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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어디서나 초발심은

기자명 김징자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시체를 뜯어먹는 대머리 독수리', '앰뷸런스 추적자'라면 무엇을 연상하게 될까.미국변호사 사회에선 사망이나 상해사고의 피해보상을 맡는 일부 전문변호사들을이렇게 부른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젖어있는 유가족들에게 대목이나 만난듯 찾아가거나 전화를 해 사건을 맡기라고 달려드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마치 방금 죽은 시체에 피도 마르기전 달려드는 대머리 독수리들을 연상케 한다는 뜻이다. 변호사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어쩌다 변호사 품위가 이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변호사의 수에 비해 일거리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법조인(판 검사 변호사 포함) 1인당 국민수는 약 3백여명으로 세계 최저수치다. 프랑스가 1천7백명이 넘고 우리나라는 아마 그보다 훨씬 많은 몇천명수준은 될 것으로 본다. 비율이 낮으면 당연히 일자리가 적고 비율이 높으면 일거리가 많다. "무엇이든 흔하면 천해진다"는 말을 지금 미국 변호사 업계가 입증해 주고 있다할 것인지. 하지만 한국에는 변호사가 미국만큼 많지도 않고 아직청소년들의 직업적 선호도로도 상위를 차지하는 존경받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한국 법조계를 신뢰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신문지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종기 변호사 경우 1년에 형사사건을 3백여건 넘어 맡았다 한다. 소송이나 재판 등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상식으로도 한사람의 변호사가 무슨 재간으로 하루 평균 한건씩의 사건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지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곳에는 분명 사건의 진실성 규명보다 다른그 무엇의 작용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지금 밝혀지고 있는 바로는 대부분의 사건이 검찰직원, 판 검사, 경찰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에서 수임이 이루어졌고 그 재판결과가 과연 공정했던가는 앞으로 짚어보아야 할부분이 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재판 판결 잣대가 돈과 권력 아니면 개인의 친소관계에 흔들리고 있지 않았나 의심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 TV에는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 "라는 공익광고가 니온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에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한 직업의 출발점에서 사람들은 그 소명의식을 한번쯤 확인하는 '서약' 같은 것을 하게 된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약자의 권익을 옹호함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이른바 사법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초발심' 같은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순수한 출발의초발심이 1백%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다. 인간세상에서'서약'이나 '선서'만큼 거짓약속도 드물기 때문이다. 더우기 현대사회에는 인류애나 인간애라든가 도덕이나 윤리보다 개인의 이익, 집단의 이익이 앞서게 마련이다. 한국 법조계의 끊임없는 비리도 법조계 자체안의 온정주의와 직업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 이런 현실속에서 과연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과 정의를 위해 있다는 법의 실행과정이 과연 국민과 정의의 요구에 따르고 있으며 또 우리는 그 법을 얼마나 믿고 따르고 있는가. 생각하면 모든 것이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절망밖에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을 법조계에 대응시켜보면 그들은 남보다 잘 알고 있는법을 남보다 유용하게 이용함으로써 스스로의 힘만 키워간다고 할 수 밖에 없다.'살아있는 직업의식'이란 말에는 신성한 의미가 있다. 직업이란 단어를 떳떳하게맡은 바 직분이란 뜻의 직(職)이란 한자에 운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업(業)이란단어를 붙여 만든 것부터가 그렇다. 스스로의 운명속에 내려져 있는 소명, 그것을평생을 바쳐 올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이 직업의식이다. 아무리 그것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되었다 할지라도 분명한 직업의식 없이 행해지는것이라면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갖는 수준을 넘지 못하게 된다.이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한 사회 더 나아가 인류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
다.

성직자, 의사, 법률가 등은 진정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일 것은 분명하다. 낡은 구호이긴하지만 '초발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하자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


김징자/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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