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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무차선회 지상중계

기자명 이학종

5천여 대중 운집 조사선의 진면목 만끽


“동쪽에 해가 뜨니 낮과 같이 광명이 비치고, 무차선회(無遮禪會)를 하니 비로불이 광명(光明)을 놓네. 주인공(主人公)아, 예예하는 것이 무엇인고?” 때는 8월 18일, 무차선회가 열린 백암산 자락아래 자리한 고불총림이 해인사에서 온 혜암(慧菴) 노선사의 사자후로 쩌렁쩌렁 울렸다. 한 5초쯤이나 흘렀을까. 봉암사 선원에서 수년간 정진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납자(衲子)가 홀연히 일어나 법단(法壇) 앞으로 나아가 3배의 예를 올리고 한마디 `이르라 하시니 이르겠다'고 했다.

“수많은 선지식들이 도(道)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참다운도의 실상관(實相觀)은 무엇입니까?”
혜암 선사가 지체없이 답했다.
“미혹한 마음은 나고 죽는 마음이요, 깨달음의 청정법신이로다. 미혹과 깨달음을 다 쳐부수니 해돋아 하늘 땅이 밝도다. 실상관이란 이미 이대로 다 갖춰져 있는 것이니 깨닫고 못깨닫고가 문제일 뿐이니라.”
이에 납자는 가만히 합장을 한 채 노선사를 향해 넙죽 절을 올렸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상에 모인 5천 사부대중으로부터 감동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어 고불총림 방장 서옹(西翁) 대종사가 사자좌에 올랐다. 정연한논리와 예리한 선지로 이어진 서옹 스님이 법문 마무리에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착어(着語)를 했다.
“주야로 순환해서 영원히 쉬지 아니함이라. 밝은 달 갈대꽃은 비춰서 모두 같도다. 하늘에 사무쳐 멀리 날으는 어린 새매 새끼는 옛집을 그리워하지 않고 펄펄 날도다.”
무한히 자유자재한 경계를 노래한 대종사는 이어 대중을 향해 일갈을 했다.
“도리어 아는가? 나무소가 걸음걸음 불속에서 걸어가도다. 아아악-.”
당당한 위풍의 한 납자가 성큼성큼 사자좌 앞으로 다가섰다. 지극한 예를 마친후 일렀다.
“이곳이 고불총림인데, 옛날 부처님도 아니 계시고 스님들도 뵙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임제라는 스님이 이 자리를 다녀가셨다고 하는데 임제스님은 그만 두시고 이상한 스님만이 계십니다. 금일 스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기다린 듯 서옹 대종사가 답했다.
“말을 해도 30방, 말을 안해도 30방. 이놈아 임제스님의 모습을 보아라. 이노오움.”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노승의 목청이 높아졌으나 젊은 납자는 꿈쩍도 않고 되물었다.
잠깐 납자를 노려보듯 응시하던 서옹 노선사. “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같은 할과 함께 쾅쾅쾅 주장자로 사자좌를 부수듯 내리쳤다. 말이 끊긴 경계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납자는 “스님 감사합니다.”라며 넙죽 큰절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법상(法床)에 오른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진제(眞際) 대선사. 시종 당당하고 자신에찬 어투로 활구참선만이 도인이 되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한 대선사는 대중들에게 화두(話頭) 하나를 내렸다.

“이곳에 모인 대중들은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밑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지 못한다.(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는말의 낙처가 어디에 있는지 잘 정진해주시기 바랍니다.”

임제스님이 탁발을 나갔을 때 한 노파가 임제에게 말하기를 `이 염치없는 중아!' 하며 대뜸 소리를 지르기에, 임제가 말하기를 `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찌 염치없다 하는고?'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한마디 대꾸도 안하고 대문을 닫고 들어갔는데 임제는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왜 한마디 못하고 돌아섰을까. 이 도리를 아는 이가 있는가? 진제 대선사의 법문이 이어지는 순간 한 비구니 스님이 “제가한 번 이르겠습니다.”라고 나섰다. “그래, 일러보지.” 진제 스님이 기회를 주자, 비구니 스님이 이르기를 “살구나무 가지에 밝은 달이 주렁주렁 열렸는데 그것을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껄껄 웃으며다시 진제 대선사가 임제를 대신해서 답을 하겠다며 이르길 “한 30년간 당나귀를 타고 놀았는데 금일에 당나귀에 한 번 들이받힘이로다 … ”라고 했다.
진제 대선사는 이윽고 법문을 마무히하는 게송을 읊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흑탄 속에 거꾸러짐이로다. 필경에 금일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천 번을 말하고 만 가지를 말해도아는 사람이 없네. 향(向)하는 아래의 글이 길으니, 내일에 있어 부치리라.”
법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스님 대신 푸른 양복을 입은 한 거사가 질문을 하겠다고 나섰다.
“스님의 진면목은 무엇입니까?”
대선사가 답했다.
“동지한식이 백오일간이니라”
거사가 다시 되물었다.
“옳지 않으니 다시 이르십시오.”
대선사가 답했다.
“어디서 야호(여우)가 왔어. 어억!”
거사가 말했다.
“법당 뒤 백일홍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대선사가 말했다.
“차나 한 잔 먹고 가시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 3인이 한 자리에 모여 법문과 법거량을한 고불총림 백양사의 무차선회는 날로 침체되어가는 한국불교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대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개된 자리에서 선지식들과 자유롭게 벌이는 법거량 장면. 비록 제한된 시간 속에 자유롭고 다양한 거량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묻고답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고 반박을 하고 절복에 큰절을 올리고 이런 광경을 보며 감격과 감동의 박수가 터져나오고 … 하는 장면들을참으로 오랜만에 접한 수천 사부대중의 표정에는 엊그제 승려들의 갈빗집 포커도박 사건으로 입었던 저린 상흔들이 말끔히 가시기나 한 듯 화사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성 백양사=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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