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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광덕사 회주 혜 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그 마음 가라앉혀 허공처럼 깨끗이 하라

행자시절 어려움은 인생의 값진 경험
항시 ‘관세음보살’부르며 살아야


<사진설명>스님은 마음을 깨끗하게 비운뒤 기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과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며 언제어디서든 아미타불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단양 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은 지난 2월 14일 강남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선지식 초청법회에서 5백여명의 불자들에게 “기도를 하기 전에는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자갈과 가시덤불을 다 걷어내 옥토를 만든 후 그 마음이라고 하는 땅에 모든 복덕과 지혜와 공덕의 종자를 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화엄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약에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할 것이요, 잘못된 생각과 망상을 멀리하고 항상 모든 집착을 없애며 마음이 향한 바를 항상 걸림없이 하면 바로 부처라 했습니다. (若人欲識佛境界 當爭其意如虛空 遠離妄想及諸取 令心所向皆無碍)

산처럼 높아져 있는 내 콧대 높여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암안(暗眼)을 꺾기 전에는 어떤 불공을 하더라도 그 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산처럼 높아져 있는 그 산을 뭉겨야 만이 그것이 밭이 되어 그곳에 곡식도 심고 나무도 가꿀 수 있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자갈과 가시덤불을 다 치워내고 옥토를 만든 그 마음에 복덕과 지혜와 공덕의 종자를 뿌려야 만이 진정한 기도의 마음가짐입니다. 멀리 찾지 말고 마땅히 그 마음을 가라앉히고 뜻을 깨끗이 하기를 허공과 같이 만들라는 말입니다

즉, 부처가 되고 싶으면 마음을 허공과 같이 깨끗하게 비우고 잘못된 생각, 잘못된 집착을 버리고 늘 내 생각 속에서 걸림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 말씀, 부처님 성품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시절, 그러니까 열 다섯 살 때부터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중학교시절 학생회로 출발해 결국 ‘이 길이구나’하는 생각에 열 여섯에 계를 받아 중이 됐습니다. 지금 제가 육십 네 살이 됐으니까 꼭 사십 팔년으로 오십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누가 뭐라 해도 절 한번 하는 공덕, 관세음보살 한번 부르는 공덕, 나무아비타불 한번 부르는 공덕이 결코 허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느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강원도 산골 백원사라는 사찰에서 행자생활을 했는데 하루에 나무 여섯 짐을 해야 점심을 주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 확실한 사찰에서 살았습니다. 때문에 눈이 많이 와서 나무 못하는 날은 점심을 못먹었는데 한참 먹을 나이라 그런지 동지섣달 긴긴 밤, 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나는데 먹을 것은 없고 할 수 없이 동치미 담궈놓은 김치라도 먹어서 배를 채울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하루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한참하던 우리를 향해 공양주 보살이 바가지에 밥을 퍼와서는 “호랑이 주문진 내려갔으니까 빨리 먹어, 빨리 퍼 먹어, 퍼 먹어”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찬도 없이 그 밥을 손으로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그때 그 사찰의 공양주 보살님이 보기에도 어린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에 그랬나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당시 청월 주지 스님이 출타하면 그날이 밥 먹는 날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밥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편지를 쓰려면 우표 살 돈이 있나, 양말 한 켤레 사 줄 사람이 있나, 추운 겨울 입고 지낼 내복 한 벌 사줄 사람이 있나, 정말 내가 전생에 복을 너무 너무 못 지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어요.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 단돈 이백원이 아까워서 보름동안 밤낮으로 걸어서 부산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간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는 한 평생 신도고 뭐고 아무 것도 없겠구나 싶었지만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서울 조계사 법당에서 큰 스님이 법문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도 다음에 커서 꼭 저 자리에서 법문 한번 해봤으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소원이 어느새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힘이 어디에서 나와 이 소원이 이뤄졌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는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하루 5천번씩 2백일동안 코피를 냉수 마시듯 하면서 무릎이 곪을 때까지 백 만 배를 해 부처님께 참회한 그 공덕이요, 또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관세음보살을 이 십 년동안 부른 공덕이라고 생각됩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고향에 있는 것이요, 참 부처, 참 아미타불은 자기자성입니다. 그러니 내가 부처를 부르고, 내 부처를 내가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항상 나무아비타불을 부르게 됩니다. 모두 그 공덕인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좋은 일만 생겨납니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공덕이 참으로 크다는 것은 제가 평생을 중 노릇해오면서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전생에 많이 닦지 못해 어렵고 박복한 신세라는 생각을 가졌던 제가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고 염불을 하니 그 공덕 하나 하나가 모든 구름을 걷어 내고 밝은 태양이 비치듯 새롭게 피어납니다.

이 우주 만물은 봄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꽃피고 새 울고 얼음이 녹아 물을 만들 듯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과 모든 부처님께 기도하는 힘이 바로 불가사의 (不可思議)한 힘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정리=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혜인 스님은

혜인(慧印) 스님은 1943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3살이 되던 1956년, 경상북도 동화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1962년 경상남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8년에는 경상남도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으며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 등에서 수선안거 10안거를 성만하는 등 수행에 전념했다.

이후 스님은 제주 양진선원을 창건, 선원장으로 취임했으며 1971년에는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100만배 기도를 회향했다.

스님은 제주도에 7년간 부지 3만5천평을 확보해 1996년 제주 약천사 중창불사, 199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환희정사 등을 완공했다. 현재는 스님은 충북 단양에 광덕사 중창불사에 진력하고 있다.

스님은 현재 제주 약천사 회주, 단양 광덕사 회주 제주불교여성합창단 총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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