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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한역불전의 문화사적 의미 규명


중국학계 禪어록 연구성과도 소개




연재를 시작하며

북경에 도착한 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됩니다. 이제는 중국에 연착륙했다고 할까 아무튼 지내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서 [법보신문] 편집부와 약속한 연재 〈한역불전의 문화사적 의미를 찾아서〉를 한 걸음 두 걸음 끌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북경대학 중문계(中文系)에 일년 동안 교환교수 자격으로 와 있습니다. 불교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왜 철학계로 가지 않고 중국어문학 쪽으로 갔느냐고 물으실 분이 많을 줄 압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교학’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지긋지긋하게 많은 언어학적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줄곧 인도불교와 동아시아 불교의 사상적 차이를 규명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뇌리를 뱅뱅 돌며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새로운 연구분야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인도불교를 전공한 저로서 어차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접 학문분야이기도 한데, 바로 인도 불전의 한역 과정에 대한 관심입니다. 한역이 동한 때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0년에 걸쳐 이루어지니 그 과정을 일일이 추적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동한 위진 남북조시대의 중고한어(中古漢語) 및 당송 시대의 근대한어(近代漢語)에 대한 한어사(漢語史) 지식이 선결문제로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언어학적 영역에 빠져 연구의 근본 동기를 잊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연구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한역 과정에 대한 언어학적, 역사적 이해를 기초로 삼아, 인도 불교로 대표되는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의 충돌 내지는 창조적 원융 과정을 사상적으로 해명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성취를 볼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연구 진척을 위한 언어학적, 역사적 기초 지식만은 풍부하고 알기 쉽게 피력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제가 법보신문에 연재물 ‘인물로 읽는 동아시아 역경사’를 싣는 것은, 한 편으로는 나태해지기 쉬운 제 생활을 제어하기 위함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제가 걷게 되는 연구의 여정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거기서 생긴 연구 성과를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아무쪼록 너그러운 마음과 많은 호기심으로 제 작업을 지켜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때맞춰 제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준 [법보신문]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연재를 시작하기 앞서 대략적인 글의 흐름을 소개하겠습니다.

한역불전은 기본적으로 산스크리트어 불전 또는 중앙아시아 제언어로 전승된 불전의 ‘번역’이기 때문에, 편의상 번역 시기를 중심으로 시대 구분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학계의 통례에 따라 이를 (1)고역기(古譯期), (2)구역기(舊譯期), (3)신역기(新譯期)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한어사의 기준에 따라 본다면 중고한어의 시기는 (1)고역기와 (2)구역기로 구분할 수 있겠고, 근대한어의 시기는 (3)신역기와 겹칩니다. 이 연재는 이상과 같은 세 번역 시기를 사정권에 두면서 각각의 시기에 해당하는 불전 번역자들의 생애와 번역 과정을 사료에 근거해서 복원할 것이며, 더불어 그들의 번역이 동아시아 사회에 끼친 문화사적인 영향을 해명할 것입니다. ‘문화사적인 영향’이라 표현했지만, 이 방면에는 한역불전을 지식의 경계선으로 삼아 자신의 사상을 형성한 동아시아 불교 사상가들의 주요 개념도 검토 대상이 됩니다.

8세기 때 밀교 도입을 하한선으로 삼아 한역의 시대는 끝나고, 혜능을 종조로 하는 선불교 시대가 도래하여 唐末에서 宋初에 걸쳐 ‘五家七宗’으로 대표되는 禪이 중국불교의 주류를 형성해 갑니다. 한어사 방면에서 선어록에 대한 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있는 지금, 국내외의 근대한어학자나 선종 연구자들이 무엇 때문에 선어록의 언어 연구에 착수하고 있는지 개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지면이 허락한다면, 선어록의 언어에 관련된 학계의 연구성과를 조금이나마 소개하면서 한역의 시대가 끝난 이후의 동아시아 불교의 모습을 그려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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