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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KBS ‘사찰 노예 사건’ 오보로 밝혀졌지만

  • 기자칼럼
  • 입력 2024.01.26 21:00
  • 수정 2024.02.09 11:12
  • 호수 1714
  • 댓글 5

사찰 특성 외면한 채
"장애인 인권 유린”
보도했던 KBS 등 언론
무죄 판결 보도 외면

지적 장애인을 장기간 착취했다는 혐의를 받은 서울 노원구 학림사 주지스님이 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스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최근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 보냈다. 이른바 ‘사찰 노예사건’으로 지탄받아야 했던 스님은 6여년 만에 비로소 혐의를 벗게 됐다. 

당시 검찰은 주지스님이 2008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지적장애 3급을 판정 받은 편 모씨에게 예불, 기도, 마당 쓸기, 잔디 깎기, 제설 작업, 각종 경내 공사 등 노동을 시키면서도 급여 1300여 만원을 주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2심 역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 8개월로 형을 낮췄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스님이 지적 장애인 편 모씨를 1985년부터 행자 혹은 노전스님으로 대우하면서 의식주 비용을 책임지는 것을 넘어 실질적 보호자로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각종 수술비, 보험료, 국내외 여행비·해외 성지 순례비까지 전부 부담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아울러 “원심 판단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장애를 이유로 한 금전적 착취’, 옛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악의적 차별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검사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음을 지적했다.

되짚어 보면 사건의 발단은 불교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일반 언론의 보도였다. KBS 등은 2019년 7월 9일 “주지스님이 편 모씨에게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동안 목탁을 치며 마당을 순회한 뒤 새벽 예불을 준비하게 했다”고 지적하며 “예불 뒤 아침 식사가 끝난 오전 7시부터 취침 시간 밤 10시까지 점심·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모두 노동 시간이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스님이 아닌 노예였다” “30년 간 노동력 착취” 등등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무차별적인 보도를 했다. 주지스님은 ‘범죄자 낙인’이 찍혔고 악마화됐다. 

비록 무죄 판결이 났지만 6년 간 ‘장애인 착취’ 굴레를 짊어져야 한 주지스님의 상처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단독 보도’라 강조했던 KBS뉴스는 정작 대법원 판결에 관해선 일체 보도 하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승가공동체는 이상한 것 투성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두꺼운 패딩 점퍼도 입지 않고 새벽 3~4시부터 목탁을 두드리며 사찰 경내를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간소하고 편리한 밀키트 대신 여전히 대중의 밥·국·반찬을 일일이 지어야 하고 나물을 직접 채취하는 반근대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최초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죄를 범한 이는 수행하고자 출가한 주리반특에게 “빗자루로 마당을 쓸라”고 가르친 부처님일지도 모른다. 지능이 너무 떨어져 좀 전의 일도 기억 못하는 그에겐 늘 청소일이 주어졌다. 부처님은 오로지 빗자루만 보며 청소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고 주리반특은 지극정성으로 청소했다. 방이 깨끗해지듯 마음도 맑아졌고 그는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보편적 인권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이유로 승가가 이어온 전통문화를 함부로 재단하고 도려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구나 얄팍한 호기심을 ‘알 권리’로 포장해 자극적인 제목과 무차별적인 폭로식 기사로 한 출가자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긴 KBS 등 언론들의 참회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인권을 주장하던 이들이 한 스님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보여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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