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음악계에서 신비한 음색과 명상적 가사로 유명한 데바 프레말의 음반 ‘러브 이즈 스페이스(Love is Space)’가 국내에 출시됐다. 이 음반에는 동양적이고 종교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일곱 개의 만트라(Mantra)가 담겨 있다. 데바 프레말 특유의 깊고 부드러운 보이스는 만트라에 실린 신비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정한 리듬을 타고 계속되는 만트라는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데바 프레말의 음성은 감미로우면서도 흥겹다. 이 음악을 들은 달라이라마도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명상나라 033)244-6708
年 20회 수련…수행 중 변화 점검 철저 위파사나-자비수관-차 수행법 등 실시 수행 명문 도량응로 급부상하고 있는 남양주 봉인사 자광원. “느린 것은 퇴보합니다. 그것이 세간의 잣대이지요. 세간은 늘 빠른 것을 추구합니다. 위파사나나 아봐타 수행을 하면서 그 동안 내(我)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착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정체돼 있는 나와 빠른 것이 아닌 느린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양주 천마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봉인사(주지 적경 스님) 한길정진원의 수련 프로그램에 두 차례 동참했던 배수지나(41·서울시 노원구) 씨의 말이다. 불자가 아니었던 그녀는 한길정진원에서 수행을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해 몰랐던 점을 하나하나 알아 갈 수 있었고 또 변화
우리 인간은 욕망이 추구되는 한 이로 인해서 인간의 삶의 법칙 곧 우주 속의 인간의 질서를 떠나서 잘못된 곳에 머무르게 되며, 그 때문에 고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두카다.이어야할 우주적 질서를 벗어나면 그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러므로 이 두카를 멸하기 위해서는 순서에 따라서 잘 행해야 할 규범이 있으니, 이것이 여덟가지 올바른 길이라고 하신 것이다.이 여덟가지 중에서는 첫째 단계에서부터 점차로 올라가는 순서가 있다.첫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그 다음의 단계를 이룰 수 없다. 그 첫단계는 무엇인가?이것이 올바른 견해라고 하는 정견(正見)이다. 이로부터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순차로 이루어지게 된다.팔
하루는 상서 벼슬을 하는 진조 거사가 자복 화상을 친견하러 찾아갔는데, 화상은 그가 오는 것을 알고 손가락으로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 이에 진조가 말했다. “제가 이렇게 와서 앉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원상을 그려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에 화상은 방장실의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일원상(一圓相); 선문에서 절대 진리의 표상으로 자주 등장함. 일원상을 최초로 그린 사람은 혜능의 제자인 혜충 국사로 알려져 있음. *진조(陳操·생몰연대 미상); 당나라 때의 거사. 목주도명에게 선을 배웠으며 목주자사를 지냈다. *자복(資福·생몰연대 미상); 5대 당말(五代唐末)의 선사. 법명은 여보(如寶)이며 양산혜적의 법을 이은 서탑광목(西塔光穆)의 제자
Q : 참선과 위파사나는 어떻게 다른가요? A : 일반적으로 미국에는 히나야나 메디테이션과 마하야냐 메디테이션이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에도 히나야나가 좋으냐 마하냐나가 좋으냐 시비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대승선, 소승선하는데 히나야나는 작은 호수에서 항해하는 반야의 배를 말하고 대승선은 큰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의 배를 말합니다. 본래 불법에는 대소승이 없지만 환경과 그 문화에 따라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큰 바다에 가려하면 큰 파도 속에 작은 배는 엎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법도 남방불교에서는 무더운 환경에 맞는 방법인 소승선인 비파사나가 많이 발달되어 있고, 북방불교에서는 계절적인 환경으로 대승선인 간화선이 발달됐습니다. 큰 나무로 예를 들면 나무에는 잎사귀가 있고
늦깍이 귀의… 10년째 사경 염불-절-주력수행도 병행 부처님 가르침을 한 자 한 자 따라가며 글로 새기고 마음에 새기는 사경 수행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니, 그 발자취를 따르고자 수행을 택했고 수행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 뿐이다. 불교와 인연은 우연이 아니었던 듯하다.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도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다. 부모님은 어느 산골에 교회를 세울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 집안의 셋째 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거리의 부랑아를 집으로 데려와 옷과 음식을 내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몇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모곡 사야도(Mogok Sayadaw, 1899∼1962) 우 위말라(U Vimala)는 북부 미얀마의 만달레이 남쪽의 아마라푸라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입적했다. 모곡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의 아비담마 가르침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특히 십이연기를 중심으로 한 아비달마적인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위파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9세 때 사미가 되었고, 20세에 비구가 된 우 위말라 스님은 25세 때, 아비담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비담마 강의를 할 때, 선배 스님들로부터 수행을 권유받아 위파사나 수행을 하였다. 만달레이와 아마라푸라지역의 여러 스님에게서 수행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모곡 사야도 진영. 굴속서 각고의 3년 수행 모곡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의 교학에 간접적인 영향을
‘무심’·‘중도실상’·‘해인삼매’禪 핵심 수 년 수행경험 바탕으로 명확히 전달 요즈음 조계사에서는 ‘조계종 선원장 초청 대법회’가 열리고 있다. 수행정진에만 전념한 조실·선원장급 스님들의 감로법문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부대중에게 더없는 청량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어 불자들은 선사들의 한마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소리 하나에도 조심하고 있을 정도다.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참선이 갖는 의미를 전달하고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선사들이 던진 선문답 하나, 용어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를 그 자리서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고우 스님은 ‘중도실상’을 전하며 “양변의 여읜자리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무여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조각과 교수이자 경주 불국사 기획실장인 청원 스님은 예술인이 꼭 갖추어야 할 두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다. 그 하나는 창작일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술을 대중화하겠다는 신념이다. 스님은 2001년 7월 15일 부산시 강서구 대저 2동에 소재한 폐교를 개조해 강서예술촌을 세워 부산과 경남 지역의 불자와 일반인들에게 전공인 조각을 비롯한 도예, 서예 등을 가르치며 예술을 대중화하겠다는 신념을, 자신의 원력을 구현하고 있다. 이 곳에 들러 스님의 예술을 음미하고 서툴지만 조각칼을 만져보려는 사람들이 하루 40∼50여명에 달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조각칼을 처음 든 스님은 세납 26세 때 출가했으며 불가에 입문한 이후에도 조각가로서의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스님은
동국대 청원 스님, 4월 7∼19일 2회 창작전 공평아트서 팔상성도, 불상 등 30점 선보여 왼쪽부터 문수보살, 사문유관상, 석가모니불. 허연 수염과 백발의 16나한이 우유 빛 얼굴의 동자 나한이 되었다. 그러나 16나한의 얼굴에 풍겼던 장난 끼와 순수함은 동자 나한의 얼굴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 전통 색상인 오방색으로 채색한 뒤 그 위에 다시 금박을 입혀 조성한 부처님은 언뜻 보면 화려하지만 다시 보면 전통의 아름다움도 잔잔하다. 16동자·나한상 돋보여 동국대학교 불교조각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청원 스님이 오는 4월 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공평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불상을 비롯한 팔상성도, 16동자 나한 등 모두 30여 점의 작품이 불자와
“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종교이다. 불교미술은 이를 근본으로 하여 지금까지 이어온 전통적 표현방법이라 할 것이며 또한 자비의 실천적 방법의 형상이란 틀로서 조각과 불화가 조화롭게 대중에게 다가왔던 것이다”고 주장하는 청원스님은 “시대적 요구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21세기 불교미술이 지향해야할 소명이 있기에 종교의 순수성과 정심의 숭고함을 사부대중과 같이 실현하고자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대중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고 인생의 고된 생활 속에서 여명의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등불을 밝혀본다는 것이다. 주영미 기자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故 정채봉 씨의 작품 ‘오세암’뮤지컬이 드디어 오는 3월 19일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공연 제작비가 1억원 이상 투입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운 뮤지컬 ‘오세암’은 뮤지컬 전문극단 ‘예일’(대표 이광열)이 1년 가까이 준비해 선보였다. 뮤지컬 ‘오세암’은 작은 암자에 전해 내려오는 다섯 살배기 아이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성인동화를 무대화한 것으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동생을 위해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나는 남매의 얘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광열 씨를 비롯해 배우들은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실제 설악산 정상에 위치한 오세암을 몇 번씩 오르내리며 노력한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엄마를 그
이주희 화가가 이형화랑에서 ‘이주희’전을 열고 있다. 그의 화폭은 연꽃을 중심 축으로 시작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행복과 평화 그리고 영원성을 의미하고 있으며 여백에는 원을 넣어 안정감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동양철학의 신비 속으로 관조자들을 유도하기 위한 화가의 내밀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형옥 평론가는 “작품에 나타난 양식면에서 볼 때 이주희는 구상표현의 기법양식으로 대상을 보이는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내면철학의 윤회라는 양상에 접근 자연의 이법을 화면에 재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회는 3월 30일까지 열린다. 02-736-4806
“원작에 충실하려고 배우들과 많이 노력했습니다. 故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가 그대로 무대에 올려 진 듯한 느낌으로 만들려고 음악과 무대, 조명 등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직접 만들고 고치고 또 바꿨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린이들의 평가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뮤지컬 ‘오세암’ 연출가이자 극단예일의 대표 이광열 씨〈사진〉는 “하루 12시간씩 6개월간 강행하며 고생한 배우들에게 제일 고맙다”는 이씨는 “다섯 살배기 길손이의 마음처럼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마음으로 3월 31일까지 성공리에 공연을 마치고 전국순회공연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단 예일은 지난해에도 ‘하얀마음 백구’라는 뮤지컬에서 실제 진도개를 무대에 올리고 탈북소녀의 애환을 그린 ‘꽃피는 모란봉’에서는 귀순소녀를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당나라서 밀교 전래황실 후원으로 전법 진력“수행-공덕 청렴에서 나온다”겨울이 깊었습니다. 건강하시온지요.저도 이제 나이 오십에 가깝고 머리도 희끗희끗 해져옵니다. 그토록 염원했던 전법(傳法)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나이어린 제자들이 제몫 하는 것을 지켜봤으면 싶지만 저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 같아 언제 꺼질지 모를 상황입니다. 또 제 성품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하지 못함에도 오랫동안 나라의 녹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제 저에게 내리던 녹을 끊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출가구도자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재물은 괴로움의 근원인 까닭입니다.물푸레와 넝쿨을 옷 삼아 산중에 홀로 앉아 부처님을 염하며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는데 전념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 수행 공덕으로 국가
『인도철학과 불교』/권오민 지음, 『고대인도사회와 초기불교』/우마 차크라바르티 지음 거대한 용광로처럼 수십 개의 문자와 수백 개의 언어, 수천 개의 방언이 만들어내는 수 만개의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 인도이다. 이 속에서 나고 자란 불교를 인도로부터 분리해 관찰하거나 혹은 반대로 불교 속에서 인도의 색채를 분리해보려는 시도는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은 시기 민족사가 출간한 두 권의 책은 고대 인도사회와 초기 불교, 그리고 인도 철학과 불교를 견주고 있지만 결코 이런 허무한 시도를 하고 있지는 않다. 『고대 인도사회와 초기불교』는 ‘불교를 초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관점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다. 필자는 불교야말로 당시 사회의 대안으로 새로운 사상을 세우려는 부처
80년대 이후 불교인류학 연구 팔리어 경전-율장 번역 왕성 제3세대 초기불교 연구가로 명성 근현대 일본의 인도철학 불교학 연구는 대승불교의 산스크리트 경전과 초기불교 또는 원시불교연구와 함께 시작됐다. 메이지 이전까지 한역 불전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 진행되어 오던 불교학은, 서구 특히 유럽의 근대적인 학문의 방법론의 수입에 의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일본의 불교 종단에서는 종파적 차원에서 유학승들을 파견하였고, 국립대학에서도 전문 연구가의 해외에서의 연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들의 귀국 후의 활동에 의해 역사적이며 문헌 비평적(Text critical)인 근대 불교학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日, 『남전대장경』 번역후 새 연구방법 등장
△『장부』번역이 끝나시면 어떤 번역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지금은 율장(Vinaya)에 관심이 있습니다. PTS의 I. B. 호너 여사의 영역도 있고 번역을 하고 있지만, 언제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율장에는 흥미 있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장부』는 모리 소토 선생 등이 새로 번역한 것이 선생님의 번역과 거의 동시에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번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기본적으로 그분들의 번역은 학문적인 접근이라는 특성이 있지요. 제 번역은 상좌불교의 전통에 입각해서 충실하게 주석문헌과 복주문헌에 따라 일관성 있게 번역하는 것입니다.” △2500년의 불교역사를 꿰뚫는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이곳에서 탐진치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42년 생. 65년 고마자와 대학 불교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문학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스리랑카에서 상좌불교를 연구했다. 팔리 문법학과 어학에 대한 연구 및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한 남방불교에 대한 불교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근래 10여년 동안 상좌불교 주석문헌에 입각한 새로운 팔리경전 번역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즈노 고겐(水野弘元, 1901- )의 뒤를 잇는 일본을 대표하는 팔리불교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일본 동경에 위치한 조동종 종립대학인 고마자와(駒澤)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