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스님께 듣습니다-도성암 조실 성찬 스님

기자명 이창윤

“주인공으로 사는 방법 배워야 해요”

며칠 있으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사계에 몸을 나투신 참뜻은 무엇입니까. 무명에 휩싸인 중생에게 부처님은 등불과 같은 분이십니다. 중생들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지도 모르고 탐욕과 어리석음에 빠져 헤매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주인공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라는 물건을 움직이는 마음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49년간 설법하신 8만 4,000 법문도 마음자리를 깨닫는 이치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들도 마음자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누구든지 마음자리를 깨달으면 사람의 근본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마음자리를 깨닫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참선을 해야 합니다. 참선은 곧 화두를 드는 것이지요. 육조 스님의 ‘이뭣꼬〔是甚쬱〕’가 대표적인 화두입니다.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고〔吾有一物 此何物〕’ 하는 법문이지요. ‘누구나 한 물건이 있어 서로 대화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는데, 도대체 이 물건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지요.

우리 중생은 늘 나를 부리면서도 나에 대해 모릅니다. 나를 등지고 살고 있어요. 누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면 웃고, 때리면 화를 내는 그 마음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나를 깨닫자는 것입니다.‘이뭣꼬’ 화두를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앉아서 못하는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내 생각을 일으키는 그 놈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 놈을 깨달아야 사람 노릇을 하지 그 놈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노릇을 못합니다.

일반인이나 재가불자들은 참선을 스님들이 하는 수행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불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속가에서 가족을 데리고 살아도 누가 좋은 소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누가 욕을 하면 화를 냅니다. 스님들도 누가 욕을 하든지 때리든지 칭찬을 하든지 거기에 안 떨어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일반인들이 직업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기 때문에 화두를 들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끄달리지 말고 발심해 화두를 챙겨야 합니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업무를 보면서, 농사꾼은 논을 매면서 화두를 잡아야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도를 닦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유위법(有爲法)입니다. 유위법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없어지면 암흑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유위(有爲)에서 무위(無爲)의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에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서 내 마음 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도인이 됩니다.

많은 불자들은 참선보다는 교학을 합니다.
각자 근기에 맞게 수행하는 것이지요. 교학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꿋꿋하게 교학을 하고, 염불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염불을 하고, 참선하는 사람은 화두를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교학을 해도 결국에는 정신수행이 중요한 것인데, 정신수행을 하면 마음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이 놈이 무엇인가 의문을 가질 때가 있는 것이지요. 교학을 한다고 해서 글에만 끄달려서는 안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해치고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는 등 천륜과 인륜을 져버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한 생각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생들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자식이 부모를 해치거나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는 그런 일은 없겠지요. 부모나 스승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나쁜 언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많지 악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몇 백 명, 몇 천 명 중에 하나 있거나 말거나 합니다.

참되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선을 잘 해야 합니다. 참선을 잘 할 근기가 아니라면 경을 많이 읽든지 염불을 하든지 하면 됩니다. 그러면 악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참선하거나 경을 읽거나 염불하면 착한 길로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착한 길은 부처님의 가르침일 수도 있고 공자나 노자의 가르침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은 출세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세속에도 착한 길은 있습니다. 누구든지 공경할 사람을 공경하며 살면 그것이 참되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착한 길로 들어서면 내 마음이 착해져 누구든지 악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일어나더라도 악한 생각을 여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재물과 명예에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에서 모든 악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물질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는 물질에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물질에 의지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에 의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건설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물질을 잘 이용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지만 잘 이용하지 못하면 욕심을 내 못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이 못된 생각도 처음엔 작지만 자꾸 하다보면 커져서 자기도 모르게 나쁜 길로 빠져들게 마련입니다. 감옥에 있는 죄인들도 처음에는 남의 물건을 훔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한 번 뺏고 두 번 뺏고 하다보니 나중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게 작은 권리가 있으면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남에게 줄 형편이 안되면 부지런히 내 마음을 착하게 써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욕심을 작게 가지고 만족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도성암은 널리 알려진 참선도량이라고 들었습니다. 결제철에는 스님들이 여남은 명씩 정진했는데 지금은 산철이라 없습니다. 도성암은 옛날 가섭부처님이 “천 명의 도인이 나오리라”고 예언했던 곳이지요. 신라 때 도성국사가 도안(道眼)으로 가섭부처님의 예언을 관하고 이곳에 움막을 짓고 수행했습니다. 훗날 선덕여왕 때 승법 스님이 움막터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지금의 도성암이지요. 그래서 도성암은 신라 때부터 ‘천인득도지(千人得道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나는 1969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젊어서 선방에 다닐 때는 한 철씩 밖에 안 살았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이곳저곳 옮겨 다니기 힘들어 이곳에 머물게 되었어요.

전국의 선방을 다니시면서 만난 선지식과 도반들은 어떤 분이 있습니까.
나이가 들다 보니 옛날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스물네 살 때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마흔 살을 전후로 해서는 만공 스님 회상에서 공부했어요. 영월 법흥사에서는 월산 스님과 같이 수행했었는데 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님은 문자를 모르는 나에게 경전과 선어록을 많이 읽어주셨습니다. 하루는 월산 스님이 방거사가 대매 스님에게 “살구가 익었느냐”고 묻자 “일백 가지 꽃이 피었다”면서 “살구를 먹었으면 살구씨는 내 것이니 내놓으라”고 대답했다는 《선문염송》의 말씀을 읽어주셨는데, 그 덕분에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춘성 스님과는 망월사에서, 석두 스님과는 선학원에서, 탄허 스님과는 월정사에서 함께 서로의 수행을 점검하고는 했지요.

외국인들이 한국불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가 20세기 최대 사건은 불교가 유럽에 소개된 것이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참선이 서양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선은 한국선이 최고입니다. 선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지요. 단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한국선을 널리 알리지 않아서 서양사람들이 잘 모를 뿐입니다. 한국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깨닫지 않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남을 가르쳐야 합니다.

6월이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금강산에서도 정진하셔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장안사와 표훈사에서 더 들어가면 마하연이 있지요. 그곳은 경치가 좋아 수행처로 제일 좋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선지식들과 함께 수행하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군요. 그때 선지식들에게 받은 화두가 ‘이뭣꼬’ 화두였습니다. 모두들 금강산에 다녀오고 하지만 수행하러 가는 것이 아닐 바에는 가서 무엇하겠습니까. 설사 수행하러 간다해도 나는 몸이 여의치 않아 갈 수 없습니다. 수좌들에게 통일이 되면 수행하기 좋은 마하연에서 일대사인연을 해결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

수좌들과 불자들에게 한 말씀 당부해 주십시오.
수좌들에게는 화두를 잃어버리지 말고 부지런히 참구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화두를 3일만 일여(一如)하게 들면 누구나 성불한다. 3일 동안 일여하게 화두를 들고도 성불하지 못하면 내가 대신 지옥에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날까지 참선을 했어도 3일 동안 일여한 것은 고사하고 단 10분도 일여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망상은 안들어오게 하고 화두 하나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성불할 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자들에게는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한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참선을 배운 사람은 화두를 놓지 말아야 하고 염불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염불을 해야 합니다. 또 경을 보는 사람은 경을 부지런히 봐야 합니다. 그렇게 각자의 취미대로 꿋꿋하게 한 길을 밟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해 나가야 다른 사람이 그이를 믿습니다. 이것 했다, 저것 했다 하면 믿지 않습니다. 자기 하는 일을 꿋꿋하게 하면 결국에는 성공하게 돼 있습니다.


정리=이창윤 기자

■성찬 스님 약력
1914년 8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35년 동학사에서 이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 이후 상원사, 정혜사, 마하연 등 선방에서 안거했다. 1969년 이래 대구시 달성군 도성암에서 주석하며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