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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 한국사 교과서 9종 중 7종서 ‘의승 배제’

  • 교계
  • 입력 2024.03.18 18:14
  • 수정 2024.03.18 23:10
  • 호수 1721
  • 댓글 2

[살아있는 구국의 역사 임진왜란 의승]
3. 고등학교 한국사 서술 실태

천대 받아도 백성 위해 전장 뛰어들었지만 참전 자체 알 수 없어
씨마스, ‘승병’ 활약 명확히 기술…“왜란사서 놓칠 수 없는 존재”

고등학교 한국사. 출판사별로 1) 비상교육, 2) 해냄에듀, 3) 미래엔, 4) 금성출판사, 5) 동아출판, 6) 리베르스쿨, 7) 씨마스, 8) 지학사, 9) 천재교육.
고등학교 한국사. 출판사별로 1) 비상교육, 2) 해냄에듀, 3) 미래엔, 4) 금성출판사, 5) 동아출판, 6) 리베르스쿨, 7) 씨마스, 8) 지학사, 9) 천재교육.

현행 대다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임진왜란 때 적군과 맞섰던 의승의 활동이 철저히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이 조헌의 700의병과 함께 순국하고도 금산 칠백의총(사적 105호)에서 외면당한 아픈 역사와 비슷한 모양새다.

본지가 고교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 9종(금성출판사, 리베르스쿨, 해냄에듀, 천재교육, 씨마스, 동아출판, 미래엔, 비상, 지학사)을 분석한 결과 7종에서 의승병의 참전 사실을 전혀 서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조·명 연합군의 반격으로 전황이 회복되었다.’(금성출판사) ‘곽재우, 조헌 등의 의병도 왜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리베르스쿨)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약 및 명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하였다.’(해냄에듀)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명이 참전하면서 전세가 바뀌었다.’(천재교육)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활약하였다.’(동아출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조선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미래엔) ‘육지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었다.’(비상)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동안 순국한 스님이 1만명 이상으로 파악되지만, 이들 7종 교과서에는 단지 의병의 활약만 소개할 뿐 스님들의 참전 자체를 알 수 없었다. 의병장 곽재우(1552~1617), 조헌(1544~1592) 등 의병 활약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청주성의 탈환 과정에서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의 활약이 컸음이 조선시대 기록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이들 교과서에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처영 스님과 수천 명의 의승도 마찬가지다. 산성의 서북면을 맡으며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며 무참히 희생당한 처영 스님 및 1000~1500명의 의승은 나오지 않는다. 이순신의 수군으로서 관군보다 월등히 뛰어나 두치, 석주, 팔양재 등 호남 방어의 요지에 배치됐던 의승의 기록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철저히 천대받던 시대에도 나라가 누란의 위기를 맞아 목탁 대신 칼을 쥐고 전장에 뛰어든 스님을 대다수 교과서는 철저히 배제·외면한 것이다.

그나마 씨마스와 지학사 교과에서는 스님들의 임진왜란 참전 사실을 소개하고 있었다. 지학사는 “전직 관료·사림·승려 등이 조직한 의병이 각자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었다”며 의병의 개념 안에 스님을 포함시켰다. 특히 씨마스는 ‘승병’을 의병과 구분해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승병 그리고 수군의 활약으로 전세가 바뀌었다”며 승병의 활약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었다.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의승병이 대다수 역사 교과서에서 누락된 원인을 조선의 억불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의승병의 비중 있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이후 서인들이 집권하면서 불교가 다시 이단시 되기 시작했다. 또 의승병의 활약을 유생들이 고의적으로 묻어버린 반면에 의병의 활약은 크게 선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승은 의병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양은용 원광대 명예교수는 “의병은 의승병보다 수가 많았지만 흩어지기 쉬워 조직성, 지속성이 없었고 의승은 즉시 동원이 가능한 상비 전력의 성격이 강했다”며 “산성을 지키고 봉화를 올리는 등 지속성이 있는 일들은 의승의 본영이던 ‘주진사(駐鎭寺)’가 맡을 정도로 의병과는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의승병 역할은 임진왜란 역사에서 반드시 교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병희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교과서 집필자들이 임진왜란 의승병의 활약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사를 전공한 이들의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고, 교과서 서술지침에도 ‘의병’만 제시하고 있다”며 “불교계가 출판사 측에 의승병 존재를 서술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방법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21호 / 2024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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