데 누가 먼저 신을 언급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교주는 신자들의 약한 몸에 행사하는 자기의 종교적인 폭력에 감동하면서 무너진 자신의 신성을 복원할지도 모른다. 신자는 자기가 ‘신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면서 교주의 폭력을 수용할지도 모른다.

교주와 신자가 상호적으로 이러한 함정에 빠져 버렸다면 그것은 종교공동체가 치명적인 해석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일 것이다. 설상가상 종교적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석을 조작하기 시작할 때 그 공동체는 자기의 종말을 더 앞당기고 말 것이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 연구원 교수 changyick@gmail.com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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