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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부정불감증(不正不感症)

기자명 공종원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성역은 없다.”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해 수사하거나 사정을 벌일 때마다 나오던 말이다. 정말 성역으로 의심되는 곳까지 파 들어가서 속 시원하게 까발려 준 예는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매번 기대를 걸게 하는매력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기대감이 아니라 거꾸로 실망감을느끼면서 되뇌이게 하는 일도 거듭거듭 일어난다. 다름 아니라, 현대 물질문명의 부산물인 배금주의의 막강한 손길을 밀쳐 내면서 의연히 본령을 지켜야 할 성역들이 하나하나 그 손길에 침투당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게 그말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 커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敎職)은 옛날부터 성직(聖職)으로 존중된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닌지라,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잘 기르고 잘 가르쳐야 한다. 사람 만드는 일이 교육이니 교직을 성스럽게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이가 선생님이니 그이들을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성스럽게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모두 나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서 사람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동격인 것이다.

사람답지 않은 이가 사람을 제대로 만든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답지 않다”는 말과 “부모님”, “선생님”이라는 말은 결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성립해서는 안 될 그런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이갈수록 보편화되고 있으니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예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주는 이른바 촌지의 문제이다. 촌지 문제는 이미 하도 널리 알려져있어서 구체적인 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다시 정색하고 거론하는 것도 쑥스러울 정도이지만, 얼마 전에 보도된 어느 교사의 경우는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진 우리의 지각에도 새삼스럽게 자극이 될 만큼 너무 심했다. 부부가 모두 교직에 종사하는 집안인데, 남편이 비리에 연루되어 가택 수색을 당하던 중에 아내인 이 교사의 촌지 기록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원 세상에, 그런 걸 보았으면 제꺽 문제 삼아 수사할 일이지, 수색을 하던 경찰인가 검찰은 자기들이 수사하던 사건 밖의 일이라고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부정한 돈의 왕래에도 떡값이니 촌지니 좋은 이름을 붙여 놓고 나니 정말 “떡 사먹으라는 돈”으로. “한 조각 정성스런 마음”으로 너그럽게 보아주게 되는 언어의 질병에 걸려 있는가 보다. 우리 사회가 窄떨 부정불감증(不正不感症)에 심하게 걸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그 교사의 태도이다. 돈을 받기는 받았으되 그것을 빌미로 학생들을 차별 대우한 일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제발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지만, 믿으려고 애를 써 보아도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차별 대우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돈 납부 여부와 액수를 아이들 이름 옆에 기록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일반화된 일이라 할지라도 돈을 받을 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교사라면, 그런 장부를 정성들여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수사관들이 지나간 뒤 그 촌지 기록부를 없앴다고 하는데, 수사관들이 확인서나마 받아두지 않았더라면 그런 것이 어디 있었느냐고 시침 딱 떼며 우겼으리라 짐작된다. 증거만 없으면 되고 법적으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태도인데, 그것은 양심이라고는 개 코만큼도 돌아보지않는 사람답지 않는 “법대로”의 행태이지. 양심이라는 사람다움의 가장기본적인 요건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법다운” 선생님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공종원/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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