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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붙은 방한 추진…고령의 달라이라마 움직일까

  • 교계
  • 입력 2023.11.10 11:30
  • 수정 2023.11.14 09:29
  • 호수 1704
  • 댓글 6

티베트하우스재팬 대표
11월9일 서울 구룡사 찾아
불교광장 총재 자승 스님 예방
달라이라마 방한 논의 관측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불교광장 총재(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이 11월9일 서울 구룡사에서 티베트하우스재팬의 아리야 체왕 걀뽀 대표와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 불교광장 회동에서 ‘달라이라마 초청 법회’를 제안한 지 일주일 만이다. 이 자리에는 총무부장 성화, 사회부장 도심, 전 해외특별교구장 정우 스님(구룡사 회주),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 텐진 남카 스님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차원에서 달라이라마 방한을 어떻게 추진할 지 구체화하기 위한 만남으로 관측된다. 정우 스님은 “종단 차원을 넘어 한국 불교 전체가 결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방한 추진에)도울 일이 있다면 해외특별교구장으로서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동아시아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는 티베트하우스재팬 아리야 체왕 걀뽀 대표는 앞서 조계종 중앙종회의장단과 BBS불교방송 이사장 등 불교계 유력 인사와 잇달아 만났다. 달라이라마 방한 요청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여기에 방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자승 스님과의 만남까지 이뤄지면서 이번 방한 추진 움직임은 무게감이 이전과 다르다는 분석이다.

아리야 체왕 걀뽀 대표는 11월7일 마포 BBS불교방송에서 이사장 덕문 스님을 만났다. 덕문 스님은 “존자 건강이 허락된다면 하루 속히 한국을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리야 체왕 걀뽀 대표도 “한국의 스님·학자들 모두가 달라이라마 초청을 말하고 있다. 사회와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존자는 반드시 방한할 것”이라고 답했다.

11월10일 현재시각 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 한국 불자과의 만남(11월2일)이 메인 사진으로 걸려 있다.
11월10일 현재시각 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 한국 불자과의 만남(11월2일)이 메인 사진으로 걸려 있다.

그는 11월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중앙종회 의장단도 만났다. 의장 주경 스님은 “존자께서 더 늦기 전 한국에 오셨으면 한다”고 요청했고, 체왕 걀뽀 대표도 협조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 텐진 남카 스님, 수석 부의장 무관, 사무처장 설도 스님도 함께했다. 

달라이라마 방한은 2000년부터 추진됐다. 하지만 23년 간 정부는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세수가 올해 여든여덟인 점이 방한 추진을 재촉하고 있다. “여건만 되면 어떤 귀중한 일도 미루고 한국을 찾겠다”던 달라이라마 염원이 이번엔 성사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11월2일 한국불자들과 만난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
인도 다람살라에서 11월2일 한국불자들과 만난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

▲ 달라이라마 역대 방한 추진, 어떻게 이어졌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2016년 8월30일 인도 다람살라 남걀사원 접견실.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88)는 온 얼굴에 넉넉한 웃음을 띤 채 그를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국에 가고 싶은데도 왜 갈 수 없느냐’는 반어적 표현이었다. 한국은 지금까지도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달라이라마가 방문하지 못한 지구상 거의 유일한 국가로 남았다.

달라이라마 방한은 2000년부터 추진됐다. 당시 서울대 불교학생회가 외교부에 달라이라마 초청 비자를 신청했다. 하지만 정부가 불허했다.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불교계 단체 10여개가 자연스럽게 연대기구를 구성했다.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을 위한 첫 결사체였다. 2002년 2월 조계종 제30대 총무원장이었던 정대 스님과 수덕사 주지 법장 스님(제31대 총무원장)이 각각 상임고문과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결사체는 ‘달라이라마 방한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로 확대됐다. 각계각층이 참여한 범국민 연대기구였다. 준비위는 100만 서명운동을 추진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관련 부처도 방문했다. 그사이 달라이라마 방한 문제가 공론화됐다. 2002년 4월 방한을 다시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는 다시 불허를 통보했다. 2005년에도 방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제9회 만해대상 평화부분 수상자에 달라이라마가 선정되면서 8월 시상식에 맞춰 방한이 성사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달라이라마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불교계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12월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새롭게 구성했다. 2014년 6월 사무실을 개소하고 그해 7월 조계사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방한 취지를 알리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www.dalailama.or.kr)도 제작했다. 서명도 받기 시작하며 대대적인 운동에 막을 올렸다. 조계종 중앙종회도 힘을 보탰다. 2014년 8월 중앙종회는 ‘달라이라마 방한 허용 촉구 결의문 채택의 건’을 상정하고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를 계기로 방한 희망의 물결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울산(2014년 9월)에서 부산(2014년 11월)으로, 대전·충남(2015년 1월)에서 강원도 원주(2015년 4월)로, 각지에서 방한 추진 선포식이 이어졌다. 추진위는 서명 운동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자 2015년 3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부스를 열기도 했다. 그해 9월 방한 지지 서명은 10만명을 돌파했다. 추진위는 2018년 방한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다시 한 번 의지를 결집하고자 2016년 7월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성대한 발대식을 열었다. 조계종 원로의장 밀운, 원로의원 혜승, 추진위 상임대표 금강, 공동대표 진옥 스님 등 500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는 ‘중국의 압력’을 핑계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정부가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한 적은 없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서’라는 모호한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강행한 전력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방한 당시 광화문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친 프란치스코 교황.  [문화체육관광부]

번번이 무산되는 달라이라마의 방한과 달리, 가톨릭 교황은 프란치스코를 포함해 3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대통령이 교황의 방한을 요청하겠다 나섰다. 국무총리는 국가적으로 돕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는 서울 광화문광장이란 상징적 공간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를 했다. 광화문에서 카퍼레이드도 했다. 교황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던 국민들도 이날 그를 새롭게 인식했다. 가톨릭 교황은 1984년, 1989년에도 방한했다. 가톨릭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에서 연 가톨릭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됐다. 정교분리 원칙 위배이자 종교 편향 결정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차원에서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가동하면서도 달라이라마 방한은 계속 막은 셈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미주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인접해 있는 일본을 30번 가까이 방문했다. 심지어 중국의 압도적 영향권에 있는 몽골도 찾았었다. 2000년대 초반 한 독일 잡지는 현존 인물 중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을 고르라’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때 33%가 달라이라마를 꼽았고, 14%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했다. 2010년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구 6개국에서 이뤄진 설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로 달라이라마를 선정했다. 정치·민족·종교의 한계를 벗어난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임이 드러난 결과다.

그런 그에게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 자체가 수준 이하의 행태라는 지적이다. 결국 달라이라마 방한을 정치적 이유로 거부하는 한 대한민국은 자주국가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국제 사회에서 낮은 지위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사회운동가 술락 시바락사(1933~ ) 박사는 2014년 8월 “교황은 초청하면서 수년째 달라이라마 방한에 미적지근한 한국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세계 불교석학 제프리 홉킨스(1940~) 미국 버지니아대학 명예교수도 2016년 6월 “세계인이 존경하는 종교지도자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것은 한국 정부로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달라이라마는 ‘자비’를 주제로 말한다. 이를 왜 한국 정부가 무서워 하느냐”고 지적했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롭상 상가이 총리(1968~)는 2016년 8월 “중국 관계가 골고루 미치는 서방세계에서도, 자유 민주주의에 근거해 달라이라마를 초대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중국의 영향력이 미친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독립국이 아닌가”하고 반문했다. 더구나 달라이라마는 중국-티베트 간 정치적 문제에서도 한 걸음 떨어진 상태다. 이미 2011년 티베트 난민들의 직접 선거로 뽑힌 롭 상 상게 총리에게 정치 권력을 모두 이양하고 스스로 역할을 종교지도자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의 행보를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정부의 태도에 비해 달라이라마가 보여준 한국을 향한 애정은 한결 같다. 1959년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할 때 가슴에 품고온 티베트 대장경 3질 중 1질을 1967년 우리나라에 특별히 기증했다. 2009년 9월에는 동국대 WISE캠퍼스가 티베트 불교를 전문으로 연구하길 바라며 20만 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어딜 가든 “여건만 되면 어떤 귀중한 일도 미루고 한국을 찾겠다”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고 싶다” “언제든지 한국에 갈 준비가 돼 있다” “한국에 가게 되면 좋아하는 김치를 많이 먹고 싶다” 등등 한국을 향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한국 불자들의 마음도 간절하다. 다람살라에서 열리는 ‘한국인을 위한 법회’에는 매번 수백명이 참석하고 있다. 2000년 첫 방한 추진 당시 달라이라마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초청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불교신자들이 많고 평화를 가장 열망하는 한국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망명할 때 등에 지고 히말라야를 넘어온 경전을 60년대 중반 동국대에 보낸 것도 그런 열망에서였습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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