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가다

기자명 이학종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 가는 길은 새 색시 시집길 처럼 설랬다. 가슴 속이 시리듯 휑한 느낌은 그 곳이 서울보다 평양이 훨씬 가까운데서 오는 섬뜩함과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서늘함으로 다가오는 파도결 때문이리라. 마중을 나오겠다는 해병 흑룡부대 군법당 흑룡사(032-436-0108) 주지법사의 약속이 없었더라면 만만찮은 거리의 초행 뱃길은 아마도 공연한 두근거림과 함께 고약스러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낭만적으로 느껴왔던 `두둥실 배 떠나 가네'라는 노랫 구절이 이 때 처럼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거니와 이 길을 밥먹듯 오갔을 뱃사람들이 위대하게 보인 적은 일찍이 경험한 바 없다.

"옛날 황해도 어느 마을에 가난한 한 선비가 사또의 딸을 사모하여 둘이 장래를 약속하였다. 이를 안 사또가 딸을 외딴 섬으로 보내버리자 선비는 사또의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얀 학이 흰 종이를 물어다 주고 가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보니 정말 종이에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선비는 이 주소대로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사또의 딸을 찾았다. 두 사람은 단란하게 이 섬에서 살았다."

백령도에 얽힌 전설이다. 쪽지를 날라준 백학을 빌어 섬 이름을 백령이라고 했다. 백령도에는 5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언어와 풍습은 황해도와 비슷하고 전체주민의 62%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섬인데도 어업을 하는 사람은 8%에 불과하다. 백령도는 또 기독교가 위세를 떨치는 곳이다. 주민의 82%가 기독교 신자일 정도로 그 세가 막강하다. 절이라곤 지난 1980년에 지은 군법당 흑룡사가 유일하다. 흑룡사도 군법당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 땅에 불상이 오려한다니'라며 반대하는 주민들의 강력한 시위를 겪어야 했을 정도다. 그 후 16년 동안 확보한 주민불자는 다섯세대이다.

불교라고는 군가족 50여 세대와 현역군인 불자가 전부인 셈이다. 그나마 이들은 근무지를 옮기거나 제대를 하면 섬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백령도에 불교는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불자에겐 이러한 이유로 더 척박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땅 백령도, 이곳에서의 부처님 오신 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부처님께서 이곳에선 어떤 모습으로 그 법신을 나투어 보이실까. 백령도까지의 뱃길 네시간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훌쩍 지나갔다. 그 덕분에 두려움이 약간은 섞인 초행 뱃길의 설레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긴 했지만.

"연고자 없이 이 곳에 오면 고생이 큽니다. 버스가 두 대이고 택시도 네 대에 불과해 교통편이 아주 불편하지요." 용기포 부두에 마중나온 배석일법사(법명 영일)는 자신의 승용차로 우리 일행을 흑룡사까지 안내하면서 백령도를 설명했다. 불교 교세가 약하고, 불교를 믿으면 장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기독교쪽의 배타성이 심하며, 최근에는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심청각 건립기공식 조차 `우상'이라는 이유를 내세운 교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미뤄지는 우여곡절 끝에 한달 전에야 가까스로 마칠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선에서 포교를 하는 유일한 법사로서 겪는 애환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백령도는 연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섬인 것 같아요. 효녀 심청이가 연꽃으로 환생했던 연봉바위가 있고, 뺑덕어미가 살았던 장촌마을이 있으며, 지명도 연화리, 연지동 등 연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이 것만으로도 이 곳이 예전에는 불교가 매우 융성했던 `부처님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배 법사는 지금도 이 섬에는 연꽃, 그것도 진흙 속의 연꽃같은 사람들이 살고있다고 전했다. 불교를 믿는 것이 알려지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줄 알면서도 당당히 불자임을 밝히는 몇몇의 불자들은 그야말로 연꽃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있어 군포교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어려움이 있어도 견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배 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백령도는 부처님의 자취가 도처에 흠씬 배어 있는 잊혀진 불교성지임에 틀림이 없었다. 저만치 내다보이는 장산곶과 그앞의 인당수, 그리고 연꽃과 연관된 여러 지명 등이 이곳을 정토세계로 만들고자 했던 선조들의 발원을 짐작케 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무진 해안으로 펼쳐진 기암괴석 중 바닷쪽으로 불쑥 솟아나와 북녘을 바라보는 부처바위의 모습은 통일과 정토세계를 서원하는 법장비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비록 지금은 이교도의 기세에 눌려 부처님을 멀리하고 있지만 섬사람들의 가슴 속에 감춰져 있는 불교적 심성들은 만개의 인연을 간절히 기다리는 여래장에 다름이 없질 않은가. 여기에다 드물게 남은 청정해역을 간직하고 있어, 불교도들에겐 정토사상과 효사상이 어우러진, 그리고 불살생 정신을 실천할 방생최적지의 기능까지 고루 갖춘 천혜의 성지로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불교 불모지 백령도에 옛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부처님 마을'을 다시 이루기 위한, 아직은 작지만 의미는 큰 움직임이 막 시작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이번 취재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이 섬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의 움직임이 하나 둘 시작되고 있었다. 그 진원지는 물론 이 섬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찰 흑룡사이다. 흑룡사는 올 부처님 오신 날을 백령도에 다시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비추게 하는 일대 계기로 삼는 다는 방침아래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예년보다 군.관.민이 두루 동참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서울에서 연등축제가 절정을 이루던 그 시간에 백령도에서는 여러 불자장병 및 신도들이 흑룡사 법당과 잔디밭에 모여 다과를 차려놓고 봉축전야 장엄법회를 봉행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해병여단 최고어른인 여단장을 비롯 군간부, 신도, 불자장병 등 섬주민이 흑룡사에 모여 봉축법요를 봉행하고, 봉축 오찬을 갖는다. 간부 신도들이 해안초소 및 발칸부대 등을 위문, 정성스럽게 만든 연등을 전달하고 떡과일 등의 위문품을 나눠줄 예정이다. 이 날 저녁 흑룡사 인근지역인 북포리와 진촌마을 부근에서는 `모든 생명이 어둠에서 벗어나길 기원하는' 통일기원 점등 및 제등 행진이 봉행된다. 봉축행사가 종료된 후엔 모든 부대의 해안 분.초소와 이웃섬인 대청도와 소청도의 부대장병들에게도 떡, 과일, 과자와 필요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부처님 오신 날을 섬전체의 축제로 치르겠다는 것이다.

흑룡사 배석일 법사는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백령도의 관문격인 용기포등대부근의 한 해안초소를 찾았다. 빠알간 연등과 초코파이 한 상자를 든 배법사를 초병들은 반갑게 맞았다. 감사의 합장과 함께 연등을 주고받는 법사와 장병들의 입가엔 부처님의 미소를 빼어닮은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저만치서 살고 있을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부처님의 대자비광명이 함께하길 발원하는 부처님의 미소였다. 또 백령도가 부처님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범상치 않은 미소였다.

불기 2530년, 부처님은 이렇게 백령도로 오시고 있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