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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명국의 달마와 로댕의 발자크

기자명 주수완

바람에 떠밀려 가는 듯한 뒷모습 돛단배 같아

갈대 꺾어 띄워 양자강 건너는 달마 모습 묘사한 ‘달마절로도강'
도망자 긴박함이나 두려움 없고 중대 결심한 듯 한 표정이 압권
달마대사 위업, 거대하고 견고한 바위산에 비유한 것으로 보여

김명국, ‘달마절로도강’,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17세기. 48.2×97.6㎝.

김명국의 또 하나 걸작 ‘달마절로도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불교 주제의 그림이다. 서명으로 ‘취옹’을 쓴 만큼 그 붓질은 ‘달마도’ 보다 더 파격적이다. 얼굴과 발 부분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태를 벗어난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김명국이 얼마나 불교에 조예가 깊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달마대사의 일대기를 알지 못하고는 그리기 어려운 내공이 느껴진다.

‘달마절로도강(達磨折蘆渡江)’의 뜻은 “달마께서 갈대(蘆)를 꺾어(折) 강을 건너셨다(渡江)”는 뜻인데, 그 이야기는 달마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건너오셨을 때 남조, 즉 남쪽 양나라에 먼저 도착하셔서 포교활동을 하셨던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는 양무제의 치세였는데, 이 황제는 수나라 문제와 더불어 불교사에서 대표적인 호불군주로서 칭송받고, 유학자들에게는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나라의 역사를 단명에 그치게 했다는 비판을 받는 황제다. 그러나 선종 역사에서 보면 불교도들의 입장에서도 그리 바람직한 군주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그는 너무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살아있는 부처이므로 나라의 승려들마저 자신을 부처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존의 불교경전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주석서를 편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쓴 글을 부처의 말씀이라며 경전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고 하니, 쉽게 표현하자면 미륵을 표방했던 궁예 정도쯤 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불교에서는 우리 모두 이미 부처라 했으니, 그것에 너무 충실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부처님 행세를 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어떤 면에서는 중세 유럽의 교황의 귄위와도 비교되겠다.

그러나 궁예의 정신병적인 행동이 실은 왕건이 권력을 빼앗아 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드는 것처럼, 실제 양무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논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하간 그랬던 양무제가 인도에서 고승 달마가 건너와 유명세를 떨치자 달마를 포섭하여 자신이 살아있는 부처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름 달마대사를 극진히 모셨는데, 결국 달마께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배신감을 느낀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달마절로도강’의 배경이다.
 

로댕의 ‘발자크 동상’(우)과 중국 광동성 석만요 제작으로 추정되는 달마상 도자기(좌). 모두 파리 로댕박물관 소장.

양무제의 명령을 받는 군인들이 쫓아오자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달마는 결국 북조의 북위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려면 양자강을 건너 북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쫓겨나온지라 뱃사공이 나루에서 모두 퇴근하고 난 뒤였던가 보다. 그래서 달마께서 갈대를 하나 꺾어 띄우고 그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셨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갈대 위에 선 달마의 발 부분 묘사가 뭉개지듯이 흐릿한데, 그것은 아마도 수상스키를 탈 때처럼 물보라가 일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여하간 이렇게 피신하는 달마이지만, 얼굴 표정을 보면 매우 비장하다. 도망가는 자의 긴박함이나 두려움은 없고, 한편으로는 화가 난 듯, 한편으로는 어떤 중대한 결심을 한 듯 그 표정이 압권이다.

자신에게 강압적인 양무제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고, 또는 새로운 땅에 들어가 어떻게 불교를 널리 알릴 것인가에 대한 결의로도 볼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달마의 당당한 기백이 느껴진다. 그나마 형체처럼 보이는 것이 얼굴과 발뿐이라 시선이 여기에 먼저 머물게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상 이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우뚝 솟은 바위산 같은 달마의 뒷모습이 아닐까. 옷의 아래쪽 끝단이 왼쪽으로 휘날리듯이 표현되어 언뜻 뒤에서 부는 바람에 떠밀려 가듯이 보이는 달마의 이 뒷모습은 마치 돛단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그 순풍 같은 힘은 아마도 부처님이 북쪽으로 달마대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숭산에 들어가 선불교라는 새로운 동아시아 불교사의 장을 열게 될 달마대사의 위업을 거대하고 견고한 바위산에 비유한 것처럼 보인다. 

달마가 양자강을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면 김명국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몰랐다면 이 그림 속 달마의 저런 비장한 표정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가 불교도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이 이야기에 대해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불교에도 관심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앞서 ‘달마도’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달마대사는 양손을 소매에 넣어 포갠 자세를 하고 있다. 합장한 듯, 팔짱을 낀 듯 보이는 이 공통의 자세는 아마도 인체를 옷에 가림으로써 단순함과 추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의도로 읽힌다. 그런데 이런 단순함을 뜻밖에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의 ‘발자크’ 동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팔을 외투 안에 감추고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시선, 심하게 기운 몸에서 어디론가 미끄러져 가는 듯한 느낌. 지금은 그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발자크’이지만, 발자크의 동상을 주문했던 ‘프랑스 문인협회’는 이 작품을 ‘우연히 인간의 모습을 닮게 된 화산석 보다도 못하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돌덩어리처럼 단순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막상 로댕이 얼마나 많은 다양한 습작을 만들었는지는 로댕박물관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곳에는 작은 달마상 도자기 한 점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것이 혹시 로댕이 발자크 상을 만들 때 결정적 영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이 로댕박물관의 달마상이 어떤 경로로 소장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로댕의 ‘발자크’가 특히나 김명국의 ‘달마절로도강’과 닮았음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발자크’의 파격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프랑스 문인협회’는 비웃으면서도 막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선의 ‘발자크’인 이 ‘달마절로도강’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 선구적인 추상성이 아닐 수 없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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