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오늘의 시대는 너무 많은 것을 이룩하고 소유하고 누리고 있다.일반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으로만 여겨왔던 생명 복제는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화성 탐사 작업은 과학 기술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인간의 능력이 이 정도인데 앞으로 무엇인들 불가능하겠는가?
이와 함께 일상화 되어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동차, 컴퓨터,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등 이루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이외에도 우리가이룩하고 소유하고 누리는 것은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열거하고보면 우리가 얼마나 넘쳐나는 물질적 부유함과 편리함 속에 살고 있는가를실감할 수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음식 쓰레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있다. 생활 쓰레기 처리 때문에 시시비비가 분분하다. 물질적 부유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웅변해주는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삶의 주변을 살펴보자. 우리 모두가 부족함, 불편함 때문에 너나 없이 불만에 휩싸여 있다. 돈 때문에 살인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재산 때문에 부모 자식 또는 부부간의 관계가 형편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경제가 원활하지 않아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다고 한다. 넘치는 물질적 부유함의 세상에 살면서도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휴대폰이 잘 안 터지고 컴퓨터도 고장이 자주 난다. 뭐하나 마음대로 시원하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이것도 불편하고 저것도 불편하다고 한다. 기계화, 자동화라는 편리함 속에살면서도 사사건건 불편하다고 야단이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처방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여기 저기서 수없이많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진단과 처방이 다양한 듯 하지만 실제는 구태의연한 한 가지 진단과 처방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결국 더 편리하게 하고 더 많이 만들어내면 우리의 고통과 불행이 해결될수 있다는 천편일률적인 논리들뿐이다. 정말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지금보다 더 좋고 편리한 도구들을 만들어내면 불편함이 사라지고 그로 인한불만들이 해결 될 것인가? 정말 공장을 더 짓고 물건을 더 만들어서 개개인의 소득을 높이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어지고 그로 인한 불만들이 해소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물질적 부유함 속에 있으면서도 빈곤감 때문에 불행해하고 있다. 첨단 기계의 편리함 속에 있으면서도 불편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자기 모순의 수렁에깊이 빠져들고 있다. 엄연한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통하여 더 편리하게 하고 물건을 잘 만들어 돈만 더 벌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현대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부유함과 편리함 속에 삶을 향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감, 불편함으로 인한 고통과 불행의 늪이 더 깊어지는 심각한 모순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이 나라 지도자들과 신문 방송들은 여전히 더많이 더 편리하게만 외치고 있으니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될 것인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런 현상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모두는 역사에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 같다.
역사는 무엇 때문에 가르치고 배우는 것일까? 과거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않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없는 민족’ 또는 ‘역사 의식이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 어떤 표현보다도 심한 경멸을 뜻하는 것으로인식되어 왔다. 지금 우리의 문제의식과 문제 해결의 방법은 수십번 엎어지고 자빠졌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만큼 비난받고 경멸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진정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진정 오늘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오로지 인간다운 삶의 길을 열어갈 가치관의 확립이요구되고 있다. 인간다운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삶의 철학을 가꾸는 작업이절실하다. 너와나 인간과 자연이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생명 본연의 질서에 따르는 삶의 문화를 형성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지극히불안하다.
공존과 융화의 삶의 철학, 균형과 조화의 질서, 자족하는 삶의 철학, 절제하는 삶의 질서를 회복하고 확립하지 않는 한 우리의 앞날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해온 독점과 지배, 파괴와 소모를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사고와 삶의 문화는 하루 바삐 청산되어야 한다. 더많이 더 편리하게의 논리와 방법으로는 결코 오늘의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는 역사의 경험을 외면하는 한 다가오는 불행을 피할 길은 어디에도 있지않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도법스님/실상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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