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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신종교 독립운동가 서훈

제주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는 2월28일 일제강점기에 사교(邪敎)로 내몰려 탄압 받은 무극대도교 사건 피해자의 독립 운동가 서훈 심사를 공정히 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극대도교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고, 따라서 2021년 2월 독립유공자 공적 조사서를 보훈청에 접수했지만 “활동 내역의 독립 운동 성격 불분명”이라는 회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1938년 8월에 발생한 무극대도교 사건은 백백교 이후 가장 큰 종교 사건이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이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940년에 육해군형법위반, 보안법 위반, 총포화약류 취체 규칙 위반, 불경, 사기 혐의 등으로 강승태는 징역 6년 벌금 200원, 다른 19명은 징역 4년에서 10월을 언도받았다. 

기자회견 전문을 보면, 서훈추천위원회는 여전히 국가보훈처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분류한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극대도교를 사이비종교의 하나로 낙인 찍고 있기 때문에 독립 운동이라는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똑같이 탄압을 받고 옥고를 치뤘는데도 불구하고 왜 어떤 신종교 교주나 신도는 독립 운동 사실을 인정 받고, 무극대도교는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강증산을 개조로 하는 보천교 신자 강승태는 1936년에 무극대도교를 창립했다. 그는 1940년 3월 제주도 남쪽 자하도에서 정도해라는 진인이 나타나서, 군대 1천 수백명을 인솔해 붉은 깃발을 단 배인 태을선을 타고 제주도 중문면 대포리에 상륙한 후, 교주 강승태와 협의하여 충남 계룡산을 중심으로 조선을 독립시킬 거라고 예언했다. 또한 그는 정도해가 천자로 등극하여 세계를 72개로 나누어 지배할 것이고, 각국의 왕과 일본의 쇼와 천황도 1940년에 폐위되어 제후로서 조공을 바칠 거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강승태는 독특한 예언 능력을 통해 계속해서 일본의 패망에 대한 소문을 유포했다. 

백백교 신자였다가 탈교하여 태극교를 창립한 임일봉, 그리고 역시 백백교 탈교자로서 태극교에 참여한 현학근과 오일보 등이 독립운동가로 서훈되었다는 사실도 강승태의 서훈 작업에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태극교는 조석으로 조선 독립을 위해 기도하고 주문을 외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임일봉은 자기가 신이지만 인간으로 세상에 나타나 사람의 씨앗을 구하기 위해 선교하고 있으며 조선을 독립시킨 후 다시 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38년에 체포되어 1940년에 임일봉은 육군형법위반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현학근 등은 징역 10월을 언도받았다. 

지금까지 신종교의 독립 운동가 서훈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활동까지 독립 운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주의 천자 등극을 위해 암굴에서 일본 패망과 조선 독립을 계속 기도한 것은 독립 운동인가? 기도라는 영적인 활동은 독립을 위한 항일 투쟁으로 볼 수 있는가? 

1941년 체포된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조카 전명근, 1943년에 체포된 백백교 신자 김노윤도 일본 멸망을 위한 조선 독립 기도회를 열다가 체포된다. 그렇다면 많은 인명을 살상한 희대의 미신사교로 지탄 받은 백백교의 후예들은 독립운동가로 서훈받을 수 없는가? 예컨대 강승태의 죄목에는 강간 치상이 들어 있다. 교도 자제 중 오황부인과 선녀를 뽑아 동거하면서 음행을 저질렀다는 판결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록은 일제에 의한 조작일까? 아니면 음행 기록과 관계없이 우리는 독립 운동을 위해 그가 행한 예언과 기도와 제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를 독립운동가로 서훈해야 하는가? 

나는 독립운동가 서훈 작업에 내포된 부조리, 여전히 모호한 독립 운동의 경계선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일제에 의한 날조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도 무척 궁금하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 연구원 교수 changyick@gmail.com

[1680호 / 2023년 5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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