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훈아형!
아, 나훈아형!
  • 허남결 교수
  • 승인 2020.10.12 10:43
  • 호수 15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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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을 훌쩍 넘긴 가수 나훈아가 세상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에 방영한 KBS2의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특별방송 때문이다. 특히 15년 만에 방송출연한 그가 부른 ‘테스형’이란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노래를 하다말고 중간중간에 무심한 듯 작심한 듯 던진 멘트들은 여야정치권의 아전인수를 낳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가수 나훈아의 노래에는 독특한 유머코드와 해학적 언어습관이 작동한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가사는 슬픈 듯, 기쁜 듯,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듯한 우리들의 복잡한 감정을 숙모가 총각김치 담그듯 능청맞게 버무려낸다. 누가 감히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라는 말을 저렇게 기름진 목소리로 처절하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가끔 “턱 빠지게 웃지만… 그 아픔을 웃음에 묻지” 않고는 당장 오늘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무엇보다도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는다.

못난 나만 그런가. 고향을 잊고 산지 오래다. 멀다는 핑계로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한 부모님의 선영(先塋)은 언제나 마음의 빚이다. 그런 나에게 나훈아는 아버지 산소 주변의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고, 나를 대신하여 스스로를 자책한다. 참았던 속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그는 이미 철인이고 현자다. 아니 그 자신이 바로 소크라테스 형이다. 어려운 말을 하지도 않는다. 어디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난해하던가. 아니다. 저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도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의 울림은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나훈아의 노랫말에도 그런 감동이 있음을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훈아가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묻지만 “먼저 가본 저세상”에 있는 소크라테스가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해줄리 만무하다. 그는 살아생전에도 누가 묻는 말에 한 번도 친절하게 답변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대방을 질릴 때까지 몰아붙여 자신이 결국 모른다는 사실을 자백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나훈아는 남의 이야기하듯 말한다.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라고. 문득 우리는 나훈아가 처음부터 세상의 실상을 무상과 공(空)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 그는 ‘공(空)’이란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부르기도 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이라고 노래하는 나훈아가 과연 무상과 공의 의미를 모를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이치를 어쩌면 이렇게 가슴에 와닿도록 쉽게 풀어 놓을 수 있나 싶어 마치 용수보살의 법문을 듣는 듯했다.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도 모르는 것을 가수 나훈아는 확실히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이 느낌을 도대체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이 불세출의 예인은 악기를 반주 삼아 노래 부르고 춤추며 붓다를 공양하던 건달바의 화신이 틀림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과 무상의 도리를 자유자재로 노래하는 가수 나훈아.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음성보살(音聲菩薩)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테스형 노래 듣기)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0&ie=utf8&query=%ED%85%8C%EC%8A%A4%ED%98%95
(공 노래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oIjSYcobhxA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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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허남결형 2020-10-12 18:37:13
칼럼을 보고 찌릿찌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