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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로 잃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 기도와 보살행으로 승화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총무원장상 - 윤수분

예의바르고 효심깊었던 1등 아들 세월 지난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나 
슬픔 이겨내려 매일 새벽 기도…전국 유일 적십자 불교봉사회도 결성
80세 바라보는 나이에 3번째 천일기도 발원…다음 생에도 불자 기원

그림=허재경

 

시누이가 하던 조그마한 가게를 물려받았다. 정류소 앞이어서 많은 사람이 왕래하며 가게를 이용하는 곳이었다. 가게에는 법복을 입은 보살님들이 자주 오셨고 유독 눈에 띄었다. 하루는 궁금하여 “보살님 어디 갔다 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사에 다니는 신도라고 하였다. ○○사는 마침 우리 집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이었고 나도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살이는 누구나 쉽진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힘든 일이 많았고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모든 어려움이 잘 이루어질 것 같다는 막연한 심정으로 00사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법당에 들어가 보니 불상은 없고 글자만 있어 불자님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밀교라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육자대명왕진언’을 모신다고 하시면서 진언을 외우는 방법으로 기도를 한다고 알려줬다. 다른 사찰에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하여 자연스럽게 밀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낮에는 가게를 보고 가게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절에 가면 큰 법당이 텅텅 비어 있는 채 진언 앞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어둡고 컴컴하여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처님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초보자가 도반 따라 기도하다가 몸살이 난다고 힘에 부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그래도 매일 빠짐없이 17년 동안 열심히 기도했다. 

나름대로 신행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전생에 무슨 나쁜 죄를 지었기에 꿈에도 생각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항상 예의 바르고 효심도 지극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교유관계도 원만하여 늘 학급의 선두에 있었던 1등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어엿하게 성장해서 공립대학교의 공과대학에 진학했고 열심히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2학년이 되었을 때 불의의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을 잃고 나니 죄 없는 부처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불교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싶어 절에 갈 생각, 살고 싶은 생각, 일체의 세상이 모두 싫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필 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다니던 절에는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인연이 닿아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모든 일이 나로 인해 빚어진 것 같다는 자책의 심정은 더욱 깊어졌다. 

좀처럼 일상이 복귀되진 않았다. 고통 속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딘가 의지할 곳이 절박했다. 하지만 다시 옛 신행사찰로 돌아갈 의지가 없었고 새롭게 인연이 닿은 곳으로 나서자니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이 막막하던 시기에 떠올린 것은 새벽 기도였다. 17년 다녔던 사찰에서 지속했던 것은 새벽 기도였다. 

슬픔에 빠져만 지내지 말자고 남편이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집에서 매일 새벽 일어나 참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불교를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명령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매일 새벽마다 기도의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그리고 다시 부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반드시 있다”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도반들의 위로와 격려도 고통 속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불교에 귀의한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용기를 내어 도반들 손을 잡고 다시 사찰에 나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다시 다니게 된 사찰은 현교를 따르는 곳이었다. 스님으로부터 불교의 기본 교리와 선(禪)에 관하여 많은 법문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밖에서 찾지 말고 너 안에서 찾아라”라는 법문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절에 함께 다니며 불교 교리를 배우고 신행을 이어온 도반들과 함께 우리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뜻을 함께했다. 그러던 중 양산 배내골에서 된장을 담그는 봉사를 하는 현장에 우연히 방문하면서 함께 봉사하게 되었고, 우리는 대한적십자사 부산광역시지사의 원불교지구협의회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했다. 

종교를 초월하는 것이 봉사활동이고 이렇게 연결된 것도 인연이라 여기며 봉사를 지속하면서도 나와 도반들은 마음 한구석에서 우리도 원불교처럼 불교 지구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왔다. 하지만 인원, 원불교와 관계, 지시, 승인 등 절차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그동안의 공부를 바탕으로 원력을 단단하게 모았다. 적십자 봉사 5년 만에 그리고 불교지구 추진 1년 만에 불교지구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부산에만 있는 적십자 불교봉사회를 결성하였다. 초대회장을 맡은 보살님은 나와는 중학교 동기이자 오랜 도반이었다. 우리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함께 봉사하고 수행했고 나는 도반 보살님에 이어서 2대 회장을 맡았다. 

우리 두 사람은 회장 역할을 내려놓은 후에도 지금까지 봉사 회원의 한 사람으로 함께하고 있다. 도반 보살님은 나와 학년은 같아도 나이가 조금 더 많아 올해로 봉사 정년을 회향했다. 멋지게 회향하는 도반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나는 내년에 봉사 회향을 앞두고 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봉사활동을 이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봉사는 보시’라는 신념으로 회원들과 혼연일치하여 적십자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간다. 봉사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충남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 달려간 일이다. 1박 2일의 일정이었는데 현장에 달려가 보니 말이 안 나고 한숨만 토해낼 뿐이었다. 기름을 걸레로 닦아내고 닦아내도 계속 솟아 나와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자연환경을 살리는 데 조그마한 힘이 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오염 범위가 너무 넓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또 부산 가덕도 수해 피해 지역, 김해 한림 수해 현장,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김해평야의 벼를 세우는 일 등 자연재해 현장에 달려가 긴급구호를 펼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매월 두 차례 적십자 헌혈 캠페인 봉사에 동참하고 부산 관자재요양병원에서 치매 어르신들의 목욕이 끝나고 나면 온몸에 로션을 발라 드리고 옷을 입혀드리는 봉사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어르신들께서는 ‘늘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주시는데 깨끗해진 몸으로 건강하게 생활하시길 기원하며 옷을 입혀 드릴 때마다 우리 봉사자들이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들을 떠나보낸 고통을 극복하게 해 준 새벽기도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니 하루하루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기도를 올리는 일상은 우리 부부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과이기 때문이다. ‘천수경’을 시작으로 가족 축원을 하고 ‘금강경’ 1독, ‘화엄경 약찬게’로 기도하고 나면 1시간30분이 훌쩍 지나간다. 도반의 권유로 2000년 1월부터 시작했던 영축총림 통도사의 성보박물관 인등 기도는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동참해 온 법회이기도 하다. 또 한 신행 단체에 가입해 삼사 성지순례에 동참하면서 마라도 기원정사, 설악산 봉정암, 강화도 보문사 등 전국 사찰에서 참회 기도를 이어올 수 있어 감사했다. 

나이 80세를 바라보며 나는 세 번의 1000일 기도 성취를 발원하고 있다. 지금은 2차 1000일 기도를 진행 중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의 하루 전날인 5월26일은 2차 1000일 기도의 800일 회향이 된다. 이번 1000일 기도 동안에는 하루 ‘금강경’ 7독을 발원하고 실천 중이다. 새벽과 저녁에 각 1회씩 독송하고 낮에 다섯 번을 독송하려면 하루라는 시간도 빠듯하다. 차 마시기를 좋아해도 당분간은 멀리하며 틈나는 대로 ‘금강경’을 펼치려고 한다. 

부처님의 공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신행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새겨본다. 결혼한 딸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사찰을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서 열심히 신행 생활하는 딸과 가족이 늘 고맙다.

새벽기도의 출발은 언제나 ‘일체의 중생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소원합니다’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깨어 있는 삶, 선행, 인욕하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일, 항상 부지런하고, 부드러운 말, 말조심하도록 실천하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한다. 누군가는 불교 공부가 어렵고 기도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굳은 믿음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매일 매일 계속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옛 말씀에 “부모가 죽으면 산천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표현이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아들 이름을 불러 본다. ‘아들아. 사바세계 모든 애착 다 끊고 극락왕생하거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불자가 될 생각이다. 남은 생 동안 봉사와 기도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생에도 반드시 불자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1682호 / 2023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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