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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원각사의 영광과 비애

기자명 법보신문
청기와 올린 조선조 왕실 사찰

연산군 때 기생집 전락…서울시 유구마저 훼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왕조나 군주가 되려는 정치적 야망 때문에 자신의 혈육이나 친족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왕들이 있다.

멀리 중국에는 수나라 양제와 당나라 태종, 명나라 영락제가 그렇고,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의 태종과 세조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의 7대 왕인 세조는 명나라 영락제처럼 자신의 어린 조카와 절개의 상징인 사육신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이처럼 잔인한 왕의 대명사인 세조가 자비의 종교인 불교에 유달리 심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의 자리는 차지했지만 어린 조카와 수많은 선비들을 죽였던 자신의 업보는 평생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세운 사찰이 지금의 탑골공원과 낙원상가에 세워진 원각사였다.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 불렸으나 태조가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공공관청으로 사용하던 곳을 세조가 원각사라 이름짓고 대규모 사찰로 창건하였다.

원각사는 창건 당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 500년 동안 사대문 안에 건립된 유일한 절이면서도 왕실에서 진행된 가장 큰 불사였다. 조선조 문헌인 [동문선]과 [금석총람]등에 따르면 원각사는 사찰 둘레만 2000여보(약 2만 여평)로 완공 당시 2만 여명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왕이 내린 음식을 공양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다. 또 왕실에서만 사용하던 청기와를 특별히 8만장을 구워 지붕을 올렸으며 당우에는 금칠을 하는 등 당시 건축술의 집약체였다.

세조는 원각사 창건 과정에서 백성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원각사에 부득이하게 가옥을 내 놓아야 하는 백성에게는 당시 시세의 2배 가격에 보상을 해 줬으며,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듯 원각사에 모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분신을 할 때마다 대사령을 내려 많은 죄인들의 죄를 사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각사가 조선조 왕실 사찰로써 명맥을 유지한 것은 단 40여 년에 불과하다. 뜻밖의 복병은 성리학으로 무장된 선비들이 아닌 호색한이었던 연산군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 이곳의 승려들을 내쫓고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방을 만들고, 유흥을 즐기는 장소로 사용했다. 그 후 중종은 건물을 헐어 그 목재를 민가에 나눠주면서 폐찰이 되고 만다. 그 후 명종 9년에는 대규모 화재가 발생, 그나마 남아있던 잔재들도 모두 불에 타면서 조선조 최대의 왕실 사찰이었던 원각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탑골공원으로 개칭된 이 터에는 국보 2호와 3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과 원각사비가 그 자리에 남아 창건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탑골공원을 3.1운동성역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원각사는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 시굴조사에서 원각사 창건 당시 건물지로 추정되는 석렬과 대형초석, 그리고 우물 등 중요한 유적을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중장비를 사용해 지하 유물을 파괴하면서 성역화 작업을 밀어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개념이 없던 조선시대의 원각사 훼손행태가 눈에 보이는 건물에 불과한데 비해 문화재 보호를 들먹이는 오늘날 오히려 원각사의 마지막 흔적인 지하 유구까지 말끔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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