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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 수몰 영가들이여 극락왕생하소서”

  • 교계
  • 입력 2023.11.02 15:47
  • 수정 2023.11.02 21:12
  • 호수 1703
  • 댓글 0

관음종, 11월2일 일본 우베 조세이탄광 추모광장서 81주기 위령재
종정 홍파 스님 등 70여명 동참…“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잊지 말아야”
“사고 81년 지나도록 방치하는 건 개탄스러운 일…유해발굴 나서야”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로 희생된 183명의 영가들이여, 님들을 위해 추선공양을 올립니다. 사바세계에서의 모든 애환과 원한, 집착을 내려놓고 이 무상묘법을 지녀 나고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세세생생 안락에 들기를 발원합니다.”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법명 스님)이 11월2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추모광장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해저 수몰 81주기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관음종 차원에서 위령재를 봉행한 것은 2017년 이후 다섯 번째다. 관음종은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일본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유해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며 매년 대규모 추모단을 구성해 사고해역에서 위령재를 봉행해왔다. 올해도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과 총무원장 법명 스님을 비롯해 부원장 도각, 총무부장 홍경, 예경실장 법관, 사서실장 법룡, 수교부장 도문 스님과 영산작법연구회 소속 보상‧비호‧선암 스님, 양현 유족회장 등 유가족, 서울 낙산묘각사 및 창녕 법성사 신도로 구성된 66명의 추모단을 꾸려 위령재를 봉행했다. 현지에서는 임시흥 주일 히로시마 총영사를 비롯한 재일교포, 이노우에 요우코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3일 발생했다. 일본인들이 ‘조선탄광’이라고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된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에 위치한 해저탄광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었다. 그런 만큼 갱도가 붕괴되면서 순식간에 수몰된 희생자 183명 가운데는 조선인이 1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을 감독하던 일본인 47명도 수장됐다. 희생자는 현재까지 수몰된 갱도에 수장된 채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위령재에 앞서 추모단은 조세이탄광이 위치했던 토코나미 해변에서 영가들을 법석으로 안내하는 의식을 시작했다. 사고해역에는 지하갱도와 연결돼 환풍구 역할을 했던 피아 2개가 솟아올라, 이곳이 183명의 생명을 앗아간 조세이탄광이 위치했던 곳임을 드러냈다. 관음종 부원장 도각 스님의 상축에 이어 동참 대중들은 바다에 꽃을 던져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이어 영산작법연구회 스님들은 인로왕번을 앞세우며 수몰된 영령들을 추모비가 세워진 추모광장으로 인도했다. 사부대중은 합장한 채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며 긴 행렬을 이었다.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재현한 법석에서 사부대중은 81년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했다.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수몰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절규를 받아들여 일본 정부와 탄광회사, 한국 정부가 유해발굴을 위해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스님은 “희생자들의 불행한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추모단의 촉구에도 탄광주와 일본 정부는 유해발굴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라도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유해발굴을 위한 작은 첫걸음이라도 떼야 한다. 이것만이 차가운 바닷속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고, 유족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도 법어를 통해 일본 당국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에 관심이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스님은 “조세이탄광 수몰사고가 발생한 지 81년이 지났지만 일본 당국은 여전히 183명의 고통스런 죽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시간이 흐른다고 잊혀질 일이 아니다.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의 희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희생된 183명의 넋들을 위해 추선공양을 올린다”며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임시흥 주히로시마 총영사는 “전쟁과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적대감, 서로에 대한 오해가 조세이탄광 수몰 희생자를 어둠 속에 묻어두었다”며 “희생자들의 존재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이후로도 역사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반목이 이어져 희생자를 생각하는 유족의 마음은 오히려 뒷전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많은 일본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을 생각하게 되도록 민간의 노력이 이어지길 희망한다”며 “그럼으로써 언젠가는 한일 양국 시민의 따듯한 관심 속에 해저의 유골이 햇빛을 볼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날 위령재에는 이노우에 요우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역사에 새기는회(새기는회)’ 공동대표가 참석해 해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해 주고 있는 관음종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새기는회’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서 온 일본 시민단체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사고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2개월 만에 발생한 참사에 일본과 탄광회사는 국민 사기 저하를 이유로 철저하게 은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심적인 일본 역사교사 야마구치 다케노부씨가 1976년 세상에 처음 진실을 알렸고, 1991년 부당한 인권침해 행위를 알리기 위한 시민단체 ‘새기는회’가 발족돼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의 전모가 드러났다. ‘새기는회’는 지속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희생자가 유가족을 찾아내고 1993년부터 매년 추모재를 봉행했으며, 2013년에는 자발적 모금활동을 통해 사고해역 인근에 추모광장을 조성하고 추모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노우에 요우코 대표는 “수몰사고 81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바다 밑에 방치돼 있는 희생자분들의 유해를 고향 땅에 보내드리지 못해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어 “일본은 조선반도에서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유골발굴 및 반환은 반드시 조선반도에 있는 분들의 한을 풀어주고, 일본과의 평화‧우호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새기는회’는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도 유족의 슬픔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양현 한국 유족회 회장은 “80여년이 지나도록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발굴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원망스럽다”면서 “관음종 스님과 신도들이 천도불사를 해준 공덕과 부처님의 은덕으로 우리 유족들의 염원이 이뤄질 수 있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했다.

법회에 이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의식도 진행됐다. 위령재에 동참한 사부대중은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희생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유해발굴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힘을 모아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한편 관음종 추모단은 위령재에 앞서 희생자 183명의 위패가 봉안된 우베시 사이코지(西光寺)를 찾아 참배했다. 관음종 추모단이 사이코지를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우베시=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703호 / 2023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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