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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만나는 큰스님-성수 스님

기자명 이창윤

"요즘 기도 기복으로 흘러 큰일이야"

"팔만대장경에 복을 빌라는 말 없어. 복을 지으라고 했자. 그게 이타행이야"
"기도는 본래 자기를 불러 일으키는 일"

성수 큰스님을 뵈러 가는 날은 햇살이 참 따뜻하고 맑았다. 지리산 기슭을 감도는 바람도 봄바람의 온기를 거부할 수는 없었던 듯 싶다.

큰스님은 경남 함양 땅에 토굴을 짓고 수행하고 계신다. 그래도 큰스님이 계신토굴이니 법당이니 요사니 하는 당우가 번듯하게 서 있으려니 상상했지만 짐작은 여지 없이 빗나갔다. 스님께서 일러준 '노스님 토굴'을 찾아 물어물어 간 '황대선원'은 말 그대로 토굴이었다. 단청 하나 칠하지 않은 허름한 조립식 가건물 5채. 그곳이 큰스님이 주석하며 행화하시는 도량이었다.

'어떤 원력으로 외진 함양 땅에 이런 가건물을 짓고 수행하시는 것일까. 혹시 큰스님도 불사를 위해 기도를 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마냥 맴돌았다.
스님께 인사를 여쭙고 기도를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해야 할지를 여쭈어 보았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80살인데도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까지 등 한번 안 붙이고 내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아. 등 딱 붙이고 낮잠 3번 만 자면 병이 다 생겨. 날 보라고. 병이 하나도 없어 뵈지. 또 마음을 고약하게 쓰면 속병이 생기게 돼 있어. 마음을 좋게 가지면 주름살이 하나도 없어. 아까운 얼굴에 분칠하지 말고 화를 안내야 해."

- 점심공양하러 가니 선반에 발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대중이 발우공양을 자주하는 모양이지요.
"여기는 바리때 공양을 하지. 따로 공양주도 없어. 여기는 품 주는 데가 아니거든. 하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신심 내서 거들어주지. 자기 일 자기가 하러 왔으니까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끓여서 먹어야 하지 않겠어."

- 불교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자력신앙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는 타력신앙이며 구복(求福)에 경도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300년 전만 해도 한국불교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진리 신앙이었어. 부처님을 신앙하는 것은 부처님 인품을 배우고 기르기 위한 것인데,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기복신앙으로 변질됐지. 팔만대장경에도 복을 빌라는 말은 없어. 오히려 '복을 지으라〔作福]'고 했지. 현재 우리 나라 신앙은 기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신으로까지 흘러가고 있어. '부처님이 봐주시겠거니'하는 기대를 거는 것도 좋지만 쇳덩어리가 달나라까지 날아가는 시대에 종교도 혁신하고 달라져야 해."

- 내 복을 비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과 사회를 위해 복을 비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걸 이타행(利他行)이라고 하는 거야. 복을 짓는 것이 다른 게 아냐. 남과 대중을 위해 살고 '나'라는 것은 뒤에 미루고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복이야. 부처님이 복을 지으라고 하신 것도 정말 어려운 사람, 목마른 사람을 도와주라는 게야. 남 괴로운 것을 들어줄 줄 아는 것, 그게 작복이지."

- 그렇다면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보살행이 될 수 있겠군요.
"그렇지. 기도를 부처님이 무엇을 봐준다는 개념으로 가지지 말아야 해. 정초에 기도를 많이 하지. 정초 기도는 원력을 세우는 것이야. 부처님 앞에서 정구업진언을 외울 때 무작정 외우는 것이 아니라 '금년에는 절대 비겁하고 나쁜 말은 하지않고 정말 원만하고 복이 되고 득이 될 수 있는 말만 하겠습니다'하고 발원하는 것이지. 발원해 놓고 만약에 요놈의 입이 더럽고 비겁한 말을 한 마디 했다고 하면 그날 밥을 한 끼 굶겨야 해. 그것이 실행되면 복이 떼굴떼굴 저절로 굴러오게 되는 거야."

- 기도는 원력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원력을 세워야하겠습니까.
"부처님 앞에서 '업되는 말은 안하고 복되는 말만 하겠습니다'하고 빌어 놓고 내려가서는 험한 이야기를 하고 박덕한 이야기를 하면 빚어놓은 복을 쏟는 게지. 그러니까 '금년에는 절대 복 쏟지 않고 감복(減福)하는 일 않고 박덕한 일 안하고 자비 보시하는 일을 정해 놓고 노력하겠습니다'하고 발원해야 해."

-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바른 기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손해보더라도 미안해 할 줄 알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없는 복이 되는 게야. 불편하다고 원망이나 하고 있으면 복이 오지 않아.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고 나가다가 누가 자기 신에 흙칠해 놓은 걸 보고 '어떤 년이 내신에 흙칠해 놨노'하면 한 시간 동안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해 쌓아놓은 복이 다 쏟아지는 것이야. 우리가 복을 아낄 줄 알고 지을 줄 알아야지 복을 비는 데 전력해서는 안되는 게야. 불교는 기복종교, 미신종교가 아니고 생사자재법(生死自在法)종교지. 부처님의 사상과 삶을 본받으려고 절에 가는 것이지 복을 빌러 절에 가는 것이 아니야."

- 기도를 하면서 영험을 바라는 불자가 많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허욕이 많은 사람이 영험을 바라지. 진실한 사람은 정당하게 살아. 진실하게 살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와. 복은 비는 게 아니고 짓는 거야."

- 그렇지만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기도를 해 영험을 얻기도 하지 않습니까.
" 부처님에게 가피를 받는 게야. 가피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를 할 때 목을 떼서 달아놓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해야 하는 게지. 난치병을 앓는 사람이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고 퇴원시키면 죽자사자 기도에 매달리지. 그때 가피를 입는 거야."

- 진짜 간절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 그럼. 내가 살려면 목을 떼 달아놓고 부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어. '좀 살려 주십시오'하고 진짜 눈물 흘리며 매달려야 업이 녹고 재생할 수 있는 길이 나와. 그런 기도를 하려면 목을 떼 놓고 해야지 품팔이로 몇 시간해서는 안돼."

- 업장소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도가 자기 자신을 참회하는 수행이라고 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고(苦)'라는 것은 누가 받으라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게지.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다시는 이런 업은 안 짓겠다'하고 반성하는 것이 참회야. 진짜 반성하면 부처님이 '네가 철이 들었구나'하며 이마를 한 번 쓰다듬어 준다거나 물을 한 그릇 주는데, 그러면 천하 의원이 못고 치는 병도 업이 녹아서 낫게 돼."

- 진정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참회하고 기도한다는 그 마음마저도 내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보면 오만 가지 잡생각이 듭니다.
"잡생각은 없앤다고 없어지는 게 아냐. 생각이 날 여가가 없이 기도를 해야 해. 잡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할수록 잡생각이 더 나게 마련이지. 머리에 불이 붙으면'불이야' 할 여가도 없이 끄지. 기도는 그렇게 절박하게 해야 하는 게야. 흉내만내서는 안돼."

- 흔히 기도는 기도처에 가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꼭 그런 데 가야만 기도가 되는 건 아냐. 아까 말했듯이 초하룻날 집에서라도'부처님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하고 발원하면 돼. '어디 가면 복을 준다', '어디 가면 기도가 잘 된다' 하지만 진짜 진실한 사람은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아. 태국 같은 나라는 기도 한 번 안하고, 부처님께 마지 한 번 안 올리고도 최고의 불교국가잖아."

- 간절하게 자기 자신을 참회하면서 기도하면 부처님 가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가피를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는 분명히 있어. 다만 내 성의와 정성이 모자라서 안되는 것 뿐이야. 옛날에 부산 앞바다에 꽃다운 기생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배가 왔었어. 그 배는 일본에서 원님을 납치하기 위해 보낸 배인데, 항상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니까 원님이 구경갔어. 원님이 올라타자 배는 일본으로 갔어. 일본에서는 납치해온 원님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지. 그런데 꿈에 한 스님이 와서 '이 나라 국왕이 병이 났는데, 부산 원님의 간을 내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해서 데려온 것'이라며 '암만 잘 먹어도 모레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 원님이 겁이 덜컥나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냐고 했더니 하룻 동안 관세음보살 명호를 10만번 외우면 될 거라고 스님이 일러주었어. 그래서 원님이 '날 살려주소'하며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불렀더니 별안간 자기 집에 턱 와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집에왔나'하고 집안을 둘러보니 평소에 모시고 있던 관세음보살이 반은 물에 젖어 있었어. 하루만에 죽는다고 하니 얼마나 급했겠어. 그렇게 간절하게 부딪쳐야 가피를 받는 것이지. 가피를 받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안되는 게야.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 도를 닦던가 기도하는 것은 다 형식일 뿐이야."

- 주력을 열심히 하면 신통을 얻는다고들 합니다.
"그런 걸 기대하며 주력하면 안돼. 주력은 내 마음을 딴 데 뺏기기 않고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외우는 것이지,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외우는 게 아냐."

-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것이 주력이라면 주력이나 선이나 일맥상통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선을 해도 자기 정신을 안 뺏겨야 하고, 주력이나 염불을 해도 자기정신을 안 뺏겨야 하는 게야. 자기 정신을 안 뺏기는 표준을 세우라는 것이지 거기에 매달리라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매달려 의지하려고 들지. 그건 하층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 끝으로 기도에 대해 한 말씀 더 해 주십시오.
"신중기도를 정초에 많이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이야. 기도는 부처님께 원력을 세우는 것인데, 신장님들한테 잘 보일 필요 있겠느냔 말이야. 줄을 서려면 윗사람한테 서야지, 말단들한테 줄 서봐야 별 볼일 없어. 기도를 하려면 부처님께 가서 복 좀 내놓으라고 사정을 하던지, 사정해도 안되면 애원을 하던지, 애원해도 안되면 항의를 해 받아내야 할 것 아니야. 복 주는지 안 주는지도 모르고 절만 꾸벅꾸벅하는 것은 옳지 않아. 절은 한 자리를 해도 값있는 절을 해야 해."

- 장시간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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