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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찰’ 의미는 국토나 땅 아닌 양산이 맞아”

  • 교학
  • 입력 2023.05.01 15:45
  • 수정 2023.05.01 16:21
  • 호수 1679
  • 댓글 0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건축역사연구’ 32권서 사찰 어원 분석
“7세기 현응 스님이 백과사전 ‘일체경음의’에 잘못 기재하며 오역시작” 

아쇼카왕이 조성한 산치대탑의 양산 모양 꼭대기.
아쇼카왕이 조성한 산치대탑의 양산 모양 꼭대기.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건축역사연구’ 제32권에 논문 ‘사찰 찰(刹)의 어원 규명과 불교계 통용 오류 검증’ 실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사찰(寺刹)의 ‘찰’ 표기에 명백한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사찰의 찰은 찰다라(刹多羅)에서 비롯됐고 이는 ‘양산(陽傘)’이란 의미의 차트라(Chattra) 음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사전이 사찰을 표기할 때 ‘땅’이란 뜻의 크쉐트라(kṣetra)로 번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명예교수는 건축역사 및 이론을 전공하면서도 문화인류학을 부전공했을 정도로 역사와 문화에 조예가 깊다. 수차례 인도를 현지 답사하며 새롭게 확인한 불탑과 불교사원을 본지 연재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이 교수는 “사찰의 사(寺)의 어원은 비교적 분명하다”며 “중국에서 관청을 뜻하던 사(寺)는 백마사(白馬寺)가 세워진 것을 계기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후한 때 서역에서 불경을 싣고 온 흰 말이 외교 관청이었던 홍려사(鴻臚寺)에 머무른 게 계기가 돼 사(寺)의 쓰임이 바뀐 것이다. 

반면 사찰의 찰(刹)의 어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다 도쿠노의 ‘불교대사전’(1917), 오기하라 운나이의 ‘범한대역불교불교사전 번역명의대집’(1915), 히라카와 아키라의 ‘불교한범대사전’(1997) 등 사전에 따르면, 찰은 범어 kṣetra(크쉐트라)의 번역어로 전(田)·토전(土田)·처(處)이다. 음사어로는 찰다라(刹多羅)·차다라(差多羅)·체다라(掣多羅)·찰마(刹摩)·흘차달라(紇差怛羅)·찰마(刹摩)이다. 번역어로는 전(田)·토전(土田)·처(處)·불국토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찰(刹)의 어원이 국토나 땅인 크쉐트라(kṣetra)가 아니라 양산을 뜻하는 차트라(Chattra)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도에서 양산은 왕에게 씌워주는 존엄을 나타낸다. 이에 아쇼카왕이 조성한 산치대탑 꼭대기에도  양산을 씌워 붓다에 대한 존엄을 드러냈다. 맨 꼭대기 양산 ‘찰’이 점차 탑 전체를 확대 지칭하게 되면서 찰은 곧 탑이됐다. 5세기까지 절은 탑사(塔寺)로 불렸고 탑찰을 거쳐 사찰로 변했다. 이 교수는 “초기 북위까지는 낮은 승원을 의미하는 사(寺)와 높이 솟은 공경의 탑(塔)으로 구성돼 ‘탑사(塔寺)’로 불렸다. 어순만 바꾸면 현재 우리가 쓰는 사찰(寺刹)이 된다”고 했다. 

산치탑 북문 북조에 부처님 부친 정반왕이 양산 씌움을 받고 있다. 
산치탑 북문 북조에 부처님 부친 정반왕이 양산 씌움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차트라(양산) 음사인 찰이 어쩌다 크쉐트라(땅)라는 단어로 오기됐을까. 이 교수는 오류의 시작점을 찾고자 세계 각국 사전 28권에서 한자와 산스크리트 원어를 하나하나 분석·대조했다. 그는 “한국 불교계를 지배하던 ‘찰’의 오류는 일본 근대 선학자들의 사전이 원인이었고 이는 마치 고구마 뿌리 캐듯 당·송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긴 기간의 오류였다”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6세기 북위(北魏)시대까지 찰(刹)은 음사어 찰다라(양산)로 표기돼 왔다. 하지만 7세기 당(唐)에 접어들며 현응(玄應) 스님이 경전 용어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던 ‘일체경음의’에 찰(刹)을 토(土)·국(國)으로 번역하고, 이를 차다라(差多羅)라고 잘못 기재하면서 오기가 시작됐다. 여기에 송나라 법운(法雲) 스님의 ‘번역명의집’(1143)의 오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여전히 동아시아 불교계에는 양산 탑을 의미하는 사찰의 찰을 불토(佛土)나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사찰에 불국토 의미를 담고 싶다면 찰(刹)을 과감히 덜어내고 체다라(掣多羅)의 ‘체(掣)’나 흘차 달라(紇差多羅)의 ‘흘’로 바꾸는 것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79호 / 2023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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