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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시 않겠다” 불교계 결집하자 역사가 바뀌었다

  • 사회
  • 입력 2023.07.28 21:23
  • 수정 2023.07.29 15:50
  • 호수 1691
  • 댓글 11

 왜곡된 역사물길 바로잡은 ‘주역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역사 왜곡의 경각심 일으키고
특정 종교 우선하면 누군가 불편할 수 있다는 종교감수성 높여
왜곡 문제 대응하고 바로잡는 동안 해야할 역할 분담 명확해져  

역사왜곡 논란을 빚었던 서울 광화문광장 역사물길 연표석이 법보신문 보도 이후 1년여 만에 전격 수정된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논란이 됐던 불교 왜곡 및 한국사 연표를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역사 왜곡이 정비되기까지 ‘불교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선 10명의 사부대중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편집자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사회 정의를 찾아가는 일이다. 역사물길 논란을 접하고 ‘우리가 무지했구나’ 반성했다.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 아닌가. 그래서 더 심각하게 느꼈다. 역사 서술의 기본은 공정성이다. 하나의 사안을 보더라도 다각도로 공평하다고 느껴야 한다. 이는 사회 정의와도 연결된다. 부처님은 2600년 전 정의로움에 관해 제시해 뒀다. 팔정도(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념·정정진·정정)이다. 추상적 정의로움이 아니다. 네가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정의롭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그동안 너무 착했다. 큰형님 같은 존재였다. 넉넉하다고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왜곡 앞에선 '정의'를 찾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역사물길 연표석 수정으로 조금이나마 정의에 다가간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앞으로도 전국비구니회는 역사왜곡 문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 불교왜곡 대응 특별위원장 선광 스님=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이번 사안이 불거지면서 많은 이가 경각심을 갖게됐다. 실제 지금 이 순간도 공직사회의 종교편향은 이어지고 있다. 불교사를 왜곡하는 것은 곧 한국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성과를 추진 동력으로 끊임 없이 비판하고 문제제기 해야 한다. 역사물길 연표석을 바르게 고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조계종 사회부장 범종 스님=늦게라도 역사물길 연표석이 변경돼 다행이다.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가 노력한 덕분에 문제가 해결됐다. 어떤 역사관이 바른 것인지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언론 역할을 했고, 불자들은 끝없이 문제 제기했다. 종교평화위원회와 중앙종회 종교편향 특위 스님들의 노력도 빛났다. 협력의 힘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장 도심 스님=불교왜곡 문제로 시작했지만 일반 역사까지 바로잡아 냈다. 뿐만 아니라 종교평화위원회가 주최한 세미나를 통해 독도 누락 문제, 호패법 실시 연도, 경복궁 중건 시기를 바로잡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역사물길 연표석 수정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이번 계기로 서울시도 공공영역에 새겨질 역사에 대해 더 꼼꼼히 사료적 고증을 거칠 것이다.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법보신문이 문제제기를 잘해줬다. 의식을 갖고 바라보지 않았다면 누가 알기나 했겠나. 역사물길 연표석이 고착화되면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불거졌을 수 있다. 하지만 연표석에 몇 가지 사건이 첨가됐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된다.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 현재 조선불교 연구자들은 일제강점기 다카하시 도루(1878~1967)의 ‘이조불교’만 해명·반박하는 수준에 그친다. 아쉽다. 이것만으론 안된다. 역사 문화 전체를 두고 이 가운데 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체계적인 검토해야 한다. 이번 계기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가 활발발해져 조선시대 불교가 어떤 위상을 가졌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체계적으로 밝히길 바란다.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서울시가 처음에 광화문 광장 역사물길 연표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종교 편향과 역사 왜곡은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현재도 진행중이고,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았고, 이번 계기가 그 난제를 푼 첫 출발점이 된 것 같다. 역사는 굳은 화석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역사를 계속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또 이것을 용기 있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백도수 한국불교학회장=이번 사안을 통해 불교 왜곡을 상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불교계가 개인 유튜브나 SNS를 활용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역사 왜곡 문제를 빠르게 바로잡았으면 한다.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된다. 잘못된 부분을 서로 인지하고 이를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계기로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남수영 불교학연구회장=이번 논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종교 감수성’이라는 화두를 내던졌다. 특히 많은 이들이 공직자의 종교 감수성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예전에 모 서울시장이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바치겠다”고 하지 않았나. 어이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종교가 최고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만 우선시하면 다른 종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여전히 행정적·공적 영역에서 종교 감수성이 결여된 순간들이 있다. 그 대상이 역사와 관련된 경우는 아찔하다. 행정·공적 영역에서 역사가 서술될 때는 수많은 사람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기술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이를 일깨워줬다.

△장정화 대한불교청년회장=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한 계기가 됐다. 청년불자들이 해야할 일도 분명해졌다. 사실 이웃종교와 달리 불교는 스님들과 재가자가 겉모습부터 차이나지 않는가. 복장부터가 다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이다. 그런 제한적인 역할을 우리 청년불자들이 해야겠구나 싶었다. 역사물길 사안이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서울시청에 질의서를 보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도 훼불과 종교편향에 대한 역할 분담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부터 최선을 다하겠다. 

△이기룡 조계종 포교사=이미 완성한 건축에 새겨진 문구였다. 법보신문이 애를 쓰는 것을 보면서도 ‘정말 ‘보우 처벌’이 바뀔까?’ ‘저런다고 서울시·가톨릭에서 들은 척이나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바뀌었다. 감격스럽다.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자꾸 소리를 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 우리가 조목조목 집요하게 지적하니까 저 사람(서울시·가톨릭)들이 어쩔 수 없이 바꾸지 않는가.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이제 불자들 몫이다.

 

불교사 넘어 일반역사 오류도 수정

역사물길 문제제기부터 해결까지

‘보우 처벌’ 계기로 논란 확산
불교계 외면 않고 역량 결집
1696년 누락된 독도까지 추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8월6일 재개장한 광화문 광장이 “서울의 가장 자랑스런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개장 직후 광장을 관통하고 있는 ‘역사물길’ 연표석에 ‘보우 처벌’이 새겨져 있다는 이기룡 포교사의 제보가 있었다.

취재결과 사실이었다. 또 ‘문정왕후 사망, 보우 처벌’은 물론, 몇 안되는 불교사의 기술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태조 1년(1392)부터 2022년까지 연표석 631개를 전수조사 했다. 곧바로 불교사학자·학술단체장 6명과 공유했다. 그러자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교계 단체장들이 “종교편향 문제를 넘어 공공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판의 근거가 됐던 허응당 보우대사(1509~1565)가 주석한 도량, 서울 봉은사에서도 신속하게 성명을 냈다. 이들은 9월14일 성명에서 “서울시는 불교전통을 되살린 보우 대사와 문정왕후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광장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오류를 돌에 깊이 새겼다. 대한민국 불자들 마음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대한불교청년회는 9월15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해 강하게 문제 제기 했다.

지속적인 지적에도 서울시는 묵묵부답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9월16일 광화문광장을 직접 찾으면서다. 제37대 총무원장 당선 후 사실상 첫 행보였다.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진우 스님은 꿋꿋하게 역사물길 연표석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이후 “서울시와 만나 시정할 부분을 요구하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음 날 아침 곧바로 조계사를 찾았다. 그는 9월17일 “심려를 끼쳤다. 바로잡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이 ‘역사 왜곡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보자’며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했다. 봉은사가 법보신문과 공동으로 9월26일 경내 구생원에서 개최한 특별 좌담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계종 관계자, 종교학자, 변호사, 교계 단체장, 언론인 18명이 모였다. ‘불교사 왜곡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3시간가량 머리를 맞댔다. 결론은 “광화문 역사물길 왜곡사태를 계기로 불교계 대응 시스템 마련해야 한다”였다. 

조계종 사회부·종교평화위원회는 서울시와 실무 협의에 속도를 냈다. 역사물길 연표 전반의 오류를 세밀히 짚어내고자 11월28일 세미나를 열었다. 김덕진 광주교육대 교수는 숙종 22년(1696) 안용복이 일본 정부인 에도막부를 찾아가 독도·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확인을 받아낸 사건에 ‘독도’가 누락돼 있는가 하면, 호패법이 실시된 연도와 경복궁 중건 시기에도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회부·종교평화위원회는 논의 결과를 정리해 서울시 광장정책팀에게 전했고 시 자문위원단의 논의를 거쳐 현 수정안으로 확정했다. 

협의를 마친 수정안에 관해 "조선 전기 선종·교종 도회소 흥천사·흥덕사 건립"과 "조선 불교 탄압의 공식적 종언인 1895년 4월23일 승려 도성 출입금지 해제" 등이 누락됐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물길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불교계가 공동의 목표를 갖고 한목소리를 냈고,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 사태 해결에 뚜렷한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다. 또 불교사 왜곡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 역사까지 제대로 밝혔다는 호평이 나온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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