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에서 유위와 무위란 일체법이나 제법을 크게 생멸현상의 유무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위(有爲, saṃskṛta)란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나 조건 지워진 것, 즉 인연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유위는 인연화합의 산물로 생멸변화가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반면에 무위(無爲, asaṃskṛta)란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은 것이나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를 말한다. 초기불교에서 무위는 열반을 의미했는데, 아비달마불교에서는 3무위 등으로 좀 더 다양하게 세분화된다. 일체법의
초기불교에서 3독(三毒, triviṣa)이란 신・구・의의 3가지 업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의업(意業)에 해당하며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인간의 내면에 잠복하고 있는 습관적인 심리적 경향으로 ①탐욕(貪, rāga)・②성냄(瞋, dveṣā)・③어리석음(痴, moha) 등의 3가지 번뇌를 말한다. 이때 3독이란 3가지 번뇌를 독에 비유한 것으로 인간이 행하는 여러 악한 행위나 괴로움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나타낸다. 이 3독은 마음이 3독에 물들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3독심으로도 불린다. 이러한 3독심은 아비달마불교와 대승불교에 이르기
초기불교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을 통한 완전한 행복 즉 열반을 성취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때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 붓다의 궁극적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여러 이견이 있다. 하지만 초기경전이나 율장 등의 기술들을 고려하면 붓다의 깨달음은 4성제나 12연기 등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붓다의 깨달음은 연기법이나 연기의 도리로 이해된다. 요컨대 연기의 도리라는 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는 교설이나 교리로 확립되기 이전에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제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예컨대 ‘상윳따니카야’에서
초기불교에서 9차제정(九次第定)이란 색계의 4선과 무색계의 4선정에 멸진정을 더해 체계적으로 통합한 9단계의 선정을 말한다.색계의 초선에서 순차적으로 제2선, 제3선, 제4선으로 들어간 후 이어서 순차적으로 무색계의 ⑤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⑥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⑦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⑧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으로 나아가 마지막에 ⑨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수행법이다. 9차제정의 마지막 단계인 멸진정은(nirodha-samapatti)은 수(受)와 상(想)의 작용이 멸한다고 하여 상수멸정(想受滅定)으로도 불린다.
초기불교에서 무색계의 4선정이란 3계(三界, tri-dhātu)의 개념 가운데 욕계와 색계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고도의 정신적인 세계인 무색계의 4단계 선정이나 사후에 수행의 과보로 태어나는 4가지 처천(處天)을 의미한다.특히 수행론적으로 무색계는 욕망이나 물질적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살아가는 높은 정신적인 세계나 경지를 말한다. 요컨대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이 사라진 순수한 정신의 세계, 즉 수행의 진전에 따른 마음의 활동인 느낌(受)・생각(想)・의지(行)・분별(識) 등만이 존재하는 세
초기불교에서 색계의 4선(禪)이란 3계(三界, tri-dhātu)의 개념 가운데 욕계의 여러 가지 감각적 욕망이나 선하지 않은 업에서 벗어난 색계의 4단계 선정이나 사후에 수행의 과보로 태어나는 4선천(禪天)을 의미한다. 특히 수행론적으로 욕계는 음욕이나 식욕 등 감각적인 욕망에 따라 일상적으로 영위되는 삶을 의미하는데 반해 색계는 호흡수행 등을 통해 감각적 욕망이나 선하지 않은 업으로부터 벗어난 심리적・내적 경지인 4단계의 선정수행이나 삼매를 의미하게 된다.색계의 4선은 요가적인 사마타 수행을 기반으로 불교적 수행법으로 확립된 가
3계(三界, tri-dhātu)란 불교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의 하나로 중생들의 정신적인 단계나 수행의 정도에 따라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나 장소를 3종으로 나누어 제시한 것이다. 이는 3유(三有)로도 불린다. 즉 3계란 중생들이 자신의 업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를 다음과 같이 ⑴욕계(欲界, kāma‐dhātu)・⑵색계(色界, rūpa-dhātu)・⑶무색계(無色界, ārūpa-dhātu)의 3종으로 나눈 것이다.이 3계 가운데 ⑴욕계는 음욕과 식욕 등의 욕망이 있는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계로 ①지옥·②아귀(餓鬼)·③축생(畜生)
인도철학이나 불교는 인간의 불완전하고 유한한 삶을 근본적으로 실존적 괴로움으로 보며, 아울러 실존적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즉 완전한 행복(열반)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즉 인도철학과 불교는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고난의 바다로 진단한 후, 인생에서 겪게 되는 실존적 괴로움을 견인하는 근본적 번뇌 등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성자나 붓다의 삶을 가장 이상적인 행복한 삶으로 제시하고 있다.사실 초기불교에서 인간이 살면서 겪는 실존적 괴로움은 인간의 삶이나 이 세계가 조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멸하는 연기적 현상들에 지나지
‘불교의 본질이나 핵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마음을 닦는 것’을 비롯한 ‘마음의 종교’ 혹은 ‘마음공부’ 등이다.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과연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리 쉽게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늘 쓰며 살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아비달마불교나 유식학에서는 그 교리체계가 불교심리학으로 불릴 정도로 마음의 정의를 비롯한 그 이론체계가 매우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하지만 초기불교에서 마음은
초기불교의 연기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교리와 수행체계는 계·정·혜의 3학(三學)에 포섭된다. ‘3학’이란 완전한 깨달음이나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행자가 반드시 익히고 닦아야하는 ‘3가지 학문이나 실천항목’을 의미한다.팔리어로는 ‘트리식카(tisikkhā)’로, 산스크리트어로는 ‘트리시크샤(trisikṣā)’로 불린다. ‘3학’ 가운데 먼저 ①계(戒, śīla)는 ‘신(身)․구(口)․의(意)’의 3가지 행위(업)를 바르게 하고, 아울러 ‘탐욕․성냄․어리석음’의 3가지 부정적인 심리적 성향(3독심) 등을 그치거나 다스리는 윤리적인
초기불교의 수행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입출식념, 즉 들숨과 날숨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근간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토대로 ‘몸·느낌·마음·법’이라는 4가지 대상에 대한 4념처 수행도 확립되고, 종국에는 7각지와 4제 등에 대한 수행을 거쳐 완전한 지혜와 해탈을 증득하게 된다. 대체로 이러한 초기불교의 수행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익히고 닦아야 하는 ‘계(戒)·정(定)·혜(慧)의 3학에 포섭되며, 교리적으로는 4제와 8정도 등과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이 가운데 7
용어상으로 ‘사마타(sama tha)’는 팔리어이고,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사마타(śamatha)’로 ‘고요・평온하다(to be quiet)’를 의미하는 ‘동사어근 √śam’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는 한역으로는 마음의 활동이 ‘그친다’는 의미의 ‘지(止)’로 번역되고 ‘삼매(三昧, samādhi)’와 상통하는 의미로 간주된다.한편 ‘vipassanā(위빠사나)’는 팔리어이고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위파스야나(vipaśyanā)’이다. 이는 ‘뛰어난, 다양한’을 의미하는 접두사 ‘vi(위)’와 ‘본다(to see)’는 의미의
‘법념처(法念處, dhammānupassanā)’는 ‘4념처’ 가운데 법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법이다. 즉 ‘법념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마음이 직접적으로 대응하고 인식하는 물질현상과 심리현상(마음과 심리작용)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반복적으로 주시하면서, 그 본성이 ‘무상․고․무아’임을 여실하게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이다. ‘법(法)’이란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dharma)’이고, 팔리어로는 ‘담마(dhamma)'로 불린다. ‘법’은 불교적인 맥락에서는 ①진리 ②가르침 ③현상 혹은 요소 등의
‘심념처(心念處, cittānupassanā)'는 ‘4념처' 가운데 마음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법이다. ‘심념처’는 이전단계의 ‘신념처’의 입출식념이나 ‘수념처’의 가장 원초적인 심리현상인 느낌이나 감각 등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토대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제1차적 심리현상이나 제2차적 인식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더욱 진전된 형태의 심리적 수행법이다. 이때 ‘심념처’의 수행은 마음이 주동이 되어, 6문(=6근)을 쫓아 12처와 18계, 그리고 5온 등으로 전개되는 인식의 구조나 그 작동원리에
‘수념처(受念處, vedanānupassanā)’는 ‘4념처’ 가운데 느낌과 감각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법이다. 느낌(vedanā)은 감관과 대상이 만날 때 생겨나는 가장 원초적인 심리현상이다. 이는 늘 자율적으로 행하고 있는 호흡과 더불어 일상적으로 여러 심리현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느낌이나 감각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생겨나는 느낌이나 감각들은 다른 심리적인 현상들에 비해 다소 거친 작용으로 이해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느낌이나 감각들이 생겨나는 과정은 인식과 존재, 그리고 이를 통한
‘4념처’는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이라는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주시와 지속적인 관찰방법을 말한다. ‘4념처’는 초기불교의 기본적인 수행법으로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알아차림 수행은 각각 개별적으로 행해지거나 혹은 전체적으로 연계하여 행해진다. 이러한 ‘4념처’의 네 가지 대상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이때 ‘4념처’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신념처’로 이해된다.‘신념처’는 ‘4념처’ 가운데 몸에 대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법이다. 신념처의 수행법은 초기경전 가운데 ‘대념처경’의 기
초기불교의 주요교리는 붓다에 의해 자신의 내면관찰이나 외부 존재와의 관계를 통한 연기적 현상들과 그 이치가 유전문과 환멸문의 두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고려하여 매우 다양하게 시설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하나의 교설 내에도 이론적․실천적 의미와 그 연결고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항상 음미하고 주시해야 한다. 예컨대 화두처럼 항상 챙기고 음미해야 할 문구는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본다’는 것이다.초기불교 다양한 수행법 중37조도품의 첫째 실천항목신수심법의 4가지 대상에오롯하게 마음 집
일반적으로 초기불교의 주요 교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붓다의 궁극적인 깨달음을 제시하는 연기사상에 입각하여 4성제나 5온설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한편 초기경전에서 주요한 수행법은 색계의 4선이나 4념처 등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수행법의 요체는 연기설에 입각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번뇌를 여의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초기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집약해 놓은 것을 ‘37조도품(助道品, bodhipakṣa)’이라고 한다.초기불
일반적으로 자유의지(free will)는 종교․철학․심리․법률의 용어로 널리 쓰이는데 본질적으로 자유의지의 인정여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자유의지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종교와 철학, 그리고 뇌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결정론적인 사고방식과 결부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논란거리이다. 왜냐하면 자유의지의 인정여부에 따라 인간의 행복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여부나 징벌 등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업과 이에 따른 과보 관계는인간 자
요즈음 우리사회에는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하는 대신에 현재적인 삶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과감히 현재를 즐기는 방식의 '욜로(YOLO)' 열풍이 조용히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국내적인 상황에 그치지 않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양상이다. 영어 'YOLO'란 '우리네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다'라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어이다. 대체로 욜로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이나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 불황에 따른 재화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인한다.붓다 당시 유행했던 사상3종의 외도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