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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고 묻힌 불상 이야기

  • 법보시론
  • 입력 2023.07.10 10:44
  • 수정 2023.07.17 13:14
  • 호수 1688
  • 댓글 0

대학에 갓 입학한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이제 막 운전을 배운 친구가 부모님 농장의 트럭을 끌고 담양에서 광주로 나왔다. 그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덜컹거리는 트럭을 몰고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 도암면 운주사(雲住寺)로 나를 끌고 갔다. 절인지 폐허인지 알 수 없는 허름한 공간을 거닐다 야트막한 야산에 누워 있는 한 쌍의 와불 옆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와불의 직립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두고 쌓아 온 천 년 동안의 꿈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절이라는 선명하게 구획된 공간 밖 여기저기 박혀 있는 허물어져가는 석탑, 논밭이나 수풀에 굴러다니고 있을 방치된 불상, 산등성이에 누워 있는 와불, 이런 무질서는 내가 알고 있는 절의 모습이 아니었다. 천불천탑이 과거의 사실을 지칭하는 언어인지, 아니면 미래에 조성될 무수한 불탑에 대한 예언인지 알 길은 없다. 아마도 그러한 빈틈과 결핍이 운주사를 다른 절로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운주사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산속에 버려진 불상과 땅속에 묻힌 불상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금불이든 석불이든 엄청난 종교적 노동과 경제적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저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불상을 만든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겪었을 온갖 마음의 풍파가 불상 제작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미학의 질서 안에 있는 박물관의 불상이나 의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절의 불상은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불상 발굴에 대한 기사를 좀 찾아보았다.

1930년 7월7일자 ‘매일신보’에는 경기도 시흥군 화장사(華藏寺)의 정보현(程普鉉)이라는 사람이 휴게소조차 없는 운주사의 퇴락을 안타깝게 여겨 증개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다. 당시에 70여좌의 불상, 30여기의 탑, 칠성암, 기계암, 공사암이 남아 있었고 주변 농경지에서 계속 탑좌(塔座)와 불상이 발견되고 있었다고 한다.

1926년 6월20일 개성군 송도면 대화정에서는 자택 지하실 공사를 하던 일본인 집에서 높이 1척 3촌의 금제 주조 불상이 발견된다. 1927년 6월11일 경남 울산군 온양면에서는 논 제방 수리를 위한 토사 채취 작업 중에 높이 2척 7촌의 석조 미륵불상이 발굴된다. 1929년 4월4일에는 합천군 황매산에서 높이 4촌 7분의 순금 불상이 땅속에서 발견된다. 1929년 4월 경남 밀양군 삼랑진면에서는 자택 공사를 하던 도중 황금좌불상이 발굴된다. 1930년 8월18일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서 농부 김성문(金聖文)은 고구마 밭에서 4촌 3분의 금동제 입불상을 발굴한다. 1930년 6월1일에 삼장면 내원리 사곡산(寺谷山)에서도 3촌 2분의 금동제 입불상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1931년 7월12일에는 문경군 가은면 완장리 무명산 밑에서 김재용(金在龍)이 밭을 갈다가 높이 3촌의 금불상 5좌와 종(鐘) 1개를 발굴한다. 1932년 4월26일에는 광주 무등산 증심사의 5층탑에서 4촌 8분의 석가존불, 4촌의 아미타불, 5촌 5분의 관세음보살 등 불상과 철제 5층탑 등이 발견된다. 1932년 4월25일 김천군 개령면 양천동에 사는 농부 김오준(金五俊)은 밭에서 높이 7촌 4분의 동제 좌불상을 발굴한다. 1932년 12월16일에는 영천군 청도면 우천동 근처에서 전석범(全石範)이라는 사람이 도로 수축 공사를 하다가 금동 합금 불상 30여 좌를 발굴하여 부락민에게 나누어준다.

이것은 ‘불상 발굴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땅에 묻힌 불상이 발굴 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종교적인 세계에 복귀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불상이 발굴된 땅에 불당을 세워 다시 불상을 안치하는지, 아니면 이야기를 잃어버린 불상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 할 뿐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불상이 인간의 죽음과 부처의 탄생을 상징한다고 상상하곤 했다. 그리 생각하면 나무 아래에서 죽은 싯다르타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겹쳐 보이곤 했다.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어 그 후로 45년간 인간계에 남아 있었고, 예수는 죽음 후에 곧 하늘로 승천했다.

이창익 교수 changyick@gmail.com

[1688호 / 2023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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