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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출신 첫 출가 비구니 보현 스님

  • 교계
  • 입력 2014.08.12 11:05
  • 수정 2014.08.12 11:07
  • 댓글 1

“나눔 없는 불교에 미래 없다”

▲ 작은 시골마을에 ‘스타’ 비구니 스님이 등장했다. 1980년 하이틴 스타였던, 지금의 아이유 같은 인기를 누렸던 보현 스님이다. 스님은 논밭을 일구며 사찰김치를 보급하며 지역과 호흡하는 부처님도량 전북 익산시 오산면 정각사(주지 일행 스님) 법석에 올랐다. 7월27일 정각사가 마련한 ‘33인 선지식 초청법회’였다.
작은 시골마을에 ‘스타’ 비구니 스님이 등장했다. 1980년 하이틴 스타였던, 지금의 아이유 같은 인기를 누렸던 보현 스님이다. 스님은 논밭을 일구며 사찰김치를 보급하며 지역과 호흡하는 부처님도량 전북 익산시 오산면 정각사(주지 일행 스님) 법석에 올랐다. 7월27일 정각사가 마련한 ‘33인 선지식 초청법회’였다.

익산 정각사 선지식 초청법회 법석에
하이틴 스타 시절 생방송 중 돌연 잠적
숭산 스님에 계 받고 출가수행자 생활
부천 부처님마을에서 도심포교에 진력

보현 스님은 빼어난 노래실력으로 법회 중간중간 ‘부처님이 부처님’, ‘무생화’, ‘무상계’ 등 찬불가로 음성공양 올리며 흥을 돋우고, 찬불가로 부처님 가르침을 쉽게 풀어냈다. 이날 만난 보현 스님은 화려했던 연예계 활동에서 부처님 제자를 꿈꿨던 이유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불연은 부모님이 맺어줬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암자를 부모님 손잡고 오르내리다 비구니스님 유발상좌가 됐다. 사찰에서 살다시피 하며 비구니스님을 모셨다. 그게 부처님과 보현 스님의 첫 인연이었다.

여고시절, 스님은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친구와 서울 남산에 올랐다가 광고 기획자 눈에 띄었고, 그 길로 모델로 가수로 활동을 이어갔다. 배우 김혜수가 출연했던 연속극 ‘사모곡’ 주제곡 등으로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978년 대통령이 주관했던 행사에서도 노래하는 등 연예인으로서 가늠할 수 없는 인기를 얻었다. CF 한 편당 출연료 1000만원을 오가던 1980년대, 스님은 광고도 여러 편 찍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86년 생방송 중에 마이크를 놓고 말도 없이 카메라 앞을 떠났다. 돌연 잠적했고 출가했다.

“가수 활동 접은 거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스님이 되고 싶어요. 당시 KBS 가요대상에서 가수 이선희씨가 ‘J에게’에게로 수상했고, 저는 만화영화 주제가였던 ‘개미들의 행렬’로 상을 받았어요. 김혜수씨가 그 때만해도 고3 이었는데 제게 ‘언니 사모곡 좀 가르쳐줘요’라고 할 정도였어요.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정말. 그런데 다 의미가 없더라고요. 돈도 많이 벌어보고 좋은 집에서도 살아보고, 왠지 모르게 공허함만 가득했지요. 20대였는데, 그 길로 숭산 스님을 찾아가 계를 받았어요.”

스님은 지리산으로 몸과 마음을 숨겼다. 다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싶었단다. 그러나 당시 인연을 맺고 있었던 배우들의 귀띔으로 행방을 수소문한 연예 관계자들 손에 붙들려 다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노래엔 공허함만이 담겼고, 스님은 다시 지리산으로 도망치듯 피했다.

“왜 굳이 출가수행자가 됐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수녀도 있는 데 꼭 머리카락을 깎아야 하느냐면서. 그런데 저는 죽어도 부처님 제자가 되고 싶었고,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해야겠다는 원력이 있었어요. 초지일관 오로지 부처님에게만 귀의하고 싶었거든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 의미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여겼고, 그 답은 부처님에게 있다고 믿었어요. 집안에서는 엄청 반대했지만, 결국 출가했어요.”

가수에서 출가자가 된 케이스는 적지 않다. 얼마 전 입적한 범능 스님은 민중가수로 활동하다 세연을 접었다. 그러나 비구니로서는 보현 스님이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스님은 출가 뒤 연예계 활동으로 모였던 재산을 도심포교로 회향했다. 30년 가까이. 지금은 경기도 부천 부처님마을에서 포교에 진력 중이다. 신생아부터 고아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부처님마을에서 살 부비며 살았다. 이제는 없지만 여전히 그들을 후원하고 있는 게 보현 스님이다. 왜 일까?

“참선도 하고 대중포교도 하는 곳이 부처님마을입니다. 오늘 정각사에 온 것도 제가 하는 포교를 그대로 옮겨서 설법한 거예요. 불교는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법회가 살아나야 함께 살지요. 어르신들만 오는 부처님도량은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함께 숨을 거둡니다. 20~30대, 40대 신도들이 오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춤형 포교를 해야지요. 직장인들이 대부분일 텐데 주말법회를 활성화시키고 내용도 신선하게 바꿔야 해요. 비교적 젊은 층 에너지로 부처님도량이 호흡해야 해요. 그리고 나눔입니다. 나눔 없이 불교는 살 수 없어요. 도심포교 하면서 철저히 느끼고 있지요. 초하루나 재일 따져서만 절에 오는데, 그래선 안돼요. 저는 절을 찾는 분들의 아픔을 공유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전하되 고민을 나눠야 해요. 제가 노래도 불러봤고 모델로 해보고 연예계 활동을 했잖아요? 이런 꿈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생각도 함께 나누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인연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일을 말하는 보현 스님에게 불교는 나눔이었다. 그렇게 스님은 경기도 부천에서 중생들과 부처님마을을 일구며 도량을 만들어가고 있다.

신용훈 전북주재기자 boori13@beopbo.com

[1257호 / 2014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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