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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한주(동명불원 원장) 원순 스님

집착 없이 베풀고 사는 마음 가질 때 부처님 국토 장엄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집착하는 모습 없이 베풀고 사는 것이 올바른 보시
아낌없이 주는 그 자리가 비는 순간에 부처님 공덕 가득 차
아상이 떨어진 마음 가질 때 부처님세상 드러나고 영가 제도

원순 스님은 “마음자리가 청정해지고 중생심이 사라진 곳에서 영가천도가 오는 것”이라며 사상(四相)을 끊어내고 집착 없이 살아가면서 행복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원순 스님은 “마음자리가 청정해지고 중생심이 사라진 곳에서 영가천도가 오는 것”이라며 사상(四相)을 끊어내고 집착 없이 살아가면서 행복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극락정토가 장엄되는 날입니다. 백중 기도를 통해서 어두운 세상의 영가 중생들이 다 제도 되었다고 하면 그 자리가 극락정토입니다. 동명불원에서는 그동안 초하루, 미타재일 법회를 통해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은 10장 ‘장엄정토(莊嚴淨土)’입니다. ‘부처님의 극락정토를 장엄한다’는 것이 제목의 뜻이지요.

‘금강경’에서 ‘금강’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금강반야(金剛般若)’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금강반야를 알게 되면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 세상이다.” 이 소리입니다. 금강반야가 무엇입니까. 금강반야는 곧 금강인 부처님 마음자리와 반야인 부처님 지혜라는 뜻을 합쳐놓은 말입니다. 부처님 마음자리에 부처님의 지혜가 있고 부처님 지혜 그 자리에 부처님 마음이 있다는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중도법(中道法)인데, 이 마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에 어려울 일이 없고 마음에 걸릴 일이 없고 항상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는 자리가 극락정토입니다. 중생의 마음이 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부처님 마음이 드러나면 그 자리가 극락정토라는 가르침입니다. 

극락정토는 아미타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의 국토입니다. 염불할 때 ‘향화청(香華請)’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향과 꽃으로 부처님을 맞이하옵니다.” 이런 뜻입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자리에는 최소한 향이 있어야 하고 꽃이 있어야 하고 부처님께 어울리는 공양물이 가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처님 국토를 장엄한다”라고 하면, 꽃과 향과 과일과 쌀과 차와 등불 이런 것으로 장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정말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여러분이 가진 부처님의 마음으로 장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욕심을 가지고 살면 세상의 보는 것마다 다 갖고 싶습니다. 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욕심은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채울 수가 없어 여러분의 마음이 우울하면 이 세상이 우울해지고, 여러분이 성질이 나빠지게 되면 보이는 것마다 다 성질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의 마음에는 늘 탐심과 진심이 서려 있는 것입니다. 

욕심과 성내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왜 어리석은가. 갖지 못할 것을 가지려 하고 없는 걸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의 몸과 나의 마음도 50년 뒤, 100년 뒤에 찾아보면 간 곳이 없습니다. 불과 10년 전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만 지나도 허망한데 그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중생계가 부처님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곧 여러분의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49일 백중 기도를 통해 기도가 마무리되는 날은 내 마음속에 있는 성내는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다 사라지는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이 다 사라져서 내가 부처님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갖기 때문에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고 부처님 세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첫 장에서 4장까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원정사에서 금강 법회 열리던 날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법을 청하니, 설법의 내용이 내 마음에 집착하는 모습 없어야 얽매는 마음 없이 베풀고 살지”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아침에 일어나셔서 공양 때가 되니까 바깥으로 나가서 탁발해 오셨다는 내용은 일상의 생활입니다. 공양을 다 마치시고 난 다음 손과 발을 닦으시고 좌복에 앉으셨습니다. 좌복에 앉았다는 의미는 선정에 들어갔다, 삼매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 행복한 마음,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으니까 부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절에서는 “법공양을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공양할 때 가사와 장삼을 수합니다. 공양을 다 마치고 난 다음 하는 게송에 ‘반사이흘 색력충(飯食已訖 色力充)’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중생들의 공양을 받아서 잘 들고 나니까 이 몸에서 넘치는 힘이 세상에 가득 찬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모습으로 앉아 있으니까 부처님이 기분이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본 수보리가 부처님께 법을 청합니다. “부처님. 당신은 늘 행복해 보이십니다. 우리도 당신같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같이 되려면 결국 선정에 들어가야 하고 우리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답변하십니다. “너희들이 내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면 큰마음을 써야 한다. 어떤 마음인가. 혼자 잘 살려고 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내 가족만 잘살려고 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불자라고 하면 모든 중생을 늘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중생까지 돌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도 아끼고 챙겨주는 마음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부처님 마음자리인 번뇌가 다 사라진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중생이 부처님 마음자리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생을 생각하는 큰마음입니다. 그 다음도 중요합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 마음자리에 들어가서 부처님 같이 산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한 중생도 제도했다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 마음을 내는 순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금강경’에서 말하는 유명한 사상(四相)입니다. 아상은 성내는 마음, 욕심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들어가 있는 마음입니다.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모습에 집착해서 세상을 살아가면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도 구원을 못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내가 행복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습니까? 

나라는 모습에 집착해 “나 잘났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많이 합니다. 시비하고 분별해서 그 모습에 집착하고 자꾸 딴지를 거는 데, 이것이 인상(人相)입니다. 달라이라마께서 “가장 훌륭한 종교는 ‘친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가장 훌륭한 불자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절만이 최고다,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중생상입니다. 너와 내가 어울려서 우리라는 기득권을 만들어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만 최고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외부에서 오는 신도님 한 분 한 분을 불보살같이 모시고 챙길 때 중생상이 없어진다고 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이 지속될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상에 집착하는 것을 수자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도량에 오기 전 다른 절에 인연이 있었을 겁니다. 또 멀리 이사를 하면 다른 사찰로 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동명불원에서 우리 신도, 다른 신도를 따질 게 아니라 모두 부처님 제자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상(四相)을 끊어내는 것이 곧 ‘금강경’의 목적입니다. ‘나 잘났어.’ 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겁니다. ‘대승정종(大乘正宗)’은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무엇인가, 바로 내 마음에 집착하는 모습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집착하는 모습 없어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런 모습 없이 베풀고 사는 게 올바른 보시(布施)입니다. 그 모습이 묘행무주(妙行無住)입니다. 다른 이에게 모든 걸 아낌없이 주는데 아낌없이 주는 그 자리가 비는 그 순간에 부처님의 공덕이 가득 차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베풀 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베풀고 사십시오. 베풀고 살려는 마음에 마음이 열립니다. 집착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실물로서 영원토록 존재하는 건 없습니다. 이 말을 바로 듣고 믿어야 합니다. 나하고 주어지는 인연도 언젠가는 흩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인연을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보시입니다. 인연이 있어서 마음이 열려 이치대로 보는 것이 ‘여리실견(如理實見)’입니다.

사물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힘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없다 할지라도 부처님 말을 이치 그대로 보는 겁니다. 모든 모습은 인연으로 드러난 것이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어야 바른 믿음입니다. 부처님과 인연 없는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상이 다 떨어진 이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앞에 부처님 세상이 드러나고 극락정토가 드러납니다. 우리 앞에 부처님의 나라가 드러납니다. 우리 앞에 지옥이 사라지고 우리 앞에 중생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옥이 사라지고 중생계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서 어두운 영가가 모두 제도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중기도를 회향하는 날이 곧 영가가 모두 천도 되는 날입니다. 영가 천도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분의 마음자리가 청정해지는 곳에서 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중생심이 다 사라진 곳에서 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8월30일 부산 동명불원에서 봉행된 ‘계묘년 백중기도 회향법회’에서 원장 원순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697호 / 2023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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