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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본질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기자명 이상훈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억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 기억의 내용과 그 구성의 본질은 사회적 현상임을 주장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란 1퍼센트는 진짜 기억일 수 있겠지만 99퍼센트는 그 시대의 지배적 사조와 부합하는 과거 상(像)의 재구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나라의 역사적 기억 역시 과거의 온전한 재생일 순 없고 집단적·정치적 특성이 가미된 기억틀을 통해 재구성될 뿐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기념관은 일면 재임 시절의 공과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공간이지만, 그 본질은 현실 정치가 살아 숨 쉬는 정치세력의 상징적 영역이자 선봉에 나부끼는 깃발이 되기도 한다. 공간연출을 통해 업적에 방점을 찍으면서 불편한 진실은 슬쩍 감추어 망각시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정파와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방문해야만 하는 성역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반민주적 독재자로 평가받아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극장용 다큐멘터리 흥행에서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에 이르기까지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북한의 ‘이승만 죽이기’ 전략에 휘둘려 그동안 방치되었던 이승만 혐오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작업에 대한 공감은 건국 1세대를 넘어 다양한 세대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의 ‘선택적 기억’과 건립 부지선정에 관한 서울시장의 발언은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했다. 이후 일련의 사건에 연루되어 5년 7개월에 걸친 감옥생활 중 기독교도가 되었다. 1904년 8월 석방 후 미국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당시로서는 최소 12년 걸리는 학사-석사-박사학위 과정을 5년 반 만에 마친다.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에 필요하다며 하버드와 프린스턴에 2년 내 박사학위 취득을 약속받은 것이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 사령관은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하면서,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 제1호’를 통해 군정을 포고하였다. 포고문에 나오는 조선 점령의 목적을 보면 항복문서조항의 이행, 조선인의 인권보호 외에도 ‘종교적 권리(religious rights) 보호’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미군정과 장로 이승만을 정점으로 한 초대 정부의 편향적 종교정치의 깊은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에도 1947년 3월 트루만 독트린(Truman Doctrine)에 따라 미군정(美軍政)은 한국불교종단을 좌파로 규정하고 냉전논리를 앞세워 기독교에 편파적인 지원을 하였다. 이승만의 초대 정부 역시 미군정기에 도입된 교도소 수감자 선교를 위한 형목(刑牧)제도, 공휴일 성탄절 제정 등을 지속하면서 개신교에 특혜를 몰아주었다. 대통령 취임식이나 국회 개원식 등 주요 국가행사를 기독교식으로 거행했고 교회에만 민영방송국을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이런 부정적 과거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을 덧칠하거나, 편향적 종교정책의 피해종단들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송현녹지공간의 기념관 건립을 겁박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국민과 불자들의 일상으로 ‘과거사의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폭력이자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이미 송현동 땅 활용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서울시민은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 땅이 가진 역사성과 공공성을 고려한다면 이승만에 대한 다양한 기억만큼 건립 부지 논의에 있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불필요한 부지선정 논란을 마무리하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보다 견고히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대전대 교수 shlee0044@naver.com

[1719호 / 2024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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